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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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하지 말자(마태복음 13:1-9)

  • 관리자
  • 2016-11-27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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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하지 말자
마태복음 13:1-9

 

대림절 첫째주일입니다.대림절은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이며, 이 땅의 삶이 너무도 힘들고 고달파 하나님께 부르짖는 이들에게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오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셨듯 우리를 해방해 주시기를 간절하게 고대하는 절기입니다. 대림절기의 상징색은 보라색인데 보라가 상징하는 바는 고난입니다. 하나님 처지에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는 행위 자체가 고난입니다. 물론, 인간은 보라의 상징에 황제, 왕을 추가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대림절기와 성탄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떠올립니다. 이 대림절기에 평화의 왕, 해방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11월 7일은 겨울의 문턱인 입동이었고, 22일은 살얼음이 얼긴 하지만 ‘작은 봄(小春)’이라고 부르는 소설이었습니다. 입동이 지나면서 떨어지는 낙엽들이 많습니다. ‘만물귀근(萬物歸根)-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온 곳(뿌리)으로 돌아간다-’이라고 하는데,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나뭇잎들은 뿌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디론가 옮겨집니다. 아스팔트가 아니라도 추수를 마친 논도 마찬가집니다. 짚은 하얀 비닐에 롤 화장지처럼 쌓여서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축들의 사료가 되어 구유를 채우기 위해 발효되고 있습니다. 텅 빈 들판과 거리가 쓸쓸합니다.

 

텅 빈 들판과 텅 빈 거리에서 고진하 목사의 <빈들>이라는 시를 떠올렸습니다.

 

늦가을 바람에
마른 수숫대만 서걱이는 빈들입니다
희망이 없는 빈들입니다
사람이 없는 빈들입니다
내일이 없는 빈들입니다
아니,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무도 들려 하지 않는 빈들
빈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당신

 

시인에게 ‘빈들’이란 표현은 노인들만 남은 농촌 현실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고, 귀양 온 듯 쓸쓸한 자기 내면 풍경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쓸쓸합니다. 그래서 그는 희망도, 사람도, 내일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는 ‘아니, 그런데’라는 시구를 통해 전환됩니다. 시인은 텅 빈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떤 분, 그 쓸쓸한 풍경을 감싸 안고 있는 분의 품을 느낍니다. 잊힌 것 같고, 뒤처진 것 같고, 미래에 대한 전망조차 불투명해 마음이 무거울 때, 하나님은 그렇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삶이 번거롭다고 느낄 때면 빈들을 찾아야 합니다.

2000년 전 로마 제국의 강압적인 지배 아래 신음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광야로 나갔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기 위해서도, 비단 옷을 입은 사람이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눅7:24-26). 광야 혹은 빈들은 인간의 허장성세가 모두 사라지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그곳은 사람들로 하여금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은 모두 광야에서 담금질 되었고,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세례요한, 예수님 역시도 그랬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씨를 뿌립니다.

빈들 혹은 광야를 떠올리게 되는 이 계절에 저는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씨 뿌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대림절 첫째주일에 빈들이나 광야와도 같은 황량한 이 나라지만 “아니, 그런데” 시인의 노래처럼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당시의 지중해 세계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장한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도 감히 로마의 통치에 맞설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주님은 제국의 변방인 팔레스타인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제국의 한복판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소설(小雪)-작은 봄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 다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도래하는지를 가르치거나,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이들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가르칩니다. 오늘의 본문인 뿌려진 씨에 대한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비단 농부의 일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씨를 뿌립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오늘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씨가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서 혹은 우리 역사 속에서 싹이 트고 자랍니다. 우리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씨를 뿌리느냐?” 입니다. 아무 씨나 뿌릴 수는 없습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씨를 뿌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명과 평화의 씨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주전 8세기의 예언자 호세아를 통해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라. 지금은 너희가 주를 찾을 때이다. 묵은 땅을 갈아엎어라. 나 주가 너희에게 가서 정의를 비처럼 내려 주겠다"(호10:12)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호세아 10장 13절의 말씀대로, 너무나 많은 이들이 밭을 갈아서 죄악의 씨를 뿌리고, 반역을 거두어 거짓의 열매를 먹습니다(호 10:13). 참담한 일입니다.

 

2. 말씀을 늘 새롭게 만나십시오.

 

오늘 비유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비유입니다. 농부가 들에 나가서 씨를 뿌렸습니다. 흩뿌리는 파종법이었으니 씨들은 다양한 환경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것도 있고, 돌짝밭에 떨어진 것도 있고,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것도 있습니다. 제자들의 요청을 받고 주님이 해주신 것으로 되어 있는 비유 해설의 내용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합니다. 주님은 씨는 곧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길가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곧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가므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일컫습니다. 돌짝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잠시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시련이 다가오면 곧 떨어져 나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지만 삶의 근심과 재물과 인생의 향락에 사로잡혀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들을 상징합니다.

 

매우 도식적입니다. 많은 학자는 비유에 대한 이 해석은 예수님 자신이 하신 것이라기보다는 초대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의 가르침이라 하여 우리가 소홀히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해석을 들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어떤 밭일까?" 스스로 자책을 하는 이들은 그래도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비유 해석을 들으며 다른 이들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길가와 같은 사람’, ‘돌짝밭 같은 사람’, ‘가시덤불 같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경우야말로 말씀의 오용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이를 판단하기 위해 말씀을 활용하지 말고, 스스로 성찰하기 위해서만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비유는 늘 새롭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말씀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익숙한 것들이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익숙해진다는 것은 상투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기록된 말씀을 읽고, 선포된 말씀을 들으면서도 삶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까닭은 말씀과 교회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는 말씀’이 되는 순간 말씀은 힘을 잃습니다. 우리의 못난 자아를 깨뜨리지도 못하고, 우리 속에 있는 선의 가능성을 싹 틔우지도 못합니다. 물론 똑같은 말씀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무심히 흘려들을 때가 있는가 하면, 우리 존재의 기반을 뒤흔드는 말씀으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과 늘 처음 만나는 것처럼 만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만남은 사건을 일으킵니다.

 

3. 허비된 씨앗들도 소중합니다.

 

사람들은 이 비유를 해석할 때마다 재빨리 옥토에 떨어진 씨의 운명에 집중합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상승되는 그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백 배의 결실을 거두는 인생을 살라는 메시지에 “아멘!”으로 응답한 후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 옛 생활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투덜거리고, 불평을 내뱉고, 욕심부리고, 원망하고, 좌절합니다. 말씀이 허비되었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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