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누구신가?
스바냐 3:14-17
전자제품이나 공구 같은 것을 사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사용설명서’가 그것인데, 비싼 제품은 ‘사용설명서’를 꼼꼼하게 살펴야 제값만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에도 ‘사용설명서’가 따라오는데, 사용설명서를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카메라만이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사용설명서 없이도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익힐 수도 있지만, 사용설명서를 잘 따르면 훨씬 더 전자제품이나 공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 신가?’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아버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유한한 존재물인 인간이 영원한 존재인 하나님을, 어둠인 인간이 빛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마치 맹인이 코끼리를 더듬어 어느 한 부분을 인식하는 정도에 불과한 자기가 이해한 하나님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알 수 없으니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용설명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해 주신 성경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겸손하게 그분의 높이와 깊이와 경륜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일평생 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온전히 알 수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마치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행세한다면, 그는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오늘 스바냐 3장 17절에도 “하나님은 누구 신가?”에 대한 안내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풀실 전능자이시다.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분이시다(17).’
우리 가운데 계시며,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기뻐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마치,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가 잘되었을 때에 기뻐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형통하게 하시고, 그를 통해서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기의 창조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누구신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여기서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하나도 없습니다. ‘태초, 하나님, 천지, 창조’라는 네 단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태초가 언제입니까?” 과학자들도 ‘모른다’고 대답하고 있으며, 최근에서야 철학적으로 ‘시간 밖에 있는 시간’으로 정의했을 뿐입니다. 창조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시간’이 생겼고, ‘시간 안에’ 살아가는 피조물들이 생겼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시간 안에 살아가는 존재물이 ‘시간 밖에 있는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미 우리 불완전한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천지는?“ 이 우주가 얼마나 광활합니까? 지구를 닮은 최단거리 행성 ‘프록시마 b’가 발견되었다고 사람들이 무척이나 좋아했지요. 혹시 지구가 망하면 그곳에 가서 살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간의 기술로는 수천년이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먼 별은 200억 광년 거리에 있는 별인데, 이 거리는 1초에 30만km를 달리는 빛이 200억 년 동안 계속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것이 천지입니까? 아니, 천지의 일부입니다. 그러니 누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를 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창조는?” 마음만 먹으면 못 만들 것이 없다고 자부하는 과학기술도 인간의 생명인 ‘피’를 한 방울도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처럼 ‘창조’행위를 통해서 ‘생명’을 만즐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신비로운 네 단어로 구성된 창세기 1장 1절,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 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대단한 말씀이 왜 하나님의 ‘사용설명서’에 해당하는 성경 첫권 첫 구절에 자리하게 되었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분석하지 마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남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을 맹종하지 마시고,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며 믿으시기 바랍니다. 안 그러면 이단 사설에 장단 맞추며 춤추게 됩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 ‘부성과 모성을 함께 지니신 분’이십니다.
창세기 1장 27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자로? 여자로? 사람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부성적인 존재로 이해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모두 지니고 계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형상이란, 모양이나 외형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속성’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풀면, 하나님은 부성과 모성을 함께 지니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모성이야말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최대 선물이요, 은총입니다. 부성이 미치지 못하는 모성은 부드럽고 포근하고 그윽합니다. 이사야 66장 13절에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하시는 말씀이나, 마태복음 23장 37절에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는 말씀 외에도, 모성의 하나님이 아니시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경말씀은 너무도 많습니다.
3.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1:27-28절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을 주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인간에게 뭔가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뭔가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복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던 그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즉시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즐겨 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이 무엇일까요?
이재천 목사는 복을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애프터서비스’라고 했습니다. 값비싼 물건일수록 AS가 철저한데, 인간은 워낙 귀한 존재라서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AS가 없이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구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단지, 하나님 없이 복만 구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제대로 복받는 삶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스바냐 3장 14-17절의 말씀과 연결시켜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요약하면 이런 말씀입니다.
“그날이 오면 너희가 노래하고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 터인데, 그 모든 행위의 주체는 너희 가운데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렇게 너희를 기쁘게 하시고 즐겁게 하시는 하나님은 너희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인해 더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또한 기뻐하시기 위해서 너를 사랑하신다.”
더 간단하게 요약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기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쁘게 하시고 복 주시는 분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도 기뻐하신 것입니다. 마치 자식들에게 선물을 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시는 부모님 같지 않습니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하시려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고자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재창조의 역사를 이뤄가십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은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부성과 모성을 함께 갖고 계신 분이시며, 복 주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로인해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기 위해 우리를 사랑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은 스바냐 3장 17절의 내용으로 만들어진 복음성가 한 곡을 명상하시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찬양이 여러분 삶에 힘을 주시기 바라며, 아시는 분들은 함께 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