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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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예레미야 17: 5-11)

  • 관리자
  • 2017-02-26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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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3.1절 기념주일)
예레미야 17: 5-1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주현절 여덟째 주일이자 98주년 삼일절 기념예배로 드립니다. 지난주에는 예레미야서 32장 36-44절의 말씀으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도와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씀드렸습니다. 지난주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보았으니, 오늘은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있긴 하지만, 지난 주간에는 봄비도 내렸고, 하늘도 맑아졌고, 얼었던 땅도 한결 부드러워졌으며, 양지바른 곳에서는 초록 생명의 기운이 번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어수선해도 봄은 이렇게 활기차게 오고 있습니다. 이런 봄날에 저와 절친한 목사님 한 분이 위암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 목사님은 “5년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좀 더 멋지게 하나님 일을 잘 마무리하고 갈게요.”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5년을 더 살아도 61세밖에 안 되는 데 너무 욕심이 없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나 정신이 드니 ‘살아있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것이구나!’ 깨닫게 되었고, 링거를 매단 기구를 손에 쥐고 복도를 걸으면 운동을 해보니 ‘걸을 수 있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구나!’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5년이 아니라 얼마가 되었든지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분이 사는 것이 재미없다고 하시고, 우울하다 하십니다. 이유도 없이 피곤하고, 무력하고, 별다른 기대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하십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와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기쁨이 넘치는 얼굴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축 늘어진 어깨와 핏기없는 얼굴과 지친 발걸음, 이유 없는 분노와 거친 함성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이생망’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요?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이 ‘이번 생은 망했다’고 체념하는 표현의 줄임말입니다. 그런데 신조어 ‘이생망’에는 분노도 어떤 의지도 없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담담하게 써 내려간 유서를 보는 것 같습니다. 청년의 때에, 벌써 그 나이에 생이 망했다고 하니, 체념의 깊이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뉴스를 읽으면서 빈센트 반 고흐의 ‘감옥 마당’이라는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죄수들이 감옥 마당에 나와 한 자리를 빙빙 돌면서 운동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뒷짐을 지고 있고, 어떤 이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걷고 있으며, 감시하는 사람들이 한편에서 죄수의 숫자를 세고 있습니다. 마당이라고 할 것도 없이 공간은 좁고, 창문은 너무 높고 좁으니 감옥 마당에 있는 이들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표정들은 한결같이 무뚝뚝하고 무겁습니다. 우리도 하루하루를 이렇게 아무 희망도 없이 권태로운 일상을 맴돌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팔레스타인의 시인 ‘키파 판니’는 가끔 빗속을 우산도 없이 걷는다고 합니다. 우울함을 쫓기 위한 처방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늘 죽음의 공포와 대면하고 살아가고 있는 시인, 그는 『팔레스틴과 한국의 대화』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허다하고 정기적인 죽음 속에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히 축하할 일이요, 비에 젖어 걷는 것쯤이야 도리어 살아있음의 징표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음 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에 감사드려야 한다.”

 

박노해 시인은 『다른 길』이라는 사진집에서 매일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인도네시아 라당 지역에 사는 여인들에 대한 사진과 글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올해는 감자 수확이 좋지 않지만, 라당의 여인들은 우울해하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밭을 오르내리면서도 소녀처럼 경쾌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대화한다. 좋은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거죠. 풍년에는 베풀 수 있어서 좋고, 흉년에는 기댈 수 있어 좋고, 우리는 그저 사랑하고 웃음을 짓는 거죠.”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팔레스틴에서, 척박한 고산지대의 감자밭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감격에 겨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삶에 대한 감사 없이 그냥 하루하루 권태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어리석은 인생

 

누구나 잘살고 싶어합니다. 잘산다는 것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생명(生命)’이란, “살아가라!”는 명령입니다. 누가 주신 명령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잘사는 것은 자기를 넘어서서 더 큰 가치와 꿈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요, 생명의 소명을 간직하고 하나님과 접속하며 살아가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종교(religion)’의 어원을 파고 들어가면 ‘접속하다. 관계 맺다’는 뜻입니다. 즉, ‘자기를 넘어선 존재인 신과 접속하며 살아가는 것’이 종교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전 6세기, 예레미야가 살아가던 시대는 백성을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정치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진리와 공평을 저버리고, 자기들에게 위임된 권한을 사익을 추구하는 데만 사용했습니다. 섬기고 돌보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을 약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백성 또한 다르지 않아서,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이 새는 터진 웅덩이’를 파서(렘 2:13), 그것을 샘으로 삼았습니다. ‘물이 새는 터진 웅덩이’가 상징하는 바는 만족을 줄 수 없는 ‘풍요에 대한 환상’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 없는 풍요를 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늘 헛헛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결핍감입니다. 사람들은 그 헛헛함을 채워줄 것을 찾느라 분주합니다. 이런저런 물건을 사보기도 하고, 명예를 구하기도 하고, 권력을 탐해 보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위한 열정으로 잠시 결핍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욕망이 채워지는 순간 사람들은 또 그것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며 노심초사합니다. 욕망과 그것을 위한 질주와 성취 후의 두려움의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런 삶에는 안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사상에 사로잡혀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맨토로 삼고 기대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는 잔인할 정도로 인간의 이런 시도가 허망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17:5).” 사람을 믿고, 사람의 힘을 믿고 그런 집단에 속해서 자기의 헛헛함을 달래려는 이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 편에 서지 않는 사람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악마화하거나 색깔을 칠해서 배제합니다. 자기의 정당성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파렴치한 사람이나 위험한 사람으로 매도합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 다른 것을 틀리다 말하고, 틀린 것을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렇게 된 까닭은 이 시대가 하나님을 등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믿지 말라.

 

그런데 우리가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돈과 명예나 권세, 사상 혹은 힘 있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도 믿을 것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해 너무 비관적인 평가처럼 보입니다만, 인간이 하나님과 단절되고 타락하여 우리의 마음이 죄의 영향력 아래 놓이면 우리의 마음은 심히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부패해지는 증거는 먼저 ‘자기중심적인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마음은 자기의 작은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타인의 큰 아픔에는 무감각합니다. 잠언 11장 20절에서는 이런 마음을 ‘굽은 마음’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타락이란,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파탄을 말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본래 주신 마음을 품고 살아가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우리에게 주신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 당연히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파탄할 이유가 없겠지요.

 

사사기에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한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사사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사사기 5장)’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가나안 임금 야빈의 사령관인 시스라는 전쟁 중에 드보라가 세운 장군 바락에게 쫓기다가 야엘이라는 여인의 장막에 몸을 숨깁니다. 야엘은 그에게 우유를 주고, 잠이 들자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알 리가 없는 시스라의 어머니는 아들의 늦은 귀가를 걱정하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들이 전리품을 챙기고, 성적 노리개로 삼을 처녀들을 차지하느라 늦는 것이겠거니(사 5:30) 합니다. 나중에 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알았을 때에는 땅을 치고 통곡을 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사스라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람을 죽이고, 빼앗고, 여인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습니다. 그는 아들을 사랑하는 성실한 어머니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타인의 행복을 수단으로 삼는 것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연민을 품지 않는 것, 이것이 곧 타락이요,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가느라고 우리의 마음이 자기 안으로 굽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굽은 마음을 내어놓고 고쳐야 합니다.

 

7장 10절에서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하십니다. 옛날에 사람들은 마음이 심장이나 폐부(허파)에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심장과 폐부(허파)에는 인간의 의지, 양심, 감정이 머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구석구석 다 살피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깊은 속마음을 보는 일은 쉬운 일도 아니고, 회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합니다. 보기 흉하고, 굽어있고, 더럽고, 종기투성이인 자기 마음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참담한 일입니까? 그러나 봐야 합니다. 그래야 치유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길 위에서

 

인간의 삶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길 위에서 서 있는 존재’라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 이것은 우리 앞에 두 길이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두 길 중에서 한 길을 선택하여 걸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자기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입니다. 예레미야가 제시하는 생명의 길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준 음으로 삼아 자기의 마음을 조율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의 삶에 대해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 17:8).”

 

그들의 삶이 늘 유쾌하고 풍족하다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접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는 일도 그치지 않고, 자기가 땀 흘려 얻은 물질을 함께 나눕니다. 남은 것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족해도 나눔으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시고, 우리의 행실에 따라 보상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헛헛하고 권태로운 삶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타인에게 향하고, 이웃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한 삶으로 바꾸면 그 모든 권태로움과 헛헛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면, 권태로울 틈도 없고, 헛헛할 틈도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경이롭고 감사합니다. 봄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깃든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주의라는 얼음이 녹아, 강으로 흘러들면서 초록 생명을 싹 틔워 내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강을 닮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분과 동행하시어 평안을 주시고, 그런 이들을 통해서 이 나라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분들이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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