眼目을 높이는 신앙
마태복음 13:44~50
예수님의 가르침은 ‘산상수훈’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산 위에서 가르치신 말씀’이라는 의미를 담아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산이 아닌 해변에서 혹은 배 위에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해변에서는 주로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이 말씀을 전하신 후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고향 사람들이 놀라 묻습니다.
“이 사람의 이런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그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마13:54,55).
결국,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도 고향에서는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고향에서 자신을 배척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마 13:57)
■ 안목이 없는 사람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불행하게도 그분이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안목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목이란 남들이 지나친 것을, 남다르게 보는 힘입니다. 안목은 드러나지 않을 것, 은닉된 것을 발견하고 응시하는 내공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소중하고 귀중한 것은 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고향과 집에서는 선지자나 예언자 혹은 메시아가 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 52절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메시아를 보고도 보는 눈이 없으니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의 안목이 이렇게 낮아졌을까요?
‘휘브리스(ὕβρις/Hubris, hybris)’라는 그리스어가 있습니다. 오만 혹은 교만으로 해석되는데 ‘시야가 좁아진다, 장님이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제대로 볼 수 없으며,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다가 자기 앞에 다가오는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는 장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단력은 흐려졌는데, 자기 고집대로 모든 일을 이끌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한 사람들의 비극’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안목’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안목이 낮으니 자신의 일상 혹은 자기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늘 밖에서만 찾습니다. 그러니 찾을 수 없습니다. 눈앞에 있는 보물을 보고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안목이 높아집니다. 안목이 높아야 하나님께서 주신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화로 인해 늘 기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 비유의 말씀들
오늘 우리가 읽은 세 가지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비유’는 모두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를 잘 이해하면,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느 밭에서 보화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팔레스틴 지역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가 차례로 고대 근동지역의 패권을 차지했으며,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팍스로마나Pax Romana’입니다. 그 평화는 무력에 근거한 평화였으므로 언제 또다시 전쟁이 날지 모를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귀한 보물을 집안에 숨겨두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으며 자신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 두곤 했습니다. 이것을 ‘피난처 유물’이라고 하는데 새해문서 상당수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전쟁 주에 갑작스럽게 전사하거나 포로로 끌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숨겨놓은 보물은 발견하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 당시에는 종종 그런 일들이 있었고, 발견하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우연히 밭에서 발견한 보물의 주인은 밭주인이 아니라 발견한 사람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물이 묻혀있다고 밭주인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그 밭을 자신의 소유로 삼은 것은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자기의 모든 재산과 비교해보아도 보물의 가치는 그것을 능가한다는 것을 압니다. 보화를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는 것이지요. 당연히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산 후에 보물을 소유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진주를 감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진주를 보는 안목이 있는 것이지요.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진주를 파는 사람은 그 진주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팔아버립니다. 또,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올린 후,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못된 물고기는 내버립니다. 이것 역시도 물고기를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보화, 진주, 좋은 물고기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음을 압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자신의 모든 소유보다도 훨씬 가치가 높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어부로 상징된 하나님께서는 ‘좋은 물고기’라고 선별하시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 일상에서 발견한 보화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보화를 발견하고, 진주를 발견하고, 그물을 끌어내는 일 모두가 ‘일상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저기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는 사람, 그 사람이 신앙의 안목이 높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오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사람, 그 사람이 신앙적인 안목이 높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나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죽음 저편에서 찾지 마시고, 지금 여기서 찿으시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지금 여기’를 허투루 살면서, 저 하늘나라를 꿈꾸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지금 여기서 오늘을 하나님 나라에 살 듯이 살면, 그 삶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상에서 보물을 발견하십시오. 진주를 발견하십시오. 좋은 물고기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십시오.
■ 저마다 다 보물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한남교회 교인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이 저마다의 보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주셨으며, 우리를 또한 ‘하나님의 자녀요 친구’로 삼아주셨고, 저마다의 ‘은사’를 주셨으며, ‘친구’로 삼아주셨습니다. 누가복은 17장 2절에는“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는 무시무시한 말씀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는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도 귀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8장 3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말씀은 한 사람의 존재가 온 천하보다도 존귀하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이렇게 귀한 존재들입니다.
이렇게 귀한 존재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저마다 우리 안에 보물을 주셨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이것을 ‘은사’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각자가 가진 보화를 자신이 발견할 뿐 아니라 서로 알아보고 인정하고 소중하게 여겨줄 수 있을 때, 한남교회는 화목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옆에, 앞에 앉은 이들 모두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서로 섬길 때, 한남교회는 섬김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 보물을 땅에 묻어두지 마십시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보화라도 땅에 묻혀 있으면, 오염물로 더러워져 있다면,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가진 보화를 발견하고, 그것을 빛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끊임없이 자신이 발견한 보화를 갈고 닦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 원석이 장인의 손을 거쳐 더 아름다운 보석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내 안에 있는 보물, 달란트를 끊임없는 훈련과 수련과정을 거쳐 보화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주신 보화를 발견하시고 그것을 빛내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어떻게 빛나게 할까요?
‘헌신과 봉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빛나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 은사를 단련시킬 수 있도록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수단이 아니고 목적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뭐를 얻겠다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헌신하고 봉사할까 기도하시는 분들을 통해서 교회공동체는 든든히 서갈 수 있습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 간다는 의미는 외형적인 성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구성원 간에 서로의 은사를 인정해주고,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다양한 꽃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원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름다운 꽃밭에는 예쁜 꽃도 있고, 벌레 먹은 꽃도 있고, 심지어는 원하지 않는 잡초도 있습니다만, 통째로 아름답지요, 한남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의 재능을 묻어두지 마시고, 교회를 위해 꺼내십시오. 새해에는 우리 교우들이 가진 재능들이 헌신과 봉사로 이어져, 새로운 기운이 넘쳐나는 한남교회의 원년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