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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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쳐서 보습으로(평화통일주일)

  • 관리자
  • 2016-08-14 12: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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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쳐서 보습으로
이사야 2:2-4

 

오늘은 ‘한반도평화통일주일’입니다. 먼저 전세계 교회가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드리는 ‘세계공동기도주일의 배경’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70년 전,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해방의 기쁨을 누렸으나, 해방 직후, 한반도는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어 분단의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1950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전쟁으로 대립과 갈등, 반목과 증오의 분단체제가 한반도에 고착화되었습니다.

2.
휴전협정으로 한국전쟁은 종식되었지만, 지금도 군사훈련과 크고 작은 무력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와 일본 등 강대국의 군비경쟁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의 화약고가 되고 있습니다.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한반도 배치,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과 탄저균 배달사건,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 등 강대국들의 군비경쟁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한반도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남과 북한 주민들은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 살고 있으며 사회적 진보보다는 군사적 방어를 위해 서로의 귀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3.
남과 북은 현재의 휴전상태를 종식하고 영구적인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남과 북이 겪어온 대립과 갈등을 지속적인 교류와 소통, 적극적인 화해와 협력을 통해 극복하고 서로의 다름이 증오와 차별보다는 번영과 축복의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4.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는 매년 8.15 직전주일을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로 제정하고 전 세계교회가 이 기도주일을 지켜줄 것을 당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5.
1988년 이래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과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문을 함께 작성했고,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 예배시 세계의 많은 교회가 이 공동기도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사야서 2장의 말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이 땅에 이뤄지길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 본문의 역사적인 배경

 

B.C. 740년 경에 이사야가 선포한 말씀입니다. 이 시기는 솔로몬 사후에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단되어 살아가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풍비박산이 나고, 남왕국 유다도 머지않아 바벨론에 의해 멸망될 시기였습니다. 이사야는 남왕국 유다에서 예언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들의 죄 탓에 결국은 남왕국 유다도 망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왕국 유다를 강대국 바벨론에게 넘겨주실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당시, 이스라엘에게 있어 하나님의 성전은 형식적인 종교생활의 도구였습니다. 그들은 절기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않았고, 이미 그들은 앗시리아나 바벨론이라는 신흥강대국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갔으며, 그들을 의지해서 살아갔습니다. 그들이 의지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강대국이었으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삶이 아니라 세상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을 돌이키게 할 방법은 달리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강대국에게 넘겨주시기로 작정하시고, 남은 이들을 불러 ‘평화의 나라’를 이뤄가실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 계획을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2. 예언자의 아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사야는 남왕국 유다의 출신으로 B.C.745-695년까지 50년간 활동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고위직 가문 출신으로 여러 해 동안 정치적, 종교적인 고문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라는 예언을 넘어서는 조국을 향하여 “너희는 망할 것이다.”라는 예언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남왕국 유다사람들은 이사야를 ‘매국노’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이사야는 그대로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하자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극대화되었고, 종교는 외적인 형식에 집착해서 본질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종교적인 고문으로 활동했던 이사야는 끊임없이 고언을 했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희망이 없다. 하나님은 너희를 버리실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예언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언자의 아픔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혹은 백성이 원하는 말씀을 전할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의 기대에 편승할 수 없다는 것, 그들이 좋아하는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 예언자의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보다는 자기의 뜻을 전하고, 교인의 구미에 맞는 설교를 위해 골몰합니다. 교인들 역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자기의 마음에 맞는 말씀만 취사선택해서 들으려고 합니다. 예언자적인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줄어듭니다. 오로지 교인들이 듣기 원하는 설교는 자신들을 축복해주는 설교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사실, 축복은 덤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축복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에는 별반 관심이 없고 결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신앙의 비극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신앙이란,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과정에 충실한 신앙입니다.

 

3. 칼과 창을 쳐서 보습으로

‘칼과 창’은 ‘무기’입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무기는 결국 상대방을 죽이는 도구입니다. 과거에 전쟁할 때에는 직접 물리적인 폭력을 가해서 상대방을 제압했기에 한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버튼 하나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폭력적인 장면을 보지 않으면서도 이전 전쟁의 폭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인간은 한두 사람의 버튼 조작만으로도 멸망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칼과 창’은 ‘죽음의 길’입니다. 그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것들을 쳐서 ‘보습’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보습은 옛날에 소나 사람이 끌며 굳은 땅을 갈던 농기구입니다. 굳은 땅을 갈아 씨앗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 씨앗을 품게 하고, 씨앗을 자라게 하는 것이니 ‘보습’은 생명의 길입니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가 서로 ‘칼과 창’으로 상징되는 군비경쟁을 하게 되면, 우리 민족은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들을 보습으로 만드는 일, 그 일을 지혜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군비경쟁이 아닌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혐오를 부추기며 공격적인 북한선교를 주장하는 교회들도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 민족의 평화입니다.

 

4. 우리 마음에 있는 칼과 창을 보습으로

 

‘평화통일주일’을 맞이하면서 ‘평화통일’이라는 주제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이런 지정학적인 위치에서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분단된 세월 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 과연 통일만이 정답일까? 남북간은 고사하고 동서간, 지역 간의 갈등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통일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쩌면 통일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휴전협정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고, 옛날 동독과 서독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한 것처럼 분단의 세월 이상을 살아가야 통일의 꿈도 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지금 애써 만들었던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여행 등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답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칼과 창을 보습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칼과 창이 무엇입니까?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같은 것이겠지요. 저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겠지요. 이런 삶을 바꿔야 합니다. 남을 찌르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칼과 창을 보습으로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이 세상은 단단히 칼과 창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창과 칼로 무장하지 않고, 보습으로도 살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길은 좁은 길이요, 좁은 문입니다. 지혜로운 이들만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세상이 변해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평화통일 주일에 내 마음에 있는 창과 칼을 쳐서 보습으로 만들어가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만드는 사람, 그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면 평화통일은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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