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外柔內剛)의 신앙
이사야 57:14-19 시편 34:1-11, 야고보서 2:1-12, 누가복음 14:1-11
1. 교회력에 따른 성경 말씀
이사야서는 위로의 메시지로 “그를 고치리라”,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는 말씀이 주제어입니다. 통회하는 자와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께서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입술의 열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고치시고 위로하심 덕분에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말씀을 정리해 보면 ‘통회하는 자와 겸손한 자를 고치시고, 위로해 주셔서 노래가 입에 나오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시편의 말씀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입술의 찬양’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항상 주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구할 때 응답하시고, 두려움에서 건지시며, 모든 환난에서 구원해 주시며, 피난처가 되어주셨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은 자신보다 못나다고 여겨지는 이웃을 차별하지 말고 겸손하게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안식일 법의 본질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며, 그 구체적인 행동은 자기를 낮추고 이웃을 높이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은, 겸손한 자(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섬기는 자), 가난한 자(곤고한 자)로 정리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고, 구원해 주셔서 그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절로 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결론은 말한다면, 하나님은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통회하는 자를 위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고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삶을 살아가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통회함으로 입술에서 찬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는 하나님
성서에서 겸손과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교만’인데, 교만이라는 단어는 개역성경으로는 132회 나와 있으며, 교만은 결국 죄와 연결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실 뿐 아니라 대적하시고, 교만한 자는 반드시 꺾으신다고 하십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신명기 8장 4절에는 ‘마음이 교만해 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사무엘상 2장 3절에는 ‘교만하고 오만한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만은 오만한 말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시편 18편 27절에는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하십니다. 잠언 8장 13절에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하십니다. 그 외에도 교만에 대한 경고는 수없이 많습니다.
성경은 죄의 근원을 ‘교만’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만이란, 단순히 잘난 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리에 자기를 놓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좋아하실 수 없습니다.
교만이라는 말은 자부심이라는 말과 다릅니다.
겸손이라는 말이 비굴하다는 말과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겸손하되 자부심을 잃지 않는 강단있는 신앙, 저는 이것을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신앙’이라고 정리해 봅니다. 외유내강의 신앙이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삶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도 그러합니다. 교만하지 않은 외유내강의 신앙을 살아가시기를 빕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입술의 열매’를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외유내강과는 다른 내유외강(內柔外剛)은 공격당하기가 쉽습니다. 겉으로는 강한 것 같아도 속은 여리기에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쉽사리 남에게 털어놓지도 못합니다. 끊임없이 강하게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약육강식이라는 거짓논리를 주입하는 세상, 각자도생의 경쟁사회에서는 상대방에게 약하게 보이는 순간 끝난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강한척해야 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내면을 가꾸는 일보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결국 허위의 포장문화가 판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삶에 충실한 것 자체가 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이것이 이 사회의 불행입니다. 겉으로 강한 척하며 살아가는 연약한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얕잡아 본다고 생각하면 참지 못합니다. 자기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면 이유 없이 폭력을 가합니다. 객관성을 상실한 쓸모없는 자기 논리를 깨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타인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강요합니다. 얼마 전 강남역 남녀공용화장실 살인사건과 이후 추모행사에 등장했던 분홍 코끼리 같은 이들, 사실이 아닌 풍문을 사실로 규정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 모두가 다 교만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싫어하십니다. 그들을 반드시 꺾으십니다. 그들을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이를 좋아하시고, 그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반기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웃 앞에서 겸손한 분들이시길 바랍니다.
3. 외유내강의 신앙 = 겸손한 신앙생활
저는 이런 시대에 ‘외유내강의 신앙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겸손한 신앙인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겸손’이라는 단어는 40회가 나오는데 그중에는 마태복음 11장 28-29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말씀이 있습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마태복음에서의 ‘멍에’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과 연결된 교회력에 따르면 멍에가 상징하는 바는 이사야서에서는 통회하는 자, 시편의 말씀에서는 ‘주를 경외하는 자’, 야고보서에서는 ‘차별하지 않는 자’, 누가복음에서는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정리해 보면 겸손한 자는, 삶의 중심에 여호와 하나님이 있으며, 삶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므로 겸손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 구체적인 증거는 가난한 사람 혹은 자기보다 못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조차도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낮추며, 그렇게 살아감으로 주님의 멍에를 나눠 메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감에도 여전히 ‘나는 죄인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통회하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이 진짜 신앙인입니다. 이런 신앙인이 되시길 권고합니다.
외유내강,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는 데 속은 강한 것이지요. 종교적인 용어로 바꿔보자면 어떤 말들이 나올 수 있을까요? 다양할 겁니다. 오늘날에는 겉으로는 그럴싸한데 속은 썩어있는 신앙인과 교회가 많습니다. 화려한 겉모습에 현혹되어 소경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형국입니다. 체면치레 신앙도 그렇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거룩함, 이런 것들도 교만과 다르지 않습니다. 진정한 거룩함, 진정한 신앙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공격에 무너지듯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공격하던 이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기고만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수용한 그 방식, 패배한 것처럼 보였던 약함이 결국에는 승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강해 보였던 이들은 사실 교만했을 뿐,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 아집에 빠져 살았던 미련한 이들이었습니다. 연약해 보였던 예수님은 사실, 진정한 힘과 권위를 가지신 분으로서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속은 강한데 겉으로 부드럽게 보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겉만 번지르르한 형식적인 신앙인, 성령을 훼방하는 교만한 신앙인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은 ‘외유내강의 신앙’을 품고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