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속에서의 일치
에베소서 4:1-16
얼마 전 타계하신 신영복 선생이 쓴 <더불어 숲>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더불어 숲>은 숲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유적지와 역사현장을 짚어낸 기행문입니다. 23개국을 여행하며 그림과 글로 그만의 시선으로 삶에 대한 진지한 관조와 인간에 대한 따스한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뿐만 아니라 필자의 해박한 지식이 어우러진 이 책은 우리의 선 자리가 어떤 삶의 자리이며, 우리가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는 책입니다. 저마다 다른 역사적인 현장 속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지만, 근원적으로 인간의 삶은 더불어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숲에는 잘난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못난 나무도 있습니다. 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라 풀도 있고, 재목으로는 쓸 수 없는 가시덩굴도 있습니다. 그러나 숲에서는 필요 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어우러져 하나의 숲입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숲이듯이 우리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다는 것이지요.
1. 여러분은 한남교회라는 숲의 일부입니다.
여러분, 숲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한남교회로 불러주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한 사람 한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 땅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것도 내가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남교회는 여러분의 재능과 봉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봉사를 많이 하고, 대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해도 예배가 없으면 교회의 존재가치는 무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여러분의 재능을 기부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에 서울북노회 110회 정기회가 있었는데, 찬양을 할 때 오카리나 연주를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하나가 더해지니 찬양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릅니다. 잠시 상상을 했습니다. 우리 한남교회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에 이런저런 악기들이 더해지고, 찬양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이었습니다. 이 상상이 현실이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남교회라는 숲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다양한 재능들이 어우러져 한남교회가 하나님께 더 아름다운 예배를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2. 우리는 더불어 사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만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이 나보다 잘났다면? 혹은 내가 제일 잘 났다면? 둘 다,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나보다 못난 사람이 없다면 주눅이 들어서 살지 못할 것이고, 내가 제일 잘났다면 피곤해서 어찌 살겠습니까?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저 마다’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으며, 잘난 구석도 있고 못난 구석도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동시에 도움을 주는 존재, 그래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말로 ‘저 잘난 맛이 산다.’고 하지만 스스로 완벽해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장점을 인정하듯 이웃의 장점도 인정하고, 나의 단점을 인식하듯 이웃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불어 사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인식은 신앙의 깊은 차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불어 삶을 몸소 살아가심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너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선을 긋고, 구별하여 자신들은 의인이요, 자신들과 다른 이들은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종교지도자들을 위선자라고 꾸짖으시며, 오히려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는 평판을 얻으면서까지 “너희가 이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정죄한 이들과 더불어 살아야만 한다.”고 온몸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가 세리와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노라고 고백하는 이들은 당연히 그들을 껴안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껴안고 함께 살아갈 생각도 없으면서, 그들을 정죄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나보다 못난 것 같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실패와 좌절이 있었기에 그것을 발판으로 지금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또한 동시에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3. 사랑가운데서 서로를 용납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쓴 편지입니다.
에베소서의 중심주제는 ‘신비’라고 불리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창세전에 나를 향하신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에게 계시되었고 우리에게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동참하면서 새롭게 창조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 에베소교회 안에는 불화가 있었고, 이단이 에베소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더불어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교회성장에 필요한 이들을 그 안에 세워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나오는 직분은 서열이 아니라 그 모든 직책이 교회성장을 위해 필요한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직책은 전체적으로 세 가지 목적을 지니는데 신자들을 준비시키는 것, 저마다 자기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것, 교회가 성장하는데 일조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용납이란, ‘받아들임’, ‘포용’, ‘관용’의 다른 말입니다.
프랑스가 지금도 자랑하는 전통 중의 하나가 ‘똘레랑스’입니다. ‘똘레랑’스는 ‘관용’을 의미하는 말로 볼테르가 한 말인데 그는 “자신의 의견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자기 형제를 박해하는 이들은 괴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가장 위험한 맹신은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이웃을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 일을 할 때에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내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여러분은 사도 바울의 권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과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면 결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으로 용납하는 가운데 하나 됨의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4. 함께 희망을 짓는 한남교회
2016년 교회표어는 ‘함께 희망을 짓는 교회’입니다.
함께 희망을 지으려면, 각각의 기관이 연결되고, 알맞게 기능하여야 합니다. 뒷짐 지고 있지 마시고, 조언하시고, 적극적으로 봉사하시고, 헌신하십시오. 여러분이 꿈꾸는 교회에 대한 비전을 나누십시오.
식당입구 게시판에 보시면 ‘중보기도함’이라는 빨간 우체통이 걸려있을 것입니다. 빨간우체통 열쇠는 저만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기도가 필요하신 분들은 기도제목을 적어 넣어주십시오. 비밀이 절대 보장됩니다. 그리고 중보기도뿐 아니라, 교회를 위한 제언도 적어주십시오. 혹은 신앙적인 궁금증도 좋고, 제 설교에 대한 비판도 좋고, 제 목회방향에 대한 조언도 좋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14절에 ‘어린 아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마도 이 말씀 때문에 교회력에서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오늘 에베소서 4:1-16절을 교회력 설교본문으로 주었을 것입니다. 바울서신에서 ‘어린 아이’는 영적, 지적 미성숙의 상징으로 나옵니다(고전3:1, 13:11, 갈 4:1,3).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씀과 반대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갓난아이들을 보십시오. 어린 아이들은 오로지 자기만 압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울고 보채도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예쁩니까? 그 아이들 때문에 웃음꽃이 피어나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일, 이 아이가 일 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계속 갓난아이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므로 자라나야 합니다. 어디까지 자라납니까?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그렇게 자라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뤄야만 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부르셨다고 하셨습니다. 은혜의 양에 따라 저마다 은총을 부어주신 이유는, 각기 다른 직분을 주시고, 각기 다른 달란트를 주신 이유는 ‘더불어 숲’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한남교회가 여러분의 가정이, 더 나아가 이 나라와 민족과 온 세상이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루어 더불어 아름다운 숲이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