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조율입니다.
시편 130:1-8
이번 주에는 지난주 주보에 광고했던 본문과 제목이 아니라 다른 본문과 제목입니다.
게다가 지난주 주보에 성경 본문이 요한복음이라고 되어있는데 ‘마가복음’입니다. 아마도 본문 말씀이 ‘요한’으로 시작되어 제가 착각한 듯합니다. 이렇게 설교를 바꾸게 된 것은 지난 수요일 미국 대선결과와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만 ‘헬조선’인줄 알았는데, 미국도 ‘헬메리카’이며, 초강대국 미국이 기침만 해도 감기에 걸리는 대한민국이 이 험난한 세월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걱정되었습니다. 유능한 지도자가 있어도 힘겨운 형국인데, 지도력을 잃어버린 무능한 대통령은 여전히 자리유지에 급급하고 있고,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당리당략에 따라 이합집산합니다. 그리고 일부 국민은 지혜롭게 판단하지 못하고, 정치인들의 권력놀음에 놀아나고 있으니 기도하지 않고서는 이 위기의 시간을 어찌 보낼 수 있겠습니까? 상처받아 탄식하는 이들이 위로받는 길은 무엇일까? 이런 위기의 시대에, 마음이 평안함을 잃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지난주에는 교회 옥상 방에 올라가 보니 옥탑방 한구석에 베이스 기타가 있습니다. 가지고 내려와 조율하면서, 머지않아 베이스 기타가 어우러진 찬양이 한남교회에서 불리길 기도했습니다. 기타를 조율하면서 ‘기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기도는 하나님과 내 생각을 조율하는 시간이다.” 기도를 통해서 평안함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며,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설교 본문을 오늘의 본문으로 바꿔서 준비했습니다.
1. 기도는 조율입니다.
인생은 만만하지 않고, 어렵습니다. 왜 어렵습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인간의 유한함과 연약함을 인정하는 행위이며, 기도의 대상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입니다.
삶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고 살아갈 것인가?
세상은 돈을 의지하라 하고, 명예나 권력을 의지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기준 음으로 삼고 살아가야 함을 압니다. 너무 팽팽하면 느슨하게 풀어주고, 너무 느슨하면 조여줘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조율해가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내가 기도한 대로 다 이뤄졌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이 세상은 어찌 되었을까? 예를 들어 소풍 가는 날, “비가 안 오게 해주세요.” 기도했는데, 가뭄으로 힘겨워하는 농부가 “하나님, 비가 오게 해주세요.”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까? 독립운동가이자 <성서조선>을 창간했으며, 소록도의 나병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했던 김교신이라는 분은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저의 기도를 기각하신 것입니다.” 성숙한 기도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기각하신 것까지도 감사하는 데까지 이르는 기도입니다.
2011년에 작고하신 소설가 박완서 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소설이나 수필이라기보다는 저자의 표현을 따르면 일기라고 할 수 있는데, 똑똑하고 마음 씀씀이도 넓고 다재다능한 의사 아들이 25살의 꽃다운 나이에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죽습니다. 박완서 씨는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왜, 내 아들을 그렇게 데려가셨습니까?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하나님은 제 아무리 독한 저주에도 애타는 질문에도 대답이 없었고’라는 문장을 통해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힘겨워하며 ‘진실한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소리도 말짱 헛소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탄원을 하면서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교만이 꺾이긴 했지만, 교만 뒤에 온 것은 겸손이 아니라 황폐함이었다며 나의 교만을 꺽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왜 죄 없는 아들을 데려가셨느냐고 항변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박완서 씨는 어는 젊은 수녀가 문제아인 자기 동생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왜 내 동생이 저래야 하나? 생각하다가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면 안 되나?’라고 생각을 바꿨다는 말을 들은 후,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데려가지 말하는 법이 어디 있나?” 생각의 전환을 이루며 하나님과의 간격을 조율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 시편 130편은 탄원시입니다.
시편은 ‘찬양시’와 ‘탄원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찬양시’보다는 ‘탄원시’가 더 많습니다. 탄원은 하소연을 말합니다. 우리는 가끔 너무너무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합리적이지 못한 상황들을 만납니다. 원수들이 날 잡아먹으려 하고 진실한 뜻은 오해를 받습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가 많이 겪지 않습니까? 그처럼 기가 막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것 같은 오해도 받고 모함도 받고 죽임을 당할 것 같고 다 망하고 병들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하소연하는 시편을 가리켜 ‘탄원시’라고 합니다.
시편의 탄원시는 우리의 삶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탄식어가 등장합니다.
“어찌하여…. 내게 이런 일이……. 악한 이들은 저렇게 잘 나가는데….”, “언제까지……. 단축시켜 주옵소서!”,
그렇지 않습니까?
박완서 씨도 아들을 잃고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탄원시는,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을 미주알고주알 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아뢰는 것입니다. 이렇게 넋두리를 하다 보면 평안해지고, 어려운 시절에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회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싹틉니다. 고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실은 그대로인데, 은총의 기억이 회복되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이것이 탄식시의 구조입니다. 기도는 상황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도자를 변화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선배이신 김교신이 이야기하는 ‘기각’이요, 마침내 기도가 기각됨을 감사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기도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깊은 기도를 드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기도는 대화입니다.
탄원의 기도는 아룀으로 시작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내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아룁니다. “하나님, 이렇고 저렇고…….”그렇게 아뢰는 순간부터 내가 붙잡혀 사는 것으로부터 느슨해집니다. 이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또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뢴 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아뢰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라고 하셨지,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잖아….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조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고, 청원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청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제 하나님께서 이야기하실 차례가 되었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해 버리면, 하나님이 얼마나 황망하실까요? “이제, 내가 너에게 이야기할 차롄데…….”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일방적으로 청원만 하고 하나님을 당황하게 하는 기도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성숙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는 중에 여러분이 기도하는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때론, 상황이 변하지 않았어도 여러분이 변하므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자신이 변하면 세상도 달라 보이는 법입니다.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주간 나라문제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다 보니 분노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이런 일들은 이미 이전부터 있었고, 단지 우리가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문제가 드러났으니 이제 치유할 길이 열린 것입니다. 화낼 일이 아니고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한 개인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이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건강한 나라가 될 것인지에 대해 기도하게 되고 마음도 다시 평정심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 주 설교를 변경한 이유기도 합니다.
4.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십시오.
제 절친한 친구 중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3년 전에 그 친구가 자기 아들들에게 유언처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달라고 해서 제가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업하는 친구이다 보니, 인간관계나 직장생활을 하게 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등등 ‘처세술’에 대한 이야기와 자기의 살아온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제가 감동한 것은 휴대전화에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기도문이 들어 있고, 매일 출퇴근 길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기도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적어서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루를 열어갈 때와 잠을 잘 때 늘 기도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이전에 살아보지 못했던 오늘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후에 ‘몸 기도’를 드립니다. 머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깨닫는 지혜를 주십시오. 귀를 위해 기도합니다. 귀를 열어주셔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하소서. 입을 위해 기도합니다. 복된 말을 하게 하시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탐식하게 마옵소서. 손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내 손을 들어 선한 일을 하게 하소서. 발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발걸음을 인도하옵소서. 그리고 저녁에 잘 때에는 ‘하나님, 혹시 내일을 맞이하지 못할지라도 감사하오니 평안하게 잠들게 하옵소서.
기도를 습관화하려면,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십시오. 정기적으로 고르게 반복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호흡이 불규칙하면 병든 것이지요. 건강한 사람은 호흡이 규칙적이고 깊습니다. 이렇게 깊은 기도를 하면, 옛사람이 죽고 새로워집니다. 늘 기도하는데도 변하지 않는다면 한 번 더 깊게 기도해 보십시오. 변하지 않으려는 마음, 이 정도면 다 되었다고 하는 마음이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기도는 조율입니다. 내 말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조율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기도는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동시에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기각되는 기도에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듣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기도를 훈련하십시오. 기로도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십시오.
상처와 아픔이 많은 시대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분간 더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현실이 도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세상 풍조에 휘둘리지 마시고, 기도로 여러분의 마음을 지켜가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