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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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 관리자
  • 2016-05-15 1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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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성령강림주일
신명기 33:13-16, 마태복음 18:1-4

 

여러분, 아침이슬을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아침이슬을 언제 마지막으로 보셨는지요? 한 달 이내에 아침이슬을 유심히 보신 적이 있으시다면, 여러분은 “공중의 새를 보아라, 들에 피는 꽃을 보아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신 분들이십니다. 우리의 삶이 도시화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이 주는 신비스러운 비밀들을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시골에 살아도 추구하는 바가 도시인의 삶과 다를 바 없으니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이 주변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삭막해진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성경 신명기 33장에는 모세가 임종을 앞두고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축복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특별히 요셉 지파에 대하여 축복하는 내용 중에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13)’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늘의 보물은 인간욕망의 산물이 금과 은이 아니라 아침에 잠시 맺혔다가 사라지지만, 영원한 생명창조의 순환고리를 살아가는 이슬과도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복음서 마태복음 18장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누구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두 본문의 공통점은 ‘작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자 슈마허가 쓴 책 중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경제학 관련 도서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경제활동을 할 때 인간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그는 시장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모든 것에 값을 매기기 시작했는데 인간생명의 신성함과 고유함까지도 값을 매겨 고차원적인 것을 저차원적인 것으로 취급해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대량생산을 위해서 자연을 함부로 대하면 결국 심각한 자연재해로부터 인간을 지킬 수 없으므로 자연이 허용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안으로 ‘작은 것’을 예로 듭니다. 그 모든 내용을 담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 제목을 달았고, 책의 내용보다도 책 제목이 지구촌 곳곳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작은 것은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선언은 패러디되어 다양한 사회적인 이슈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인종차별에 맞선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구호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슈마허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원조는 성경이며, 특히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선언입니다. 게다가 그 작은 것이 ‘하늘의 보물’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위해서는 큰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불꽃이 필요합니다. 작은 불꽃들이 되셔서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성령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라면서, 오늘 이 시간에는 작은 이슬방울을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나누겠습니다.

 

1. 이슬은 작습니다.

 

이슬이 맺히려면 다양한 조건들이 맞아줘야 합니다. 일단은 공기 중의 습도가 적당해야 하고, 밤과 낮의 기온 차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람이 불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공기 중의 작은 수증기가 작은 풀잎에 하나둘 맺히면서 우리 눈에 보일 만큼의 이슬방울이 됩니다. 그런데 이슬방울은 작을 수밖에 없는데, 무작정 덩치를 키웠다가는 무게 때문에 풀잎에서 떨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풀잎에 맺혀 있는 이슬은 저마다 작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이슬방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하늘도 들어있고, 나무도 들어있고, 꽃도 들어있습니다. 거꾸로 상이 맺히는 것입니다. 거꾸로 상이 맺히는 데, 이슬방울마다 각기 그 상을 맺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은 이슬방울이 온 우주를 담는 신비를 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슬도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조금씩 수증기가 모여 맺힌 그냥 이슬, 식물들이 제 몸에 남은 물기를 배출하는 일액 현상이라는 과정에서 생긴 이슬, 비가 내린 뒤에 맺힌 비이슬, 성에 같은 것이 아침 햇살에 녹아서 맺히는 얼음이슬, 사람들이 좋아하는 참이슬…. 공통점은 ‘작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이슬방울 속에 온 우주가 담기는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2. 이슬은 맑고 깨끗합니다.

 

이슬 사진을 담으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이슬은 맺혔다가도 아침 햇살이 뜨면 곧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조금만 흔들려도 떨어져 버리니 조심해야 합니다. 해가 뜨기 전이니 빛이 많지 않아 카메라가 셔터속도가 늦어집니다. 이슬 사진을 좋아하다 보니 편법을 써봅니다. 스프레이로 이슬을 속성으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편법으로 만들어진 이슬은 투명하지 않아서 아침이슬처럼 잔상이 맺히지 않습니다. 작은 이슬방울 안에 하늘이며 나무며 꽃이 선명하게 맺히려면 천천히 오랜 시간 거쳐서 만들어진 맑고 깨끗한 이슬이라야 합니다.

 

맑고 깨끗하다는 것,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 5ㅣ8)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사람만이 하늘의 보물이 이슬이 되어 그 안에 하나님 나라를 담을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담았으므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 깨끗하게 살아가셔서 하나님을 품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슬은 모나지 않습니다.

 

이슬은 크기는 다를지언정 모양은 다 동글동글 같습니다. 모나지 않고 각진 곳이 없습니다. 각진 곳이 없으니 남을 찌를 일도 없습니다. 각을 세우며 살아가는 삶도 의미는 있겠지만, 그렇게 살려면 많이 피곤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7:1)”고 하셨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14장 1절의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과 같이 연결지어 생각해 보면, 강자가 약자에 대해 비판하지 말하는 말씀이지, 약자가 강자를 비판하지 말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건강한 비판도 불경스럽게 생각합니다. 거룩한 분노가 있듯이, 건전한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을 할 때에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발전을 위한 비판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나지 않은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조금 더딘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 모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사람관계에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같은 극단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피하십시오. <침묵>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이라는 소설의 한 대목입니다.

 

“선 속에도 악이 깃들고, 악 속에도 선한 것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신은 나의 죄마저도 구원의 도구로 활용하십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속성은 부드러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드러움이란 모나지 않은 것입니다. 모나지 않게 부드럽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4. 이슬의 삶은 짧습니다.

 

이슬은 해진 후부터 맺히기 시작합니다. 어릴 적 시골 길을 걷다 보면 밤 9시가 되기도 전에 이슬이 맺혀서 신발이 다 젖곤 했습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맺힌 이슬이 아침 햇살이 비치면 금방 사라집니다. 바람이 불면 사라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슬의 삶은 우리네 인생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짧은 순간을 살아간다고 해서 이슬 맺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길지 않지만 매 순간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이슬은 어제의 이슬이 아니라 오늘의 이슬입니다. 매일매일 새롭습니다. 우리의 오늘도 어제의 오늘이 아닙니다. 어제의 삶에 붙들려 살아가지 마시고, 내일의 삶에 오늘을 저당 잡히지 마시고,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짧은 삶은 보람 있고 의미 있게 사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작고 짧은 삶을 살아가는 이슬이 어떤 여행을 합니까?

일부는 햇살에 증발되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비가 됩니다. 일부는 땅에 떨어져 흙에 스미면서 실개천을 만들고 강을 만들고 마침내 바다가 됩니다. 물이 되어 흘러가는 곳곳마다 생명을 키워냅니다. 신명기 33장에 ‘땅 아래 저장된 물’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물의 시작은 바로 이슬입니다. 작은 것이 마침내 바다가 되는 비결과 어린아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자가 되는 비결은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짧아서 의미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짧으므로 오히려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살아가기에도 짧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헛된 일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이슬처럼 맑고 깨끗하고 모나지 않게 살아가라. 그렇게 살아가면 비록 작고 짧은 인생이지만 가는 곳마다 생명을 꽃 피우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진정 큰 삶이다.”

 

5. 이슬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되 자신을 잃지도 않습니다.

 

이슬의 색깔은 무엇일까요?

이슬은 맑고 투명해서 주변에 어떤 사물이 있는지에 따라 그 색깔이 달라집니다. 풀잎에 있는 이슬은 초록빛이고, 빨간 꽃에 있으면 붉은빛이고, 노란 낙엽에 있으면 노란빛을 띱니다. 그렇게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주변의 빛을 담아 자신을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주변의 것을 품어 자신의 색으로 삼고 살아가지만, 자기를 잃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위의 것을 품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은 자신의 본질을 잘 지켜간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신앙인이라며 자기를 내세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이들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신앙인으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으로부터 초월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은 끊임없이 작은 것을 향해야 합니다. 그래야 큰 것만 추구하는 맘몬의 세상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앙의 본질을 지키는 일입니다. 신앙의 본질을 지킨 사람들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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