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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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관리자
  • 2016-09-25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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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지난주에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은 1) 창조주이시며, 2) 부성과 모성을 지니신 분이시며, 3) 복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수많은 속성 중 몇 가지입니다만, 이 세 가지만 잘 이해하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하는 것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바로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조금 길지만 지난 주간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정호승 님의 시를 한 편 소개할까 합니다.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나는 왜 아침 출근길에
구두에 질펀하게 오줌을 싸놓은
강아지도 한 마리 용서하지 못하는가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는 순간
새로 갈아 신은 양말에 축축하게
강아지의 오줌이 스며들 때
나는 왜 강아지를 향해
이 개새끼라고 소리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개나 사람이나 풀잎이나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산에 개를 데려왔다고 시비를 거는 사내와
멱살잡이까지 했던 내가
왜 강아지를 향해 구두를 내던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데
나는 한 마리 강아지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윤동주 시인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밥만 많이 먹고 강아지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생의 순례자가 될 수 있을까
강아지는 이미 의자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강아지가 먼저 나를 용서할까봐 두려워라

(정호승의 시 전문)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하면서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시를 읊었던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가방에 넣고도, 구두에 오줌을 싸놓은 개를 보면서 ‘개새끼!’라고 험한 말을 내뱉고, 구두를 던져 버리는 정호승 시인,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이 달라 한동안 그의 글과 시를 멀리했는데 다시 팬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은, 마치 저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였기 때문입니다. 중략하고 이렇게 바꿔보았습니다.

 

성경이 든 가방을 들고

......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나님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내 작은 아픔에는 쩔쩔매면서,
억장 무너지는 남의 아픔은 참으라고 하면서
어떻게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면서 “나는 누구인가?” 고민했습니다.

 

1. 나는 ‘흙’에서 온 존재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 대해서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합니다. 욥기 34장 15절에는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하니, 허무한 존재일까요? 아닙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인간은 ‘허무한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흙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은 흙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흙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흙은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은 ‘생명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서로 생명을 나누며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흙은 모든 것을 품는 사랑입니다. 흙은 쓰레기와 오물도 마다치 않고 다 품습니다. 생명의 바다로 불리는 바다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품어 깨끗하게 합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다 껴안고 품어 줍니다.

 

흙은 정직합니다. 뿌린 대로 돌려줍니다.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압니다. 흙에 배추씨를 심으면 배추를 거둘 것을 알고, 볍씨를 뿌리면 쌀을 얻을 줄 압니다.

흙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기꺼이 도구로 사용됩니다. 토기장이의 뜻대로 만들어지지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 그것이 흙의 특성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사람만 흙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동물들도 흙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에게는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래서 동물은 본능에 따라 살지만, 인간은 본능을 넘어선 삶을 살아갑니다.

 

흙에서 왔으므로 깨어지기 쉬운 존재지만, 동시에 생명을 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 그래서 박웅현은 <여덟단어>라는 책에서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Amor fati. 삶을 사랑하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 그것이 인간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죄를 하자, 그를 꼬인 뱀이 저주를 받습니다. 창세기 3장 14절에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 것이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뱀이 흙을 먹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지요. 뱀이 흙을 먹을 것이라는 말씀은, 끊임없이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뱀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파스칼의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생각이 없는 존재라는 말이 아니라, 생각이 있어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 때문에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흔들리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흔들리는 사람들끼리 더불어 살아가면서 우리의 믿음을 지켜가야 합니다. 만일, 혼자서 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었다면, 교회는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라는 공동체입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감싸주십시오. 흙의 사랑으로 품어주십시오. 그것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도구된 이들의 삶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우리 안에 심겨진 씨앗은 귀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2. 나는 ‘신령한 복을 받은’ 존재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심을 배웠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그 ‘복’이 구체적으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령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이미 계획하시고, 그 계획 안에서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나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한남교회에 속한 모든 분이 ‘창세 전에 하늘의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 선택된 특별한 분들이십니다.

이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자신감을 품고 살아갈 때에, 흙에 심긴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듯이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지길 바랍니다.

가을이 되니까 바람이 많이 붑니다.

 

바람이 많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면 설익은 과일들이 떨어집니다. 때론 나뭇가지가 부러지기도 합니다. 봄에도 바람이 제법 많이 부는데, 바람이 불면 꽃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익어가는 과실이 떨어지고, 애써 피어난 꽃이 떨어지는 것은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복입니다. 만일, 피어난 꽃마다 다 열매가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잘한 열매만 맺을 뿐 아니라, 열매 때문에 가지가 찢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떨어진 꽃과 열매에 감사해야겠지요. 경쟁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경쟁사회에서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떨어진 꽃이나 과실 같은 이들, 실패자라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감사하며 나누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들의 희생과 아픔이 없었더라면, 내가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자각만이 온전한 나눔의 기초가 될 수 있으며 더불어 삶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 역시도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귀한 존재라는 자각, 여기에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길이 열립니다.

 

3.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릴 적 교회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 얼굴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생각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모두가 믿는 하나님의 자녀.’ 이 말씀을 믿습니까? 너무 쉽게 “아멘!”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우리 한남교회에서 실천되도록 한마음 한뜻이 되어 힘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가족은 서로의 부족한 것을 흉보는 것이 아니라 감싸줍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기꺼이 희생합니다. 혈육을 나눈 가족끼리도 성격이 다릅니다. 좋은 가정은 장단점을 잘 조화시켜가며 가문을 이뤄갑니다. 한남교회에 속한 가정들은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미리 경험하고 맛볼 수 있는 곳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두 곳인데, 그곳이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다 잘 될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론, 옳은 일이기 때문에 손해를 봐야 한다면 기꺼이 손해 보는 쪽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다시금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는 목사로 만드신 것이지요. 여기에 계신 다른 분들은 목사가 아니어도 주일 성수는 물론이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실 분들이시지만, 저는 목사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으니까 목사로 만들어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목사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일이겠지요.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신령한 복을 받은 존재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흙에서 온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로 지음 받은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삶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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