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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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 관리자
  • 2016-06-12 12: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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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벧전 5:6-11)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한 경험들이 다들 있으실 것입니다. 숨바꼭질하다 황망한 경우는 너무 꼭꼭 숨어버려서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친 다음에야 나타나는 경우와 술래가 찾고 있는데 그냥 슬며시 집으로 가버린 경우, 집에는 안 갔지만 숨은 곳에서 잠이 들어서 온 동네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멈추고 보이지 않는 아이를 찾을 때입니다. 숨바꼭질의 묘미는 머리카락이나 옷자락을 살짝 보여주거나 헛기침을 하거나 동물 울음소리를 내서 술래에게 살짝 힌트를 주는 데 있습니다.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을 때 숨바꼭질을 지속합니다.

 

해질 무렵이 되어 집집이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면 하나 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무리 즐겁게 놀다가도 “개똥아, 밥 먹어!”라는 소리에 멈춥니다. 아이들의 하루가 저무는 시간입니다. 그토록 즐겁기만 한 시간이 하루 이틀 쌓이면서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갑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오늘의 여러분이 되었고 제가 되었습니다.

 

누군들 삶의 여정에서 어찌 기쁜 일이 없었으며, 슬픈 일이 없었겠습니까?

누구나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살아가지만, 기억의 저장창고는 각기 달라서 어떤 이들은 기쁜 일들을 많이 추억하고 어떤 이들은 아픈 일들을 많이 기억합니다. 그 어느 것이든 그것이 인생에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기쁜 일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더욱더 기쁨 충만한 삶으로 살아가는 디딤돌로 삼고, 슬프고 아픈 일을 통해서 삶의 깊이를 깊게 하는 디딤돌로 삼습니다. 어떤 사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사건 이후,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도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삶은 전혀 다르게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원치 않는 고난에 처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 고난은 잘 이기는 자에게는 복이 되지만 고난에 굴복하게 되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 그것은 반드시 이겨야 할 시련이고, 그 결과로 우리는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프고 나면 재롱을 더 많이 부립니다. 부모의 마음으로는 대신 아팠으면 하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그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야 합니다.

 

1. 고난의 때는 잠깐 머물다 지나간다.

 

베드로전서는 A.D.54-68년 경에 쓰인 바울의 서신으로 네로 시대라는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는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쓴 바울 서신입니다. 고난의 때, 하나님이 숨어버린 것 같은 시대, 이때 신앙인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격려의 서신입니다.

 

고난의 때에는 ‘겸손’해야 합니다(6). ‘염려’는 주께 맡겨야 합니다(7).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8). 고난의 때에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면, 전화위복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온전케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고난은 아주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유대 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시>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유명한 일화가 나옵니다.

 

어느 날 왕이 반지 세공사를 불러 "날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어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반지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빈 공간에 새겨넣을 글귀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왕자에게 간곡히 도움을 청합니다. 그때 왕자가 알려준 글귀가 바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였습니다. 이 글귀를 적어넣어 왕에게 바치자 크게 흡족해하고 큰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고난의 때도 승리의 때도 다 지나간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며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고난이냐 승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그 어떤 때에도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지혜로운 시기로 삼아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0절 말씀에 ‘잠깐 고난을 당한’이라는 말씀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2.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주시는 분

 

시험이 오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게 되고, 겸손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좋은 것 속에는 고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신약 본문을 보면 우리를 대적하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넋 놓고 살아가면 우리는 마귀의 올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낚시할 때 ‘미끼’를 사용하는데 아주 작습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지만, 일단 미끼를 물다가 낚싯바늘에 꿰이면 그 작은 바늘에 끌려다니다 목숨을 잃습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단지 미끼만 던집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자원해서 그들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9절 말씀에 '세상에 있는 네 형제도 같은 고난을 겪는 줄 앎이니라."라고 하십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일, 마귀의 미끼를 물리치는 일을 ‘고난’과 연결하고 있으며, 그것은 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나만 마귀의 미끼에 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위로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마귀의 올무에 빠져 헤매는 이들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자각을 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고난, 그것은 나의 문제만 아니라 누구나 당하는 문제입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나의 고난이 가장 커 보인다는 점만 다릅니다. 총회교육원에서 근무할 때 연초가 되면 직원수련회를 갑니다. 어느 해인가는 우연히 목사님들의 지난 삶의 여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다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들이고 교단에서 제법 잘 나간다는 목사들이니 뭐 얼마나 고생들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저는 입도 열지 못했습니다. 그 목사님들과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나는 그 목사님들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던 것이지요. 그때 저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큰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고난을 양분 삼아 넉넉히 이겨나가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그 힘은 근신하고 깨어서(8), 주님께 맡기고(7), 겸손한 삶(6)을 살아가는 데서 나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능히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시는 분이시고, 게다가 우리가 시험당할 때에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 품에 안겨서 살아온 길을 돌아봅니다.

자기의 삶이 기쁠 때에는 예수님과 동행한 증거가 발자국으로 선명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삶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홀로 걸었던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그때, 내 삶이 가장 힘들 때 주님은 어디에 있었지요?”라고 묻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때는 내가 너를 엎고 걸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근신하고 깨어서, 주님께 맡기고, 겸손한 삶을 살아가심으로 모든 고난을 넉넉히 이겨나가시길 바랍니다.

 

3. 숨바꼭질하시는 하나님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면 부모들은 아이들이 찾을 수 있도록 숨습니다.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부모를 찾으면 여러 가지 신호를 주고, 옷자락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숨바꼭질을 통해서 신나게 놀이를 합니다. 숨바꼭질의 목적은 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찾는 데 있습니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자면서 정말 꼭꼭 숨어버리는 부모가 있다면 지혜롭지 못한 부모겠지요.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숨으신 것과 같은 상황, 하나님 부재와 같은 상황이 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이 우리와 숨바꼭질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하던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근신하고 깨어서, 주님께 맡기고, 겸손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옷자락을 보여주시고, 그의 얼굴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숨바꼭질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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