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대림절 1주)
요한복음 6:48~51
대림절입니다.
대림절(Advent)은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며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림절의 어원은 ‘오다(Adventus)’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누가 오십니까? 하나님께서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생명의 떡으로 오십니다. 교회력은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다는 의미를 담아 창조절로 끝나고 대림절로 시작합니다. 성서의 시간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이며, 쉼으로부터 시작되고, 주일이 한 주간의 시작입니다. 태양신을 섬기고 스스로 태양신이라고 자처하던 이집트인들이 사용하던 태양력은 아침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일주일의 시작도 월요일입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집트인들이 섬기던 태양, 신의 현현으로 섬기는 바로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리하여 태양신을 위시하여 잡다한 신을 섬기던 이들과는 다르게 유일신이며, 아침이나 월요일 ‘강제노동으로 시작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저녁과 안식일(주일), 즉 ‘쉼’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력의 시작도 ‘기다림의 절기인 대림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침은 활동을 위한 시간이라면, 저녁은 쉼을 위한 시간이요, 쉼의 시간은 곧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야 푯대를 향하여 정확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중략>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기다리는 사람은 막연하게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미리 가서 기다립니다. 연애를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일찍 그곳에 가서, 누군가 다가오면 님인가 싶어 가슴이 쿵닥거리고, 먼발치에서 보이면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서 맞이하러 갑니다. 이런 마음을 담아 시인은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고 고백합니다.
대림절에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막연히 기다리거나, 마지못해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운 마음으로 버선발로 뛰어나갈 그리움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대림절을 보내시는 여러분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시길 바랍니다.
■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
요한복음에서는 이 분이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그 떡은 생명을 살리는 떡입니다. ‘생명의 떡’은 ‘살리는 떡’입니다. 떡은 먹힘으로 자신의 존재 목적을 달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세상에서 헤매며 사망의 길로 가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십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달성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세상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병든 이들을 치유하고, 귀신들린 자를 온전하게 치유하고, 죄인이라 따돌림당하는 이들을 벗으로 삼으셔서 그들에게 온전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냥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황지우 시인이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고 했던 것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 어두운 곳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지쳐있는 이들을 응원하고, 누군가의 시린 손에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잡아주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실한 기다림이요, 예수님을 마중하는 것입니다.
■ 광야에서 먹은 떡 만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으로 ‘만나’를 주셨습니다. 만나는 축적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먹을 만큼만 거둘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앞둔 날은 안식일 몫까지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만나는 광야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생명의 떡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떡을 먹은 이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만나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그 무엇’이 ‘만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때에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비루하지 않을 만큼, 삶을 영위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충분하게 주십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것이 전부인 줄로 알고 그것만 구하면 만나는 ‘썩어 악취가 나고 벌레가 생기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이들, 그런 경험을 통해서 ‘그날의 만나’로 만족하던 이들조차도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로지 자신을 위해 축적하고 쌓아두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만나는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만나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때론 만나 외에도 메추라기도 필요합니다. 마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썩어 냄새나는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만나는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실 것을 우리 스스로 얻으려고 하고, 움켜지려고 하니, 그 만나를 얻은들 행복하지 않고, 얻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삶이니 결국 죽음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마치,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이들이 다 죽은 것처럼 말입니다.
■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
요한복음 6장 50절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은 누구입니까? 51절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하셨으니 ‘예수님’이십니다. 그가 주는 떡은 먹어도 죽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살아있는 떡을 먹는 자들은 영생합니다. 영원한 생명, 그것은 우리의 육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나 죽으나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은 짧습니다. 영원과 비교하면 찰나요,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 찰나의 순간도 소중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삶은 물론이요, 이후의 삶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 그분을 믿는 여러분은 생명의 떡을 먹는 것입니다.
■ 생명의 떡을 먹으려면
그러면 이 생명의 떡을 어떻게 먹습니까? ‘믿음’으로 먹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의 계명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은 ‘형제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함축되어있습니다. 형제 사랑과 이웃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상을 보는 것(히 11:1)인데 우리 형제와 이웃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형제와 이웃은 자기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욕심으로 가득 채운 사람들에게는 형제와 이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떡을 먹으려면, 마음에 있는 이기적인 욕심에 대한 뺄셈을 잘해야 합니다. 빼기의 영성, 비움의 영성을 실천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의 삶의 가벼워집니다. 가벼워지는 이유는 그 길이 바로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요, 생명의 떡이 차려진 잔칫상으로 초대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23편 5절의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헛된 그림자에 흔들리지 마시고 생명의 떡이 가득한 상,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담은 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여러분 마음에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을 수 있습니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견디기 가장 힘겨운 계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누고자 한다면, 우리가 그들의 필요를 다 채워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또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해 나누는 행위는 곧 하나님께서 차려주시는 상으로 나아가는 행위요, 하나님께서 차려주신 상에 차려진 떡은 곧 생명의 떡입니다.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로 간다.’
대림절기에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콩닥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께로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