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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삶

  • 관리자
  • 2016-08-07 12: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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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삶
요한복음 6:1-15

 

기적이란, 우리의 이해와 과학적인 설명을 넘어서는 것이며, 확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2009년 5월 타계한 장영희 교수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책 서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이 수필집에는 ‘오늘이라는 가능성’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장영희 교수는 고지서를 정리하다가 꽤 비싼 보험료 청구서를 보면서 제대로 아파 본 적이 없어서 지난 7년간, 혜택을 한 번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건강진단을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방암이 의심된다는 판정을 받고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유방암 2-3기에 해당하는 암이 있었고, 곧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진단을 받은 날, 장영희 교수는 월간지에 ‘열흘간의 고독’이라는 수필을 마감하면서, 거짓으로 ‘결국 암이 아니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행복한 결말로 마감되는 글을 씁니다. 그런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오늘이라는 시간의 가능성, 잘난 척하며 살던 장영희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지만, 병을 통해서 더 겸손해지고, 조금 더 사랑을 배우고, 조금 더 착해진 장영희가 바로 오늘 성공적으로 함암 치료를 끝내고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날 수도 있다.’ ‘오늘이라는 가능성’에는 사람이 계획하고 바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기적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며,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도 기적입니다. 지금 기적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또 다른 기적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펼쳐진 기적에 감사하십시오. 그런 분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기적을 이뤄가실 것이며,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1. 광야의 하나님과 갈릴리의 예수님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 10절에 ‘오천 명’쯤 되더라고 했는데, 당시 사람의 숫자를 셀 때에 성인 남성만 세던 관례를 생각해 보면 여성과 어린아이까지 더하면 최소한 1만 명은 넘는 숫자입니다.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적’(2)을 본 사람들은 자기도 그 기적이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소문을 들은 이들은 그 현장을 보고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날같이 분주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과거에는 아주 조금만 볼거리가 있어도 사람 모으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물로 포도주를 만들거나(요 2장), 왕의 신하의 아들을 말씀으로만 고치거나(요 4장), 38년 된 병자를 고치거나(요 5장) 하는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열망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과 산에 오르신 그날은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머지않은 때라고 요한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에 ‘유월절’을 삽입시킴으로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하나님’과 ‘보리떡과 물고기로 먹이시는 예수님’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하나님이 곧 갈릴리의 예수님이시오, 오병이어의 예수님이 곧 출애굽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만나와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에게 맞서기 위해 쓰인 요한복음은 이렇게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2. 기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큰 무리를 먹이려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백 데나리온’은 있어야 합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일당이었으니 오늘날로 환산해 보면(최저임금(6,030원)*8시간 = 48,240원 *200 =9,648,000원). 아무리 낮게 잡아도 1천만 원가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빌립의 생각대로 이백 데나리온이 모여진들 그만큼의 떡을 구할 수 없습니다. 디베랴 갈릴리 건너편 산등성이가 있는 마을에서 한꺼번에 1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애당초 인간의 계획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의 배를 채우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의 씨앗, 기적의 조짐이 큰 무리 가운데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것 가지고는 서너 명이 입에 풀칠하기도 적은 것입니다.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어느 정도 되어야 뭔가 나눌 수 있을 터인데, 적어도 너무 적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것이 상식이요, 과학이요, 인간의 이해요, 확률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들고 축사하신 후 나눠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기적의 씨앗을 봅니다.

하나는 예수님께 바쳐졌다는 것입니다. 헌신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 손에 들려졌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헌신이라도 예수님 손에 들려지면 큰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헌신이 보잘것없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손에 들리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어떻게 시작됩니까?

헌신으로부터 시작되며,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지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기적의 씨앗이 몇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충분하며, 남는다는 것입니다.

 

3. 나눔의 삶과 소유의 삶

 

류형선 작곡가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모티브로 만든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랫말을 보면 이렇습니다.

 

“맛있는 밥을 서로 먹여주면서/ 더러운 발을 서로 씻어 주면서/ 고등어 두 마리와 찹쌀떡 다섯 개로/ 우리 오천 명도 무지무지 배부를 수 있단다/ 이천 마리 고등어를 오천 개나 되는 떡을 이리저리 뺏어모아 저 혼자서 다 먹고도 모자라는 사람들아”

그렇습니다.

‘오병이어’도 나누며 살아가고자 할 때에 모두가 배부르고 남은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요, 저 혼자서 다 먹고자 한다면, 모두가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을 수 있을 만큼이라도 여전히 배고픈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누며 사십시오.

눈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지혜롭게 귀한 일을 하는 단체를 후원하십시오. 귀한 일을 하는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지혜롭게 하십시오. 나눔의 영성을 가진 이들을 이용하려는 악한 이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간다고 해서, 기독교라는 간판이 붙었다고 해서 다 좋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의 영을 위해서 늘 기도하시어 깨어있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오랫동안 기독교 영성가들이 불러온 찬양입니다. “소유의 삶을 살 것인가, 존재의 삶을 살 것인가?” 예수님은 산 위에서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셨습니다.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 6:24 /참고-산상수훈21 /소유냐, 존재냐?).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기적입니다.

기적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며,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도 기적입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펼쳐진 기적에 감사하십시오. 그 기적은 하나님에게로 오는 것임을 고백하며, 그분에게 헌신하십시오. 아무리 작은 헌신이라도 하나님은 그 헌신을 기적의 씨앗으로 삼아 당신의 기적을 이뤄가실 것이며,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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