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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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窓)(사도행전 9:1-9)

  • 관리자
  • 2017-01-22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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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窓)
사도행전 9:1-9

 

간혹,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내가 보는 그대로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렌즈와 어떤 색깔과 얼만큼의 도수가 들어갔는지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카메라에서 본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렌즈인데, 렌즈의 밝기에 따른 구분 외에도 광각, 망원, 마이크로, 표준 등 다양합니다. 같은 사물도 어떤 렌즈로 바라보고 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눈에 보이는 세상과 사진에 담긴 세상에서 주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렌즈는 하나의 창(窓)입니다.

어떤 분이 배경이 흐린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합니다. 피사체만 선명하게 담고 뒤의 배경은 없애버리고 싶다는 것인데, 제가 아무리 이론적으로 설명해도 그분이 카메라 렌즈를 바꾸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렌즈’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일뿐만 아니라, 관점의 변화요, 신앙적인 용어로 ‘회심’입니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우리의 가치는?

 

르부르 박물관에 있는 네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가치는 40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제푸 쿤스의 ‘풍선 개’는 2013년 한화로 592억 원에 팔렸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얼마인지 저도 모릅니다. 그리고 여기 김 목사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아니면, 여러분의 가치는?

 

이런 질문의 맹점은 무엇일까요? 모든 가치를 ‘화폐’로 환산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화폐로 환산될 수 없는, 일 년 내내 쉴 틈 없이 일해도 연봉 2천만 원도 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은 모나리자나 풍선 개나 미인도보다도 가치가 없는 존재일까요? 여러분은 마음이 착한 분들이고, 신앙인이라서 “아니오!”라고 답하셨지만, 세상은 “그래, 맞아!”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는 불변의 진리처럼 이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은 이런 악몽 같은 현실을 각자 이겨낼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가 되었다는 뉴스를 지난주에 들었습니다. ‘각자 살 길을 도모한다’는 말인데, 이것은 철저한 자본의 속임수요,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세상은 아수라가 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의 삶을 ‘각자도생’이 아닌 ‘더불어 삶’임을 제시하셨습니다.

 

만원 버스에 대한 기억들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한 마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 300명 있는데, 버스는 매일 100명밖에는 태우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버스를 타기 위해 다양한 전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불법적인 일은 물론이요, 버스를 타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도 치열할 것입니다만, 100명 밖에 버스를 타지 못하는 현실은 극복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줄서기 운동 같은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개인에게 맡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국가라는 시스템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들을 각자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떠미는 말입니다. 문제는, 300명 중에서는 이 말을 극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반드시 그 버스에 탈 수 있는 사람이거나 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지요. 버스를 타지 못한 200명을 바라보는 그 쾌감 혹은 우월감은 마침내 200명이 더 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의견을 불경스럽게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곳은 북유럽에 속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서도 덴마크가 행복지수 세계 1위인데, 주변의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실직하게 되면, 직장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기회를 줬다고 생각한답니다. 실직하면 국가에서 나오는 실업수당과 적성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무료교육 등을 취업할 때까지 책임져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처럼 행복지수가 세계적으로 하위권인 나라에서는 ‘복지정책’을 실시하면 ‘국민이 게을러진다’고 주장하는 무식한 이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기도 합니다만, 사회시스템을 개혁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플라톤은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우리의 가치는 저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회심의 의미는 보는 눈이 바뀐다는 것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사울이 회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일 때의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해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서 예수님을 믿는 초대교회 교인들을 잡아오려고 합니다(행 1:1). 그러나 다메섹을 향해 가는 도중에 홀연히 비추는 빛 속에서 “나는 내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 빛을 본 이후 사울은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 아니야에게 안수를 받으니 ‘사울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행 1:18).’. 그렇습니다.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다는 말은 세상의 창(窓)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사울이 눈이 이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창(窓)을 통해서 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심의 의미입니다.

회심이란, 자기의 창 혹은 세상의 창으로 보던 눈의 비늘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보고, 성경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창(窓)으로 보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요,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 한 점만도 못한 존재요, 세상은 세상대로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창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림 한 장만도 못한 존재가 아니라,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자녀요, 그분의 계획 안에 살아가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가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는 모나리자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지난주에 묵상하는 중에 ‘심판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완성된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은 이 세상을 멸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창조하시되 온 생명이 충만한 삶을 누리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은 ‘해피 엔딩’입니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말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바로 질서가 잡혀가는 중이고, ‘각자도생’의 삶을 강요당하지만, 여전히 ‘더불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불의를 행하는 자들과 돈과 권력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마침내 그날이 오면 그 모든 것들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될 것입니다. 목사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근원은 바로 하나님의 창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장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창으로 바라보시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 곧 믿음이고, 이 믿음으로 우리는 새로운 희망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으로 바라보시어, 늘 희망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창(창)을 깨끗이 지키라.

 

매일 아침 일어나 안경을 끼기 전에 닦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도 렌즈에 묻은 먼지를 제거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렌즈에 오물이 묻어 있으면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카메라에는 센서라는 사각 렌즈에 해당하는 것이 있는데, 여기 먼지가 있으면 사진에도 먼지가 나옵니다. 이 먼지는 한번 닦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사용할 때마다 닦아주어야 합니다. 렌즈를 닦을 때, 아무 천이나 사용하지 않습니다. ‘부드러운 융’이나 속칭 ‘뽁뽁이’를 사용하는데, 그래야 렌즈가 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신앙을 돌아봐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돌아보면서 감사하고, 회개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했는지, 세상에서 빛으로 살았는지, 사람답게 살았는지 우리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창을 깨끗이 지키는 일입니다. 구원의 시작은 일회적이지만, 구원의 과정은 긴 여행길과 같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제 신앙생활을 잘했다고 오늘이나 내일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며, 언제든지 일어설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제가 렌즈를 닦을 때 ‘부드러운 융’이나 ‘뽁뽁이’로 닦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 말고도 안경원이나 카메라 전문점에 가면 기계 같은 것을 사용해서 렌즈를 청소합니다. 이런 것들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드러운 융이나 뽁뽁이에 해당하는 것은 좋은 책이나 영화나 음악일 수도 있고, 신앙 서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융’은 성경이겠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창을 깨끗이 닦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렌즈를 닦는 전문적인 기계는 전문적인 신학 서적, 잘 정제된 설교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렌즈를 아무 천으로나 함부로 닦으면 흠이 생깁니다. 이런저런 물감을 칠해 놓으면 보이는 것이 제대로 볼 수도 없고 왜곡되게 보입니다. 전문가인 줄 알고 렌즈 청소를 맡겼더니만 사포 같은 것으로 렌즈를 갈아버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단 사설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풍랑이 이는 세상에서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는 하나님, 풍랑 뒤에 오는 잔잔함과 평화의 바다가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어떤 험한 풍파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이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가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窓)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고,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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