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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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속지 말라(2)

  • 관리자
  • 2016-12-18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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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속지 말라.
야고보서 1:12-18

 

▪담쟁이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이 여러분 위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2016년 12월에 우리는 근현대사에 기록될만한 굵직한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오를 수 없는 벽, 그러나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그 담쟁이처럼 절망하지 않고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의 근원에 깊이 들어가 보면, 스스로 거짓 신들을 섬긴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에게 우리의 잘못을 전가하지만, 이런 괴물 같은 현실을 만든 것은 그가 아니라 ‘거짓 신을 섬기던 바로 나’라는 자각이 없다면, 우리는 소중하게 얻은 기회를 다시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배경

성경에는 거짓 신들에 속아서 허탄한 길을 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야고보서의 말씀도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면서 거짓 신들을 섬김으로 생기는 문제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 그중에서도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교정하여 올바른 믿음이란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서신입니다. 야고보서에서의 거짓 신은 우상이라기보다는 형식적인 믿음,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 겉과 속이 다른 믿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혜는 진리를 아는 것이 포함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지혜는 생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안다고 해도 그 진리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지점,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는데 생활로는 살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 바로 ‘거짓 신’이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이신득의' -믿음으로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 교리를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교리를 잘못 이해한 신자들은 생활 속에서 믿음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그냥 관념적으로 믿는 믿음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자신을 속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야고보는 믿음의 생활적인 측면을 가르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서신을 썼습니다. 저자는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가 쓰여진 시기는 A.D. 49-60년 사이인데,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는 A.D. 44년 경에 이미 순교(행 12:2)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생활로 살지 않고, 머리로만 살면서도 거룩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던 사람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스스로 속아 사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문제들은 다양했습니다. 경건하지 못한 부자들 때문에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고(5:1-6), 성도들의 신앙이 형식에 치우쳤으며(1:22-27),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태가 발생했고(2:1-13), 말과 행동이 거칠어서(3:1-12) 성도들 간의 교제가 단절되어 갔습니다.

 

대한민국도 그렇습니다.

옳은 길이 무엇인지 몰라서 이토록 불법이 판을 치는 나라가 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 삶인지는 알지만, 그렇게 살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들 때문에 대다수 국민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고, 신앙인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인 국가의 문제에 관심이 없었고, 가진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2:1-13),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고, 사람들 간에 친밀한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12절의 시험은 (헬)페이라스모스 -외적인 환난과 내적인 유혹-로 1장 3절에 나오는 '시련' (헬) 도키미온 - 믿음을 연단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야고보서를 번역할 때에 시험과 시련을 혼재해서 번역하는데 시련과 시험은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은 주지 않으시지만, 연단을 위한 시련은 주시는 분이십니다(13). 시험은 내적인 유혹, 욕심 때문에 당하는 것이며, 내적인 유혹에 빠져 살아온 결과로 외적인 환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은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시험을 겪고 있는 것일까요? 솔직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볼 때에는 시험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의 미래와 장래를 생각하며 지도자를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고, 허황된 장밋빛 공약과 과거의 향수에 빠진데다가 선거철만 되면 병처럼 도지는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우상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시험을 극복하려면 우리 안에 있는 거짓 신들을 뽑아내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자기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단순히 견디라는 말씀이 아니라, 자기 욕심을 버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의 별명은 ‘늙은 낙타무릎’이었다고 합니다.

여러 해 동안 작정하고 기도한 나머지 무릎에 굳은살이 두텁게 박혀서 얻은 별명입니다. 기도는 지혜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1장 5절 말씀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으로 말미암은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즉, 시험을 참으려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어놓을 때, 자신의 욕심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일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때문에 고난 겪고 있습니다. 스스로 시험에 빠지는 현실, 시험을 참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자초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우리의 신앙의 깊은 내면을 돌아봐야 합니다.

 

어느 대형교회가 수백억의 건축비용을 들여 화려한 교회당을 지어놓고 ‘하나님이 다하셨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그에 분개하는 어떤 분이 현수막에 ‘0’자 하나를 붙여서 꼬집었습니다. ‘하나님이 당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하나님이 영광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신앙을 빙자한 자기 욕심의 투영이라면, 믿음이 생활로 살아지지 않는다면 시험을 참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자초하는 삶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내 안에 뿌리박고 있는 욕심을 버리는 것, 그것이 시험을 참는 것입니다. 그런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12월의 기도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 지고 싶어 부유함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기도를 지은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미국 남북전쟁 때 전사한 어느 군인의 주머니에 들어있었던 기도문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되면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이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참으로 많은 날을 이렇게 기도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큰일을 하겠노라고, 많은 일을 하겠노라고, 그러니까 건강도 주시고 부유함도 달라고, 남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나를 속이는 일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일은 큰일이 아니라 남 보기에 초라하더라도 지금 내가 맡은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갈고 닦아서 더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도 내가 하는 일보다 가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하는 것을 보면서, 내 모습 이대로 온 힘을 다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행복이라는 것도 더 많이 소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에게서 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고, 그것이 사소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에 지혜에 조금은 더 가까워졌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속지 말라!”

그러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1장 17절 말씀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십니다. '회전하는 그림자'가 의미하는 바는 아리송하거나 분명치 않은 것을 말합니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동굴에 갇혀서 오로지 한 방향, 동굴의 벽면만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동굴 벽면에는 그림자가 어른거리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실재인 줄로 착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신앙이 일상에서 생활로 살아지지 않으면, 자기의 욕심을 구하는 거짓에 머물러 있으면 마치 ‘회전하는 그림자’를 실재라고 착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용기를 내어 뒤로 돌아 동굴 밖으로 나가 빛의 세상을 만납니다. 빛의 세계를 본 사람은 동굴 안에 갇혀서 그림자가 전부라고 믿고 사는 이들이 불쌍해서 다시 용기를 내어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빛의 세계'를 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말이라며 그를 죽여버립니다. 죽여버린 그 사람이 예수는 아닌가요?

12월, 대림절,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는 시간입니다. “형제들아, 속지 말라!” 내 안에 거짓 신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드러나게 하여 신앙과 삶이 어우러진 귀한 믿음 지켜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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