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신앙 – 한나
사무엘상 1:9-18
네델란드의 화가 헤르브란트 반 덴 에크하우트(Gerbrand Van den Eeckhout, 1621~1674)의 <아들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에게 바치는 한나>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해설하는 해설가들은 이 그림을 ‘카리스마의 기원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설명합니다. 힘들게 얻은 아들 사무엘을 서원한 대로 엘리 제사장에게 바칩니다. 한 개인의 간절한 서원기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새롭게 도약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녀의 아들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과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한나(Hannah)는 ‘신의 은총, 조용’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한나에서 파생된 영어식 이름은 ‘Ann, Anna’입니다. 그런데 ‘카리스마’가 ‘신의 은총, 선물’이라는 뜻이 있으니, 화가의 그림을 해석한 이들이 ‘카리스마의 기원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해석한 이유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 한나의 간절한 기도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다른 아내 브닌나보다 한나를 더 사랑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의 슬픔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게다가 브닌나가 아이도 낳지 못하는 여인이라며 비웃고 학대합니다. 한나는 懇切(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막연하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 젖을 먹이는 자신’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면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懇切(간절)’이라는 한자의 ‘懇(간)’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 혹은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파악한 후, 그것을 향해 조금씩 완수해 감을 표현한 문자입니다. ‘懇(간)’은 세 가지의 단어의 합성어인데, ‘豸(치)-발 없는 벌레 치, 해태 치-’는 고양이나 호랑이 같은 짐승이 먹잇감을 발견하고 그것을 잡기 위해 몸을 잔뜩 움츠리고 등을 굽히고 응시하는 순간을 묘사하는 글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목표한 사냥감을 한순간에 낚아채기 위해 조심조심 다가갑니다. 그의 눈은 오로지 목표물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한자 ‘艮(간)’은 ‘가만히 눈여겨보기 위해 모든 움직임을 정지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래 ‘心(심)’은 심장까지 내어줄 정도로 온 마음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한자 ‘切(절)’은 ‘모든 것을 칼로 끊어버리듯이 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懇切(간절)’이라는 단어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비밀은 간절한 마음으로 집중하고 몰입하는 자에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심장을 내어줄 정도의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그 일을 위해 매일매일 간절히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이렇게 간절한 기도였기에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그는 아들을 주시면 ‘구별된 아이’로 키우겠다고 맹세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구별된 자는 ‘나찌르Nazir(나실인)’라고 불렀습니다. ‘나찌르’는 일상의 습관을 구별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나실인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지 않습니다. 구별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철저하게 구별하여 훈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간절함을 이루기 위해 먼저 자신을 구별하고, 성소에서 기도한 것입니다.
■ 구별된 장소에서
한나는 자신의 간절함을 이루기 위해 구별된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거주시를 떠나 실로라는 성소로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실로의 사제 엘 리가 지켜보았습니다. 한나는 이렇게 구별된 공간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오래 기도하는 중에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는 신비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엘리가 볼 때 그 행동은 ‘술에 취한 행동처럼’ 보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세계, 한나는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보통 사람이 걷지 않는 길을 걸어갑니다. 예수님의 골고다 십자가의 길도 보통의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갈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보통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진입하여,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카리스마’를 느낍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카리스마를 지녀야 합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리더가 된다는 것은 이런 카리스마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카리스마를 ‘신의 선물, 은총’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리더는 자연적으로 태어나는 것이거나 신의 은총을 일방적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포부를 간절하게 원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구별하여, 자신만의 골방에서 끊임없이 훈련하고 묵상하는 자에게 신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위대한 리더가 되고 싶으시다면, 자기만의 골방을 가지십시오. 그 골방에서 묵상하고 기도하고 훈련하는 일을 반복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 골방은 독립된 공간이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상의 삶이 이뤄지는 곳에 구별된 자신만의 장소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한남교회를 그런 공간으로 삼으십시오. 예배 전에 나와 기도하면서 한남교회를 ‘성소’로 삼으십시오. 이런 것이 습관이 되면, 여러분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구별된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을 만들어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 자신이 흠모하는 자신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자신을 남이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입니다. 자신을 흠모하는 사람, 자신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소위 말하는 ‘자뻑’도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자학하는 사람보다 낫습니다.
자신을 자신이 흠모할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시오.
카리스마는 ‘다른 사람들의 충성을 자아내는 매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사람은 ‘흠모할 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여신 중 ‘카리스테’가 있습니다. 카리스테는 ‘카리스’의 복수형인데 인생의 아름다움, 우아함을 나타내는 세 명의 우미(優美)의 여신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 명 한 명은 ‘카리스’인데, 카리스마가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카리스마’에는 ‘매력’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매력이 있는 자신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구별된 장소에서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위해서 훈련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은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흠모하는 자신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만나면, 카리스마는 저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한나가 자신의 간절함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구별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그 정성은 한나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아들 사무엘을 얻었고, 그 사무엘은 후에 사울과 다윗에게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을 붓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한나의 간절함은 이렇게 공동체 전체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의 신앙은 위대한 신앙입니다.
소인배들은 어떻습니까?
설익은 자신을 알지 못하고 다 된 줄 알고 나댑니다. 그러다 밑천이 드러납니다. 고수들에게는 다 보이기 마련이거든요.
■ 신앙의 高手(고수)
‘眼高手卑(안고수비)’라는 사자성어는 ‘눈은 높고 마음은 크나 재주가 따르지 못함,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사자성어에서 ‘高手(고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고수’는 ‘눈으로 보는 만큼 손이 따라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자성어로 바꾸면 ‘言行一致(언행일치)’입니다. 고수란,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요,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고수’에 관해 생각하다 이런 문장들이 떠올랐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언젠가 설교제목을 ‘사는 것 같이, 믿는 것 같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믿는 것 같이 살아야지 사는 것 같이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 설교의 핵심이었습니다. 위대한 신앙은 신앙의 고수들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행일치, 말한 것을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힘쓰고, 힘쓰는 과정에서 카리스마는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입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과정에서 말씀이 참된 뜻을 깨닫게 되고, 말씀 속으로 더욱 깊이 젖어들게 됩니다. 야고보서에서는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복 있는 자의 삶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흠뻑 젖어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을 ‘涵咀(함저)’라고 하는데, ‘涵(함)’은 말씀에 젖어드는 것을 의미하고, ‘咀(저)’는 그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함저’는 아주 잘게 씹어 맛을 우려낸다는 뜻이 있으며, ‘깊이 음미하여 체득한다’는 뜻을 가집니다.
위대한 신앙뿐 아니라 위대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삶의 자세입니다. 한나가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간절함을 이루기 위해 구별된 성소에서 기도했으며, 기도하며 서원한 대로 약속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라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아주 유쾌한 일이지요.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이 카리스마 넘치는 신앙과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