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9일(주현 후 7주/산상변모주일)
등불과 같은 사람
베드로후서 1:16~21

오늘은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우수’입니다. “우수﹡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말도 있으니 봄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의 삶에도 긴 겨울이 가고 봄과 같이 따스한 날이 오길 축복합니다.
지난 주, 봄이 오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경기도 가평의 계곡을 찾았습니다. 계곡에는 아직 얼음과 잔설이 남아있지만,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활기찹니다. 이미 산골짜기에는 눈을 녹이며 봄꽃들이 피었습니다. 철을 따라 변함없이 계절은 오가는데 우리의 신앙은 여전히 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간의 역사는 우격다짐으로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다 어둠의 시간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묵상했습니다.
미세먼지가 자욱한 봄,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자연재해와 관련된 소식과 지구온난화, 전쟁, 마약, 독재자들의 폭력, 경제침체,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 등 우리 삶을 어둡게 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의도적으로라도 명랑하게 살아가야한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명랑한 시 한 편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영래 시인의 <사순절>이라는 시집 두 번째 시에는 ‘그 마구간의 짚 향기’라는 시 중의 일부입니다.
굴레를 씌우지 않은 망아지가 껑쭝껑쭝 뜀을 뛰다가
기쁨에 겨워 방귀를 뀐다.
성급한 봄.
망아지 같은 봄.
봄이 처음인 망아지는 풀이 자라는 것에도 놀라고, 꽃이 지는 것에도, 그 눈부신 햇살이나, 따스한 봄바람에도, 풀의 향기에도 놀라서 뜀을 뛰다가 기쁨에 겨운 방귀를 저도 모르게 뀌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둠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봄이 처음인 망아지처럼 기쁨에 겨워 방귀뀌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철학자 김진영 선생의 애도일기 <아침의 피아노>라는 책이 있습니다.
편집자가 덧붙인 글에는 ‘김진영 선생님은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아침의 피아노>의 글들을 쓰셨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책에는 죽기 전, 12개월 동안의 행적이 짧은 글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종 3일전, 마지막 글입니다.
‘힘이 없다. 많이 힘들다. 그러나 나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동안 잊었던 나의 주제를 기억한다. 그래, 나는 사랑의 주체다.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 것. 그걸 늘 가슴에 꼭 간직할 것.’
이 책의 첫 번째 내용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침의 피아노’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아침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옵니다. 철학자는 너무 고마워 피아노 소리에 응답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내 피아노에게 응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뿐이라고 합니다. 삶을 위협하는 병,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황은 상징적으로 ‘어둠’입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말하는 철학자는 ‘등불을 들고 어둠을 밝히는 멋진 사람’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 성서일과 베드로후서 1장 19절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베드로후서 역시 죽음에 임박한 철학자처럼 죽음이 임박한 베드로의 가르침과 권고를 담은 서신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권면하기 위해서 쓴 편지고, 베드로후서는 그리스도인들 안에 숨어 배교를 조장하는 거짓 교사를 조심하라는 내용입니다. 거짓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사로이 풀어 그들을 사망의 길로 이끕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편지는 세상으로부터 핍박받고 거절당하고, 거짓 교사들이 만연한 소아시아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런 상황은 ‘어두운 죽음의 시대’와도 같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어두운 세상에서 ‘등불과도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붙잡고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는 편지입니다.
베드로는 먼저 자신이 전하는 말씀은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들었던 말씀임을 밝힙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친히 예수님을 보았고, 또 변화산에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예수님께서 변모를 직접 체험한 사도입니다. 율법의 대표성을 가진 모세와 예언자의 대표인 엘리야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직접 본 자신이 전하는 말씀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전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사로이 하나님의 말씀을 푸는 자들에게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서 ‘등불과도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등불을 밝히되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밝히라는 것입니다.
등불과도 같은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미혹하는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지혜를 가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공부해야 합니다. 듣고 배우고 익혀야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자기의 신앙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다양한 기독교관련 방송에서 나오는 설교를 듣고 신뢰합니다만, 사실 거기도 가짜가 엄청나게 많고, 말씀의 본질을 흐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라 해서, 언변이 뛰어나다고 해서, 아니면 오직 성서만 외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누구나 sns을 통해서 쉽게 성경말씀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미혹하는 자들이 엄청나게 열심히 활동하고, 교묘한 사설에 넘어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 시대는 가히 미혹하는 자들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과 연결되면 수 만 마디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말씀이라도 삶으로 살아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너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니 앞뒤 안 맞는 이야기 같지만,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 주일예배 설교만 잘 새겨듣고 묵상하고 행해도 충분합니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평범합니다. 진리가 아닌 곳에 기웃거리니 머리가 복잡해지고 미혹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어두울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등불입니다. 어두운 바다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 새벽 별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등불과 새벽 별은 어두운 시대를 살아갈 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리처드 로어는 ‘같은 방식의 두 차원’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곧 하나님의 본질이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데 그 대상이 없으니 사랑의 대상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같은 방식으로 그들에게 사랑받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되지 않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여러분, 이것이면 되었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되지 않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비록 어두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우리가 등불과 같은 사람이고, 새벽별과 같은 존재라면 어둠이 있어서 더욱 우리가 빛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둡다고 한탄하지만 말고, 오히려 감사하며 등불을 밝히는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이 등불 같은 사람, 새벽 별과 같은 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등불을 밝히는 사람들에게는 ‘기름’이 필요합니다.
몇 해 전에 골동품 점에서 호롱을 하나 샀습니다. 옛날에는 식물용 기름을 사용했지만, 석유가 나온 이후에는 석유로, 요즘에는 파라핀오일을 사용한다고 해서 싼 것을 구입했더니 그을음이 엄청나게 심합니다. 그래서 애써 구한 호롱이 정말 골동품이 되어버렸습니다. 호롱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름도 중요합니다.
말씀은 등불을 밝히는 기름입니다. 그래서 어떤 기름을 채우는가에 따라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도 있고, 그을음이 너무 심해 사용할 수 없기도 합니다. 캠핑장 같은 곳이라면 워낙 넓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실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마도 그을음으로 인해 질식해서 몸이 상할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기름을 채워야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도 건강한 말씀을 채워야 합니다. 등불을 밝히는 건강한 기름을 제공하는 것이 목회자, 설교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종말의 때에 주님은 빛으로 오십니다.
지금 비록 어두운 세상에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등불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비추며 살아가십시다. 이런 등불이 하나 둘 모여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도 변화됩니다. 그러니 어둠을 탓하지 말고, 그것을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고 빛나게 하는 발판으로 삼고, 매일매일, 처음 맞이한 봄에 흥에 겨워 어쩔 줄 모르며 뛰노는 망아지처럼, 죽음을 앞두고도 사랑의 마음을 채우고 살아가는 철학자처럼, 당당하게 살아가십시다. 그것이 등불같이 사는 사람이요, 새벽별처럼 사는 사람입니다. 한 주간 동안도 어두운 세상에서 아름답고 멋진 빛으로 살아가십시오. 아멘.
[거둠 기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우리로 하여금 어두운 세상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세상이 실망스럽더라도 함께 절망하며 젖어들지 말고, 명랑하게 기쁨에 겨워 살아가기 위해 힘쓰게 하옵소서. 하오나 주님, 원하지 않는 아픔과 좌절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잊지 말게 하시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해 일하는 것임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