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
시편 119:97~104(렘 31:27~34, 딤후 3:14~4:5, 눅18:1~8)
가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덥지도 않고 너무 춥지도 않아 정신이 맑아지고, 책을 읽고 묵상하고 사색하기에 아주 좋은 계절입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깊게 묵상하시고, 반복하시어 하루하루 꿀보다도 더 단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젖어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찾아 먼 곳이나 특별한 곳으로 떠나는 때도 있지만, 진리는 먼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상에 하나님의 숨결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가까운 곳, 진리가 새겨진 곳은 바로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신의 형상’을 우리 안에 새겨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지, 내 안에 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면 우리의 삶을 빛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세파에 휘둘리며 방황하며 살아갑니다. 세파에 시달려 상처를 입고 어찌할 줄 모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의 유혹과 박해 속에서 당황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세상을 한탄하다가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럴 수 있어?”하며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오늘 교회력과 성서 일과의 말씀은 이런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항로에 등불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 구약/예레미야 31:27~34
예레미야 30~33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과 위로에 대해 예언하는 ‘위로의 책’입니다. 그 중간에 들어있는 31장은 다시 회복된 이후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으로 새롭게 세워질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보라, 그날이 오면”이라는 희망적인 문장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는 33절에 축약되어 있습니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렘 31:33)”
4.- 마음 판에 새겨진 말씀을 독해하는 능력
하나님은 그들에게 출애굽 당시에 맺었던 언약과는 다른 새 언약을 주시며, 새 언약이 곧 닥쳐올 멸망과 포로생활을 하며 혼란상태에 빠질 이스라엘에 새로운 발판이 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다시 언약을 갱신하시는데, 돌판에 그 말씀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메시지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내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일입니다. 내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읽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묵상의 시간과 기도의 시간, 침묵의 시간을 통한 내면의 성찰을 통해 읽어지는 것입니다. 분주한 세상사에 휩쓸려 자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파로부터 마음을 지키고, 여러분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 시가서/ 시편 119편 97~104
성경 중에서 가장 긴 장으로 ‘여호와의 법’이라는 제목의 붙은 시편입니다.
22개의 연이 히브리어 알파벳 22자의 순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읽은 97~104편의 말씀은 13번째 히브리어 알파벳 פ(멤)으로 시작됩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פ(멤)’은, 물이라는 뜻을 품은 단어이고, 물이기에 ‘생명’과도 연결되는 단어입니다. <시편사색>에서는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을 ‘涵咀(함저)’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涵(함)’은 말씀에 젖어드는 것을 의미하고, ‘咀(저)’는 그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함저’는 아주 잘게 씹어 맛을 우려낸다는 뜻이 있으며, ‘깊이 음미하여 체득한다’는 뜻을 가집니다. 저는 씀바귀나 고들빼기 같은 쓴 나물을 좋아합니다. 쓴 나물이 식욕을 돋아주기도 하지만,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납니다. 그런데 쓴 나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밥도 오랫동안 잘게 씹으면 단맛이 납니다.
말씀에 젖어들어 그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시편에서는 이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묵상은 반복적으로 행해졌고, 시인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일상화되었고, 습관화되었습니다. 반복되는 묵상의 습관은 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시인은 원수들보다 그의 모든 스승보다 노인보다 뛰어난 지혜와 명철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묵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들이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은총에 응답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되새김질하다 보면 말씀에서 ‘단맛’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단맛을 본 이들은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너무 달고 오묘하기에 고난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이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의 직무를 다하게 된다는 것이 서신서 말씀의 요지입니다.
■ 서신서 / 디모데후서 3:14~4:5
개역성경은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면 어떤 상황에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할지를 밝혀줍니다. ‘그러나 저들의 일로 당황하지 말고’라는 것입니다. ‘저들의 일’이란 무엇일까요? 다른 병행 본문을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불의한 자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입니다. 구약본문에서는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킬 바벨론이며, 복음서에서는 불의한 재판관이며, 서신서에서는 말씀전파를 방해하는 이들이며, 시편에서는 모든 거짓 행위입니다. 이런 불법한 일들이 만연할지라도 당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이미 자기에게 주어진 직무를 다하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8. 직무를 파악하는 방법
주어진 직무를 다하려면, 직무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배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배웁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여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 배우는 일은 일회적일 수 없습니다. 반복되어야 합니다. 시편에서 살펴본 ‘涵咀(함저)’요, 반복되는 부르짖음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기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 정체성’이 생깁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면, 세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 복음서(누가복음 18:1~8)
복음서의 말씀은 ‘끈질긴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는 자주 반복적으로 불의한 재판장에게 가서 번거롭게 합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줄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집요함 때문에 골머리가 아플 것 같으니 과부의 청을 들어줍니다. 많은 이들이 이 말씀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끈질기게 구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실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첫 번째로, ‘반복’입니다. 한 번 묵상하고, 침묵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내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일을 깨달아 나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인내를 가지고 끈질기게 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과부의 일과 재판관의 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부의 일은 자기의 억울함을 푸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일입니다. 억울한 일은 재판관이 풀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그 기도에 응답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과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을 잘 구분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온 정성을 쏟으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하실 일과 내가 할 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주신 일,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주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우리 안에 새겨진 말씀을 읽어내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게 바뀌면 안 됩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꾸만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받은 바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일인데, 은혜의 주체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의 소망을 이뤄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우리 스스로 소망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노력이 헛되고, 허튼 노력을 하니 삶이 힘듭니다. 은혜를 주시고 우리의 일을 이뤄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받은 바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이요,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은 단 한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끈질긴 과부처럼, 우리의 삶에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반복된 습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이 변화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변화되기만 원한다면 욕심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잘 구분하는 지혜로운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 묵상과 침묵의 시간
세파에 시달려 분주하게 살아가던 걸음을 멈추고, 매일 묵상과 침묵의 시간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묵상하고 침묵하면서 내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읽으십시오. 우리 마음 판에 새겨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독해하는 능력을 키우십시오. 그리고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김질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젖어드십시오. 그리하여 그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단지, 꿀맛 같은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 너무 소중해서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전도자가 되고, 자신의 직무를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후에,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내가 이루려고 아등바등 살아가지 마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한 삶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 험한 각자도생의 사회, 경쟁사회에 맞지 않는 말씀이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요구하는 삶이 아닌 천천히 느릿느릿, 비우는 삶을 지혜로운 자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내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런 진리의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가을에, 겨울이 오기 전에,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항로에 등불과 나침반이 되는 내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에 흠뻑 젖어드시는 경험을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