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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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양식은(씨뿌림주일)

  • 관리자
  • 2016-04-10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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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양식은? 부활절 셋째주일/씨뿌림주일
요한복음 4:31-38

 

오늘은 교회력에 따라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교회력에는 네 가지 본문이 주어지는데 구약, 시편, 바울서신, 복음서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네 본문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오늘 우리가 함께 성시교독을 한 시편 4편의 말씀은 다윗의 시로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나를 안전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의 시입니다. 구약은 열왕기상 3장 5-14절의 말씀은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말씀이며, 바울서신은 골로새서 3장 1-11절의 말씀으로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본문으로 삼은 요한복음 4장 31-38절의 말씀은 사마리아 수가성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신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새 사람’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와 함께 부활한 사람들이므로 새 사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고, 열왕기상은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새 사람이 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시편의 말씀은 새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말씀이고, 요한복음의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 새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구체적으로 새 사람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씨뿌림주일 - 나는 어떤 씨를 뿌리고 있는가?

 

오늘은 부활절 셋째주일이며 교단에서 제정한 씨뿌림주일입니다. 씨앗이 흙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자기 안에 들어있는 생명이 움틉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교단에서는 교회력의 전체적인 내용과 계절에 맞게 ‘씨뿌림 주일’을 제정하면서, 지금 이 땅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인 농민을 기억하고, 농촌의 쇠락과 함께 힘겨운 목회현장이 된 농어촌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자는 의미들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부활 또한 새 생명의 상징을 가지고 있으니, 교회력의 본문들 역시도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느 농촌교회의 주보 표지에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는 내용이 실렸는데 목사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예화가 아니고 실화입니다.

 

1. 보일러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2. 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전화합니다.
3. 냉장고, 전기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4. 휴대폰이나 집전화가 안 되면 전화합니다.
5.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쓸 일이 있으면 전화합니다.
6. 농번기에 일손을 못 구할 때 전화합니다.
7.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 도움을 청합니다.
8. 몸이 아프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바로 전화합니다.
9.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합니다.
10.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

 

저는 제주도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농어촌교회인 종달교회에서 목회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농어촌교회에서 목회를 하려면 만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가 되고자하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면, 농어촌교회에서 목회를 하려면 담임목사가 아니라 ‘사찰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못하는 게 없어야 합니다.

 

저는 심방할 때, 성경책 대신 목장갑에 골갱이(호미)를 들고 양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교인들이 일하는 밭으로 다녔습니다. 같이 감자도 캐고, 귤도 거두고, 당근도 거두고, 때론 바닷가에서 조개도 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성경이야기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교인들의 깊은 속마음을 알게 되고, 그의 흙 뭍은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목사의 풀 때 뭍은 손은 참으로 거룩한 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신기합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 근교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당시 베이비붐 세대가 그렇듯이 보릿고개를 넘으며 살았기에 산야로 돌아다니며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분할 줄 알았으며,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얻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이미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낫을 들고 토끼풀을 하러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농약을 뿌리다 농약중독으로 큰일을 당할 뻔도 했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농어촌에서 목회를 하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교인들은 목사가 샌님인줄 알았는데 텃밭도 제법 잘 가꾸고, 교인들 밭에 심방을 오면 철퍼덕 앉아서 자기들만큼 일을 잘하니까 좋아합니다. 그렇게 교인들과의 관계가 맺어지니까, 이젠 목사가 ‘아!’하면 교인들이 ‘어!’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씨를 뿌려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또한 저 역시도 일반적인 목사의 권위를 벗어버리는 씨앗을 뿌림으로 가능했던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씨앗을 뿌리고 나니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2. 나는 쓸모 있는 연장인가?

 

한번은 교회 마당 잔디밭에 잡초를 뽑아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주일 오후찬양예배를 마치고 잡초를 뽑기로 했으니 저마다 골갱이를 하나씩 가져오셨습니다. 그런데 골갱이에 표시도 되어있지 않은데 권사님들은 자기 것을 잘 압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했더니만, “연장은 손에 맞아야 한다.”라고 합니다. 연장이 손에 맞지 않으면 일에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눈감고 만져도 본인의 연장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주 설교 할 때 설교제목은 “나는 어떤 연장인가?”라는 제목이었습니다. 하나님 손에 잘 맞는 연장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었지요. 나이 드신 노 권사님들이 고개를 끄덕이시는 모습을 보면서 교인들의 일상 속에서 설교의 소재를 찾아내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사안수를 받은 후 저의 첫 목회지는 우리 교단의 총회교육원이었습니다. 6년 동안 그곳에서 교단의 교재개발과 관련된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교단의 공적인 교재를 내는 일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해야하고, 집필자들의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들은 바로잡아 줘야했고, 교재들을 기획해야했기에 자연스럽게 성경주석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이긴 했지만, 그 당시 웬만한 주석은 거의 다 섭렵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설교준비를 할 때 주석에 의존하지 않고도 성경말씀의 깊은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도 하나님께서 저를 쓸모 있는 연장으로 만드시기 위해 씨 뿌리시는 과정이었습니다. 목사안수를 받은 후에 바로 교회라는 현장목회를 했으면 차분히 앉아서 주석을 연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재를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독서와 글쓰기가 일상이었습니다. 다얀한 독서는 제 삶을 깊게 만들어 주었으며, 글쓰기는 제 삶을 기록하고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때는 이것이 하나님의 씨뿌리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하루하루가 마냥 즐거웠습니다.

 

권사님들과 잔디밭의 잡초를 뽑는데 뽑고 돌아보면 또 잡초가 있습니다. 아무리 알뜰하게 뽑아내도 다 뽑지 못합니다. 게다가 며칠 지나면 또 잡초가 쑥쑥 올라옵니다. 그렇다고 잡초를 뽑아내지 않으면, 잔디밭은 이내 잡초가 무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잡초를 다 뽑아내지 못해도 계속 뽑아주다 보면, 잔디가 빽빽하게 자라면서 더는 잡초가 기승을 부릴 수가 없습니다. 풀 뽑기를 한 후 설교는 ‘죄의 속성’에 대한 아주 어려운 신학이론적인 설교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골 권사님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 알아들으십니다. 죄는 아무리 뿌리째 뽑아버리려고 해도 인간의 한계로 인해 다 뽑아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회개하며, 선한 삶을 살아가려고 힘쓰면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고, 그리하여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 없다’인정하셔서 우리를 의인이라 칭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참 어려운 이야긴데, 나중에 권사님 한 분이 오셔서 “목사님, 저는 목사님 설교말씀을 들은 뒤로 밭에서 검질할 때마다, 하나님, 저의 죄도 이렇게 쑥 뽑아주세요! 기도하면서 합니다. 그러니까 일도 쉽고, 기도도 하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하십니다. 그런 과정들을 겪어가면서 저는 새로운 목사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저는 여전히 거듭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거듭남의 과정은 제가 이 땅의 삶을 마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한때 저는 하나님을 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갈수록, 공부를 더할수록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은 신비의 영역 속에 계심으로 인해 오히려 저의 신앙은 더 확실하고 명료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저는 이것을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확신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인식된다고 여겨졌을 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내 인식의 영역을 벗어나서 신비한 존재, 나의 인식을 넘어선 존재일 때에 더욱더 그분을 선명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입니다. 인간의 인식영역에 들어오는 신, 인간의 인식에 갇혀있는 신은 인간이 만든 우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바람과도 같은 그 분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분의 손에 맞는 쓸모 있는 연장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그런 분들이기 바랍니다.

 

3. 나의 양식은?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에 이르러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 그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시간에,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녀왔습니다. 그러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단지, 예수님이 어떤 여인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만 알고,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몰려오자 사람들이 오기 전에 어서 식사를 하시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라고 권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식사를 하셨나 생각합니다. 아니면, 방금 전에 대화를 나눴던 그 여인이 예수님에게 먹을 것을 드렸나 생각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양식에 대해 설명해 주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유혹자에게 시험 받으실 때에 인용하셨던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이 말씀은 육신을 위해서 먹는 떡(음식)이 없어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주릴 때에는 먼저 만나를 내리시어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육체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신 후에 만나를 통해서 단지 먹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을 때에 지켜야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더 많이 소유하려고 했던 이들의 만나는 썩어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답게 살려면 단지 ‘먹는 것’만 추구하면서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먹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면 결국은 ‘썩어 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붙잡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나를 더 많이 거두어도 썩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안식일 전날에는 안식일에 먹을 만나까지 거두어도 만나가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부패했고, 어떤 경우에는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여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여러분, 양식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먹을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귀한 양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재능과 물질과 힘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복이 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간단합니다.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한 신비가 있습니다.

 

37절 말씀에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절 말씀에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36절에 “뿌리는 이와 거두는 이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씨앗을 뿌리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로인해 기쁨을 누리는 것은 우리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기쁨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여 기뻐하면 곧 하나님께서도 함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어머님이 살아생전에 텃밭에 취와 초롱꽃을 심었습니다.

한번 심어놓으니 해마다 이맘때면 취나물과 흔하지 않은 초롱꽃나물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2년이 되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취와 초롱꽃이 새순을 냈습니다. 나물을 하면서, 저는 오늘 본문말씀을 더 깊이 새길 수 있었습니다. 제가 나물을 해서 식구들과 나눠먹는 모습을 하나님 품에 안기셔서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니께서도 기뻐하시겠지요. 뿌린 분은 어머님이시지만, 뿌리지 않은 제가 거두는 것을 보시면 함께 즐거워하셨겠지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나의 양식으로 삼고, 그의 일을 이루고자 힘쓴다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함께 즐거워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삶, 그 삶이 복된 삶임은 더 제가 여러분에게 간증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제가 한남교회 6대 담임목사로 취임하는 날입니다. 청빙을 받은 이후부터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인지 많이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기회 되는대로 여러분들과 나누겠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은 그 생각들이 집약된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그것을 나의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것은 물론, 저의 뜻이고 도와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한남교회를 위해서 헌신봉사하시며 저를 도우실 것이니 한 분 한 분을 저는 또한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섬길 것입니다.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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