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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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감사하라(창립62주년)

  • 관리자
  • 2016-11-20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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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감사하라
마태복음 6:31-34

 

오늘은 한남교회 창립 62주년 기념 주일이며, 2016년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11월 셋째 주에 추수감사 주일을 드리게 된 유래는 영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청교도들이 미국의 플리머스로 이주하여 인디언들로부터 배운 경작법으로 봄에 옥수수를 재배하여 가을에 풍년을 거두었습니다. 이때 청교도들은 자신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주어 굶어 죽지 않도록 배려한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추수한 곡식과 과일, 야생 칠면조와 사슴을 잡아 축제를 열었는데 이것이 미국에서 청교도가 지킨 첫 번째 추수감사 주일이며, 미국 기독교가 한국에 전해지면서 11월 셋째 주를 추수감사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근래에는 한국 실정에 맞게 추석에 추수감사 주일을 지키는 교회도 많아졌습니다만, 대체로 개신교회는 11월 셋째 주를 추수감사 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 주일은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함께 추수의 기쁨을 나누는 주일입니다.

1955년 11월 20일, 추수감사 주일에 주중근, 조정동 전도사와 김성수 씨등 3인이 김성수 씨 집에서 설립예배를 드리면서 한남교회가 시작되었는데, 처음 예배를 드렸던 곳이 지금 유엔빌리지가 있었던 한남동이었으며, 2대 당회장으로 시무하시던 장희진 목사님이 1967년 지금의 위치에 대지를 매입하여 성전을 착공함으로 오늘이 이르렀습니다. 옥수동에 있지만, 한남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내력입니다. 지난 62년 동안 한남교회를 지켜주신 하나님과 한남교회의 일꾼으로 교회를 섬겨오신 권사님들과 장로님들과 교우들께 감사드리며, 그동안의 땀 흘림이 귀한 열매를 맺어 한남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1. 말씀의 실상(實相)

 

구상 시인의 <말씀의 실상>이라는 시를 한 편 읽어드리겠습니다.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어지며
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새삼 놀라웁고/창밖 울타리 한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復活)의 시범(示範)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창창(蒼蒼)한 우주(宇宙), 허막(虛莫)의 바다에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象徵)도 아닌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

어느 날 시인의 영안이 열립니다. 그러자 이전에는 당연하게 느껴지던 모든 일상이 새롭게 보입니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이 기적처럼 놀랍고, 개나리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봅니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바닷가 모래알보다도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되니 이것이 곧 ‘말씀이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말씀을 관념으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는 고백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내가 소유한 것이 나인 줄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소유한 것이 다 사라져도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넉넉하고, 부유하기를 원합니다. 게다가 세상은 삶의 성공 여부를 소유물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판단하실까요? 진정 성공한 삶은 하나님께서 끄덕이며 인정하는 삶입니다. 이 사실은 관념으로는 알기는 쉽지만 살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잘 살고 못 살고 - 차, 집, 연봉…. 이런 것에 가치를 두면 늘 나보다 잘난 것이 보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슬픈 짐승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죽음 앞에서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은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려면 '희소성'있는 것,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흔합니다. 공기와 물과 흙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법이며, 흔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별 짓기의 욕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모두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 오늘 본문 32절의 내용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과 여기에 있는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구하는 소유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며, 그때에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관념으로만 알지 마시고, 구상 시인의 고백처럼 그 말씀이 여러분 삶의 실상이 되길 바랍니다.

 

2. 난 별일 없이 산다.

 

장기하라는 젊은 가수가 <난 별일 없이 산다>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 나는 별일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오늘밤 절대로 두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나는 별일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

별 일없이 오늘을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생명은 값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있음은 곧 주어진 것이므로 은혜요, 그래서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별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별일 없이 살아가는 오늘로 인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골에서 목회하는 후배 목사가 몇 년 전, 자기의 페이스북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전집을 갖고 싶은데, 자기의 사례비로는 어림도 없다는 푸념 어린 글을 남겼습니다. 그 글을 읽고 난 후에 내 책꽂이에는 몇 달째 읽히지도 않고 꽂혀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전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외하고 나머지 전집을 다 포장해서 후배에게 보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으로 유명한 니코스 카쟌차키스는 생전에 묘비명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그런 그도 죽기 전에 자신의 일을 마칠 수 있도록 시간을 조그만 더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적선하시오. 내 형제들이여. 내게 십 오 분씩만 적선하시오”

 

그러나 날이 저물었습니다. 누구도 자기의 생명을 나눠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그는 그 이듬해 1957년 일흔 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명은 내가 얻은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므로 줄 수 없습니다. 소멸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불멸하는 것은 살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출산, 잔치, 장례- 삶과 죽음의 과정들을 지켜봤으나 요즘은 모릅니다. 여기서 '사람 됨'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서 몸으로 하는 일이 줄어들고, 점점 무능력해졌습니다. 돈에서 벗어나는 길 -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기독교인들이 잘산다는 의미는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을 많이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면 돈 혹은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죽음은 모든 것을 갈라놓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죽음조차도 파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31절과 34절 말씀에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의 깊은 뜻입니다.

오늘을 한껏 살아가십시오. 그러려면 숨 가쁘게 뛰어가던 걸음에서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가는 삶을 택하십시오. 그러는 중에 영혼의 백태가 벗겨지고, 나의 일상에 이미 주어진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일상을 감사하며 살아가시므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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