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 / 2016년 성탄절 메시지
누가복음 2:8-14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의 마음과 가정과 일터에 큰 복을 주시어, 여러분이 삶에 평화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탄 주일과 송년 주일을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병신년이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 일의 근원을 살펴보면, 인간의 교만과 욕심이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정도를 걸어갔어야 했는데, 우리는 어쩌면 경쟁사회가 요구하는 ‘빨리빨리’에 발맞추어 뛰어가다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단테는 그의 <신곡>에서 ‘인생 반 고비에 이르러 돌아보니 가야 할 길을 잃었습니다. 어두운 숲이었고, 혼자였습니다.’ 라고 합니다.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은 목표를 상실했다는 의미입니다. 조금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인생을 반이나 산 뒤에서야 자기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음을 알았다는 후회입니다.
표적(標的)은 사격이나 활쏘기 등에서 목표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어 '하마르티아'는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말로 신약성서에서 ‘죄’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 목표가 흔들린다는 것은 ‘죄’에 빠져 살아가는 군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길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
예수님이 나실 무렵에도 수많은 이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은 이중으로 착취를 당하며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당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조차도 없어서 병들고 헐벗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도 힘겨운 일인데, 거기에 종교적으로 ‘죄인’이라는 낙인까지 찍혀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내면화되어서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는, 희망이 없는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길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기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2장 12절에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라는 말씀은 이 아기가 길 잃어버린 너희에게 분명한 목표가 될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아기는 자라서 자신에 대해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한 목표이며 증거입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흔들리며 피는 꽃)
이 시를 패러디해서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바람에 흔들리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들이 한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왜, 청춘은 흔들려야 하고, 아파야 하고, 바람에 흔들려야 합니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이 흔들리지 않고, 아프지 않게,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해줘야 좋은 세상이 아닙니까? 자기들은 흔들릴 생각도 없고, 아플 생각도 없고, 바람 앞에 설 생각도 없으면서 그 앞에서 갈 바를 몰라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모든 사람은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나 혼자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으시고,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이 흔들림이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잃은 사람들
오늘 본문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는 중에 천사로부터 그리스도 탄생의 소식을 듣습니다. ‘밤’은 ‘어두운 현실’이며, ‘밖’은 ‘광야’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서술은 곧 어둠 속에서 광야 길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그분은 ‘구유’에 오셨습니다. 구유는 가축들의 먹이를 주는 도구, 가축들의 밥그릇이니, 그리스도는 가장 낮은 곳에 생명의 밥으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어둔 곳, 광야와도 같은 곳으로 가장 낮은 곳에 먹힘으로 생명을 주는 밥으로 오신 그리스도, 그래서 그는 평화의 왕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너무 어두워서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2016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아기 예수님께서 오셔서,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간절히 고대하며 촛불을 밝힌 이들을 위로해 주십시오. 또한, 불법한 행동으로 온 나라를 깊은 어둠에 빠지게 한 이들과 부역자들이 회개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는데 협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기회에 이 나라가 새롭게 태어나서 옳은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과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분단된 이 나라가 서로 군비경쟁을 하며 서로의 올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협정을 맺어 평화의 나라를 꿈꿀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과 무기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어두운 곳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적인 약자들과 스스로 실패했다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가득하길 바라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에 휩쓸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모든 바람을 이뤄가기 위해 힘쓰게 하소서.
여러분,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기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교회는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남교회가 교회다운 교회, 하나님 보실 때에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대형교회와 보수교회들도 교회 됨을 회복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표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표적
오늘 본문에서 표적은 목표 혹은 증거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것은 목표를 향해 달음질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표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017년 한남교회의 표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만, 우리의 표적이 되는, 증거가 되는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 화살이 과녁의 중앙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표적으로 오신 날, 예수님을 우리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시는 여러분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