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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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순종

  • 관리자
  • 2016-09-04 1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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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순종
로마서 5:12-21

 

오늘의 성서일과는 구약 창세기 3:1-13절,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는 내용’과 시편 37편 다윗의 시로 ‘악한 자들의 잘 됨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말씀, 마태복음 18:1-14절,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과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이나서는 목자 이야기‘, 바울서신의 로마서 5:12-21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으나, 한 사람의 순종으로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공통점은 ’하나의 중요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1. 한 사람의 순종이면 충분합니다.

 

이 말씀들의 공통점은 결국 ‘한 사람’에 초점이 있습니다. ‘하나의 소중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약하자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올 때,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들어왔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죄가 사형선고를 당했으며,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다니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악한 자들이 잘되는 것 같은 현실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한 사람이 되라, 그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이 세상은 충분히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한 사람, 그리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 한 사람,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키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시기를 바랍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만 제대로 서면!”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석공이 커다란 돌을 쪼개기 위해서 몇 번의 망치질이 필요할까요?
분명한 것은 쪼개지기 직전의 마지막 한 번의 망치질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몇백 번을 쳐도 쪼개지지 않을 것 같은 바위가 마침내 마지막 한 번의 망치질에 쪼개지듯,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 같은 곳에 ‘한 사람’이 더해짐으로 이전에 없었던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물도 그렇습니다. 99도에서 1도가 더해질 때, 마침내 끓기 시작하는 것이요, 1도에서 마침내 0도가 될 때 얼어버리는 것처럼, 한 사람이 더해지면 양적인 변화를 넘어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철학용어 중에서 ‘양질전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절한 양이 되면, 반드시 질적인 변화가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수학에서는 1+1=2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1+1의 가능성은 2가 아니라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이하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있어서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하고, 여러분의 일터가 성장하고, 한남교회가 행복하며 부흥하길 바랍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처럼, 한 사람의 순종으로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 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동시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한 사람을 초대함으로 그동안 여러분의 노력이 큰 결실을 보길 바랍니다.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공동체는 존립할 수가 없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99마리에 집착하면서 한 마리의 실종에 무관심하면, 다음에 또 다른 양이 실종되어도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100라는 숫자는 ‘완전’을 상징합니다.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완전함이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는 것은 ‘완전함’을 회복하기 위한 목자의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며, 목자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는 것은, 남아있는 양들에게 ‘너희도 잃어버린다면 이렇게 내가 찾아 나설 것이다.’라는 메시지이며, 하나가 없으면 너희도 완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2. 죄와 율법의 관계

 

죄는 율법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죄’라고 율법으로 규정되기 전까지는 죄인 줄도 몰랐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들어오기 전에는 사망의 길을 가면서도 그것이 사망의 길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죄는 헬라어로 ‘하마르티아’라는 단어인데, 뜻은 ‘과녁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입니다. 활 시위가 날아가고 있는데 과녁에서 벗어난 상황, 이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율법 이전에도 존재했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따라 살아가면 사망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후에야 사람들은 알았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죄라는 것을, 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 죄라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았던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기 전에는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면 자신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고대 근동의 신들은 모두 지배자들의 지배를 정당화시켜주는 수단이었습니다. 지배자들은 백성의 신이 되어 그들 위에 군림하고, 백성은 지배자들의 위해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신성한 삶이요, 조금이라도 반기를 들거나 의문을 품는 것은 신에 대한 불경죄였습니다.

 

중세 봉건사회에도 이런 생각들은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왔고,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이것은 불변의 진리였습니다. 피라미드 구조는 위로 올라갈수록 하늘과 가까운 존재이므로 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있는 사제와 왕 등 지배자들은 선할 뿐 아니라 신의 대리자이기에 그 아래 계급은 그들에게 무조건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만이 진리였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1789년 7월 14일~1794년 7월 27일 사이에 일어났으니,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후 1500년 가까이 기독교가 전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중세는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기독교가 전 세계를 지배했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암흑기’였다는 것은 사제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음을 증명합니다. 사제들에게 조금도 의심하거나 반기를 들 수 없는 상황에서 사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이익을 따라 훼손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프랑스혁명보다 앞선 1517년 마르틴 루터로부터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으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도 여전히 교회는 중세기독교가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사제에 대한 것입니다. 개신교로 치면 목사입니다. 목사가 교주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목사를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실망하실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목사도 여러분과 함께 구원의 길을 향해가는 신앙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탄식하며 교인들과 함께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좁은 길을 함께 걸어가는 목사, 그런 목사가 진짜 목사입니다. 종교개혁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율법을 통해서 죄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처럼, ‘만인사제직’ - ‘누구나 사제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누구든지 직접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밝혀 죄로부터 오는 죽음에서 해방 받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3.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는 말씀에서 순종하지 않은 한 사람은 아담으로 가리키는 것이고, 순종하신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불순종은 죽음을 가져왔지만, 순종은 생명을 가져왔습니다(1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여전히 죄가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에 대해서 죽은’(6:2)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의식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었다!”

죽은 것을 자꾸만 부여잡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 한 사람의 순종이 죽음과 생명을 가른 것처럼,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이거 하나쯤이야!’ 하는 순간에 죽어버린 죽음을 되살려오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2절에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십니다. 아주 작은 죄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고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 이런 한 사람이 가정과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생명의 바람을 불어오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전 세계를 감동하게 했던 마더 테레사 수녀는 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난 한 번에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난 한 번에 한 사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이다.

 

저는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남교회가 단순히 양적으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입니다. 한남교회는 지금 ‘한 사람의 순종’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순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그 한 사람의 순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여러분이 ‘그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동시에 함께 한남교회에서 예배드리는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관심을 두고 주일예배에 빠졌으면 안부를 전하십시오. 한남교회를 더욱더 건강한 교회, 더 행복한 교회로 만들어 가는데 ‘한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그 한 사람이 되시고, 그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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