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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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이 있으십니까?(열왕기상 17:1-7)

  • 관리자
  • 2017-02-12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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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이 있으십니까?
열왕기상 17:1-7

 

오늘은 주현절 여섯째주일이며, 신학교육주일입니다. 성서일과를 살펴보니 구약은 출애굽기 6:2-9절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말씀이고, 시가서는 시편 1편의 말씀으로 ‘복 있는 사람’에 관한 말씀입니다. 서신의 말씀 중에서는 계시록 12장 7-12절의 말씀으로, 하늘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린양의 피’로 승리하게 됨을 이야기하는 본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서의 말씀은 마태복음 14:1-12절의 말씀인데, 세례요한의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신학교육주일에 맞춰서 나열해보니, 신학교육을 받는 이들은 앞으로 목회자가 될 사람들이니, 하나님과 더불어 노예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해방하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이며, 그 일은 복 있는 자의 길이요, 그 일은 동시에 악한 무리와의 싸움이며 결국 승리하겠으나, 세례 요한처럼 죽임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선지자 엘리야를 떠올렸습니다.

 

▪엘리야의 일대기

 

엘리야에 대해서는 잘 아시겠지만, 오늘 우리가 읽지 않은 부분까지 포함하여 엘리야의 일생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난 뒤에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이스라엘로 분단되어 살아갑니다. 남왕국 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요,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입니다. 예언자 엘리야갸 출현하던 시기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이었는데, 왕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열왕기상 16장 30절의 평가에 의하면 아합은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앞에서 악을 더하여 행하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은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그가 섬기던 바알을 따라 섬기고,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짓고, 아세라 상을 만드는 등 이전의 그 어떤 이스라엘의 왕보다 심하게 하나님을 노하시게 한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나타나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동쪽 그릿 시냇가에 숨어지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까마귀들을 통해서 떡과 고기를 엘리야에게 제공하십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자 이스라엘 땅 전역에 가뭄이 들고, 그릿 시냇가도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어 사르밧 과부의 집에 기거하게 합니다. 그때 사르밧 과부는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밖에 없어 자신과 아들이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을 생각할 정도로 가난하였습니다. 물론, 기적이 일어나 가뭄이 끝나기까지 통이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아들이 갑자기 죽게 되었는데, 엘리야가 기도하니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고 또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 년에(가뭄이 든지) 엘리야는 아합을 만납니다. 그 삼 년 동안 아합은 엘리야를 죽이려고 온 이스라엘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그 시간 아합은 가뭄이 들어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모아 갈멜 산으로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송아지를 잡아 장작 위에 올려놓고 그들과 견준 후에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기손 시내에서 죽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에 가뭄이 그칩니다. 이에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 하고, 엘리야는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까지 도망하고, 거기서도 하룻길쯤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하나님,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그때 천사가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가져다주고 이 음식을 먹고 힘을 낸 엘리야는 사십 주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갑니다. 아시는 대로 호렙산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거룩한 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에 아직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이들 칠천 명을 남겨두었으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엘리야의 후계자로 엘리사를 삼습니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열왕기하에 이어지는데, 2장에 엘리사와 요단으로 가는 길에 불수레와 불말들이 엘리사와 엘리야를 갈라놓고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왕하 2:11).

 

▪나비(nabi) 엘리야의 묵상

 

엘리야는 예레미야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요, 마태복음 17장 3절에도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을 제자들이 보고는 ‘여기가 좋사오니….’했을 때에 등장했던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히브리어로 ‘나비(nabi)’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대언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언자를 선택하실 때에 아무나 선택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엘리야가 예언자로 부름 받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 않지만, 불의한 왕 아합에게 나아가 ‘가뭄’에 대한 예언을 전할 때에 이미 그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깊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로 삼으실 때에, 그냥 아무나 불러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깊은 묵상을 통해서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미세한 소리를 듣는 영혼을 가진 이들을 불러 예언자로 사용하십니다. 아합에게서 가뭄을 선포한 후에, 그릿 시냇가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숨어지낸 시간이 삼 년입니다. 이 삼 년의 시간, 엘리야는 무엇을 했을까요? 끊임없이 자신의 골방에서 깊은 묵상과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매진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까마귀들이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는 일도, 과부의 집에서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일도, 죽었던 아들이 살아난 일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며, 더군다나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아합에게 나아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깊은 묵상을 통해서 850:1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알 선지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가뭄이 그치고 큰비가 내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는 조금 흔들렸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을 죽이려 하자 도망을 합니다. 모두가 며칠 사이에 있었던 일로 고무되었던 그에게는 조용히 묵상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곧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열왕기상 19장 2절에 있는 말씀대로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하나님께서 명하신 호렙산의 굴에 머물면서 다시금 묵상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자 앞으로 될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십니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은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라는 시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중략....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깊은 산도 아니고 거친 들도 아니요
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
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하략...

 

여러분에게는 골방이 있습니까? 조용하게 나를 관조할 수 있는 침묵의 시간, 기도의 시간, 묵상의 시간을 갖고 계십니까? 예언자만 묵상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묵상하고 기도하는 침묵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한 단계 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에게 뭔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던 신앙에서 벗어나 우리의 본성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란,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본성을 바꾸는 것이다.”

 

분주한 삶에 쫓기듯 살아가지 마시고, 일정한 장소에서 시간을 정해놓고 자신을 관조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런 자기만의 작은 골방을 만드십시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엌의 식탁일 수도 있고, 햇살이 잘 드는 베란다 한켠일 수도 있습니다. 지하철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리의 벤치일 수도 있고, 동네의 작은 카페일 수도 있고, 작은 책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성경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런 시간을 통해서 우리를 돌아보게 되고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삶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배철현 교수가 쓴 『심연』이라는 책에 ‘몰입’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며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몰입해 있기 때문이다. 꽃들은 천재지변이 와도 자기에게 몰입한다.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몰입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인내를 선물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깊은 묵상을 통해서 우리 삶에 몰입하면, 우리 삶을 훼손하는 군더더기들을 버릴 수 있고, 우리를 진부하게 하는 편견과 고집을 버리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를 피워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 추위가 남아있지만 봄입니다. 봄이 오면 꽃과 나무는 자신들을 피워내는데 몰입할 것입니다. 우리도 이 봄에는 우리의 삶을 위해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몰입하기 위해서 기도하며 묵상할 수 있는 마음의 골방을 하나씩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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