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씨앗을 심는 봄
미가서 6:6-8
어제는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이었습니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데 봄을 보셨는지요? 이미 남도에는 겨울에 피어나는 동백이나 수선화, 비파는 물론이고 변산바람꽃과 노루귀 같은 작은 꽃들이 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피어나는 꽃을 보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인지, 꽃이 피니 봄이 오는 것인지 헛갈립니다. 어쨌든 따스한 봄이 와서 좋습니다. 완연한 봄이 오기 전에 꽃샘추위가 있겠지만, 그 정도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 봄을 맞이하는 마음
‘봄’은 ‘보다’의 명사형이고, 영어로는 ‘Spring’입니다. 스프링은 ‘튀어 오르다.’라는 뜻입니다. 연한 새싹이 언 땅을 녹이고 피어나길 기다릴 때에는 여간해서는 싹이 보이질 않다가 보이기 시작하면 이내 쑥쑥 올라와 꽃을 피웁니다. 그런 광경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계절, 볼 것이 많은 계절이라서 ‘봄’입니다.
입춘을 맞이하면서, 저는 제 마음 한구석에 심어둔 ‘씨앗 중에서 연한 싹을 내고 있는 것’이 있는가 돌아보았습니다. 아직 싹수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품은 씨앗들이 있어 나를 살아가게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마음 한구석’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믿는 구석이 있나 보다!”고 이야기합니다. 언어를 분석하는 일은 참 재미있습니다. ‘믿는 구석’, 왜 ‘마당’이 아니고 ‘구석’일까? ‘구석’은 잘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잘 보이지 않는 숨겨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구석을 잘 가꿔야 합니다. 옛날 마당이 있는 집은 마당 한구석에 화단이 있었습니다. 그 화단을 어떻게 가꾸는지에 따라서 그 집 마당의 품격이 달라집니다. 저는 우리의 믿음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거리나 마당에서 티 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사람들보다 묵묵히 조용하게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겸손한 이들이 진짜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봄을 맞이하는 저의 마음을 돌아보면서 제 마음 한구석에 심고 싶은 씨앗으로 ‘기쁨’을 골랐습니다.
▪영원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
크리스천은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시간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은, 돈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권력을 가지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영원한 시간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난 것이 성공한 삶의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삶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난 뒤 바울은 자기가 누리고 있던 모든 세상적인 것들은 ‘배설물’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뒤 눈에 비닐 같은 것이 벗겨지고 나니 자기가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지위와 명예, 부와 권력이 마치 배설물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배설물’이라고 표현했던 지위와 명예와 부를 구하는 것을 ‘값싼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예수님이 아니어도 기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쁨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인생의 기쁨을 새롭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는 어린아이들이 욕심내고 갖고 싶어하고 즐거워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듯, 성숙한 신앙은 값싼 기쁨에서 한 차원 높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쁨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요즘 무엇이 재미있습니까? 여러분을 기쁘게 하는 것이 혹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joy’입니다. 조정민 목사라는 분은 JOY를 ‘Jesus Overflows You’라고 풀이하면서, “기쁨이란, 예수님이 우리 안에 흘러넘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흘러넘친다.’는 풀이는 아주 탁월합니다. 강이 흐르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듯, 예수님이 흘러넘치는 곳마다 영혼이 소생합니다. 그것이 영원한 시간을 살아가는 크리스천의 기쁨이 되어야 하기에, 저는 입춘을 맞이하면서 내 마음 한구석에 심고 싶은 씨앗으로 ‘기쁨’을 꼽았던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기쁨
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놀라운 기쁨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 기쁨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서 예수님이 주신 기쁨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할 수 없습니다. 서로 싸우느라 세상보다 더 시끄러운 교회라면 교회에 어떻게 나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정치 편향적인 발언이나 하는 설교를 하는 교회라면 어떻게 교회에 나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지탄받는 이유 중 하나는 세상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기쁨과 같은 수준의 기쁨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질서를 그대로 교회로 가져오고, 기업컨설팅을 그대로 교회에 적용합니다. 심지어는 디스코텍이나 찬양집회가 다르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냥 스트레스를 풀고 카타르시스를 하는 집회로 변질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인들조차도 그 기쁨의 맛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입맛이 MSG에 길든 것과도 같습니다. 전라남도 구례에 가니 산채비빔밥으로 유명한 집이 있습니다. 대략 열 가지가 넘는 나물이 나옵니다. 식탁에 올라온 나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맞추니 식당주인이 깜짝 놀라면서 하는 말이 “나물마다 독특한 맛과 향이 있는데 그냥 다 섞어서 고추장 넣고 썩썩 비벼 먹으니 사람들은 사실 진정한 산채비빔밥의 맛도 모르면서 맛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언하는 말이, “나물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면서 먹어보라.”고 권합니다. 저는 비빔밥이 나와도 하나하나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 편이라서, 어릴 적에는 부모님에게 밥상머리에서 깨작거린다고 혼도 많이 났지만, 그 일이 있은 후에는 노골적으로 비빔밥을 먹을 때 덜 비벼서 먹습니다.
금식을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금식을 끝내 뒤에 먹는 죽 한 숟가락, 채소 한 잎의 맛이 그대로 입안에 전해집니다. MSG에 길들었던 혀가 미각을 회복한 것이지요. 마치, 금식 뒤의 쌀 한 톨의 맛과 채소 한 잎의 맛이 온전히 느껴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맛보면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는 차원의 다른 기쁨입니다.
▪정의와 자비와 겸손의 씨앗
오늘 우리가 읽은 미가서의 말씀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대답이 나옵니다. ‘미가’라는 이름의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는 갓 지파에 속한 모레셋이라는 작은 마을 출신인데, 예루살렘의 탐욕스러운 부자들과 지도자들의 타락상을 지적하며 ‘정의, 자비, 겸손’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촉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회개하지 않고,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신 뒤에 그보다 더 큰 것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의로운 삶과 자비로운 삶,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기뻐하십니다. 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의, 자비, 겸손한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정의롭게 서로 더불어 인자하게 서로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자신들이 잘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의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유한한 기쁨으로는 항상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차고 넘칠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의 씨앗을 새로운 봄에 여러분 마음 밭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씨앗을 품은 마음은 좋은 밭입니다. 그것이 싹을 내면,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가 될 것이며,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요, 그 열매는 이웃들에게 나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정의, 자비, 겸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입니다. 우리 마음 한구석에 정의의 씨앗이 없으면 총체적인 난국의 상황에서 불의한 자들의 편에 설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자비의 씨앗이 없으면 무자비하고 잔인한 이들과 한편이 되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에 앞장설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겸손의 씨앗이 없으면, 하나님 대신 자신이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망령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씨앗들을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봄입니다. 마음 한구석에 어떤 씨앗을 뿌리시겠습니까?
올해는 기쁨의 씨앗을 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여러분의 삶도 기쁨 충만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흘러넘치면, 기쁨의 씨앗을 심은 우리의 삶에서 정의의 꽃과 자비의 꽃과 겸손의 꽃도 덩달아 피어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