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있는 첫 계명( 어버이주일)
에베소서 6:1-4
2015년 11월 28일 자, 2년 전 딸을 먼저 보낸 어떤 엄마의 편지 일부입니다.
사랑하는 딸에게.
엄마가 오랜만에 왔지?
오늘은 동생이랑 청소 왔어.
너무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 늘 거울 보던 모습도 생각나고,
냉장고 문 열고 과일 찾던 모습, 많이 보고 싶다.
늘 엄마가 기도하고 있어.
그곳에서는 잘 지내. 엄마랑 만날 때까지…. 사랑한다.
먼저 보낸 딸을 보고 싶어하는 엄마의 심정, 그런데 그 엄마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고 보고 싶어하는 모습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모습입니다. 그냥 만져보고 싶은 것이고, 냉장고 문 열고 과일 찾던 모습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어 마음 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엄마에게는 딸 아이가 1등 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만 있었으면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면서 사십시오. 마치 사흘밖에는 남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아마도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느라 닦달하지도 않을 것이고, 공부를 못한다고 화를 내지도 않을 것이고, 부모님이나 친구들을 대하는 것도 사람관계도 달라질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첫날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겠다. 둘째 날은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을 보리라. 셋째 날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헬렌 켈러는 이 소원을 현실로 살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평생 이루지 못한 소원들을 일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요,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의 말씀은 출애굽기 20장 12절과 신명기 5장 16절에 나오는 말씀을 사도 바울이 인용한 것입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것’, 이것은 복 받은 삶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삶입니다. 성경은 그 비결을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고 싶다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Respct your father and mother(GNT-Good News Translation).”
존경, ‘respect’는 라틴어 ‘respicio’에서 온 말입니다. 뜻은 ‘본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존경이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존경이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다.”라고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그대로를 인정받는 사람은 큰 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가 내게 무엇을 해 주었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용기를 주고, 자부심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를 위한 일일 뿐 아니라, 결국에는 자녀를 위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에도 부모를 공경하면 부모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하지 않고, 네가, 즉,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에는 공경이라는 말이 존경이라는 respect’라고만 해석한 것이 아니라 복종을 의미하는 ‘obey’라고도 번역을 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2. 십계명에서 제5계명의 위치
십계명은 두 개의 돌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돌판은 신과 인간에 대한 네 계명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돌판은 인간과 인간에 대한 여섯 가지 계명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은 두 번째 석판의 맨 처음에 놓여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관계에 대한 여섯 가지 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크뤼제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 공경의 계명이 가장 앞에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로써 두 개의 긍정적인 계명(4계명과 5계명)이 함께 중심부에 나란이 놓이게 된 것이다. 다른 계명은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지만, 이 두 계명은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하라고 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생활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노예로 살아갈 때에는 부모를 공경하고 싶어도 공경할 수 없었으며, 노인들이나 병자, 약자, 나그네는 오로지 누군가의 도움에 의존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노예생활을 하면서 이런 도움은 자주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 공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의해 해방된 이스라엘,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를 부여받은 이스라엘은 노인들이나, 병자, 약자, 나그네를 도와야 하며, 부모를 공경해야만 다시는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십계명에는 그래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죽이라’는 강력한 주문이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부모 공경은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관련이 있다고 밝힙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모 공경을 포함한 모든 공경 혹은 복종은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복종을 목표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공경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의 위치는, 둘째 돌판에 새겨진 모든 계명의 전제가 되는 것이고, 그 외의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다른 모든 계명은 제5계명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삶은 부모 공경이 먼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기에 제5계명이 두 번째 돌판에 새겨진 계명 중에 으뜸이 되는 것입니다.
3. 기독교에서의 ‘복종’의 본질
아우쿠스티누스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죄를 이끌고 간 원인을 ‘자만superbia’으로 보았습니다. 자만이란, 하나님과 같이 자신을 높이고 싶은 마음이요, 인간이 신과 같이 되려고 자기를 높이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본성과 은총>이라는 책에서 “모든 죄의 시작은 자만이다. 그리고 자만의 시작은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이 죄의 뿌리이자 시작이다.”고 했습니다.
결국, 존재(하나님)을 망각하고, 존재를 상실하여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서 자기중심적인 삶(존재물중심주의)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만은 모든 탐욕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만을 없애고 겸손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메시지를 통틀어 말한다면,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자만을 버리고 말씀에 복종하지 않은 한, 탐욕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겸손과 하나님께 복종하는 상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중심주의에서 떠나 하나님 중심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공경에서 나오는 복종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에서의 복종은 구원의 길과 통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부모 공경은 자만을 극복하고 복종을 배우는 훈련이자, 신에게로 돌아가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이 복종을 통해서 유익을 얻는 것은 공경 받는 자가 아니라 공경하는 자요, 복종하는 자라는 점입니다. 기독교에서의 복종은 본질적으로 억압을 위한 복종이 아니라 자유를 위한 복종입니다. 이런 복종은 절대적인 자유자이신 하나님에게만 복종함으로써 그 외의 다른 존재물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에서도 “자녀들아 주 안에서(in the Lord...)”라는 말에 복종과 한계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공경이나 복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봐야 ‘세상의 권세 혹은 권위’에 복종하라는 바울 서신의 말씀을 제대로 읽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이해 없이 문자적으로 무조건 권위에 복종하는 것으로만 읽는다면 기독교는 해방의 종교가 아니라 노예의 종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자녀를 또한 공경하십시오. 이것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는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부모 공경도 자녀 사랑도 살아있을 때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너무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 늘 거울 보던 모습도 생각나고,
냉장고 문 열고 과일 찾던 모습, 많이 보고 싶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께 복종함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비밀을 깨닫고,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함으로 겸손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