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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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 후 4주] 예배하는 자들이 받는 복

  • 관리자
  • 2023-01-2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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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9일(주현 후 넷째 주일)
예배하는 자들이 받는 복
마태복음 5:1~12


오늘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에게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주 설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지난주에 많은 분이 고향을 방문하셔서 도시교회인 우리 교회도 썰렁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북적거릴 고향교회들을 생각하면서,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지 같은 은혜로 채워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제주도 동쪽 끝마을 종달교회에서 목회할 때 명절이 주일과 가까우면 외지로 나갔던 분들이 방문하셔서 교회가 북적거렸던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종달리가 제주도의 ‘핫플래이스’가 되었지만, 제가 목회할 때만 해도 제주도의 갈릴리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명절 때, 도시로, 육지로 혹은 해외로 나갔던 분들이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리면, 종달교회가 그곳에서 꿋꿋하게 복음을 전한 복음의 열매를 보는 것 같아서 힘을 얻곤 했습니다. 
 

▪달라진 예배 풍경


그런데 요즘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전라북도 동녘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선배 이세우 목사님의 글을 조금만 가감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세 번의 비대면 예배 끝에 맞이한 설날 주일의 풍경입니다.

‘명절과 주일이 가까이 있으면 덩달아 농촌교회도 바빠진다. 
올해는 주일과 새해 첫날인 1월 1일도 설날도 같은 날. 1월 1일은 그렇다 치고, 설날은 예배 참석인원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이것저것 거기에 맞춰 준비했다. “농촌교회, 고향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반기시는 일이다.”라는 설교내용도 다시 확인하고 나름 긴장하며 교인들을 기다렸는데, 오히려 평소보다 예배 참석인원이 줄었다. 
설날과 주일이 겹쳐있어 도시교회는 몰라도 농촌교회는 북적였어야 맞다. 예상은 빗나갔다. 몇몇 권사님들은 미안해서 나에게 말을 못 하셨는데 역귀성하셨다고 한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안 드리고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잘 다녀오시면 그게 최고지. 그렇게 허허하며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딸내미가 있는 서울로 튀었다.’

 

▪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설 명절을 맞이하여 도시교회뿐 아니라 시골교회까지도 평상시보다 예배참석 인원이 줄었다면, 교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위의 목사님은 목사님이시니 ‘예배를 마치고 딸내미가 있는 서울로 튀었지만’ 혹시 교인들은 예배를 드리지도 않고 다른 곳으로 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친한 목사님 몇 분께 전화를 해보니 시골교회나 도시교회나 황금연휴를 맞이하여 교회가 텅 비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어디론가 튀었다는 이야깁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황금연휴에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 주일예배는 모든 일의 후순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찮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예배를 회복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주일예배가 신앙 혹은 삶의 우선순위에서 점차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 주일 성수는 고리타분한 교리일까?


어떤 분들은 시대가 많이 변했는데 ‘주일성수’라는 고리타분한 교리로 교인들을 얽매면 되겠냐고 합니다.
주일예배에 참여하지 못해도 마음은 거기에 가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만 있고 행동이 없는 신앙은 파탄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일예배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반복적인 행위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상징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주일예배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희미해진 우리 영혼의 거울을 닦는 일과 같습니다. 
 

▪ 거울을 닦듯이


거울은 한 번 닦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주 닦아야 합니다.
깨끗한 거울을 통해서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거울’이 깨끗해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고,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가 보이고, 나를 위해 창세 전부터 세워 놓으신 계획이 보이고, 나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보이고, 우리에게 주실 복을 준비해 두신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견(正見)’이라고 합니다. 정견은 ‘바로 보는 것’입니다. 바로 보아야 깨닫게 되고, 깨달아야 올바로 행동하게 되고, 올바로 행할 때 비로소 성도(그리스도인)요, 성도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출발이 ‘주일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는 신앙생활에서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주일예배를 소홀하게 하는 것은 영혼의 거울을 닦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과 같습니다. 거울에 먼지가 쌓이면,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의 불행이요, 그것이 성경에서 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 복이란?


새해 인사로 가장 많이 한 인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였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복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구에서는 “God bless you!”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당신에게!” 그러니까, 서구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한자 ‘福’은 참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볼‘시(示)’자와 가득할 ‘복(畐)’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복’은 ‘술이 든 단지를 본떠 만든 상형자’입니다. 그래서 갑골문자 복을 보면  술이 가득 담긴 항아리가 있고, 거기에 있는 술을 따라 제단에 붓는 형상입니다. 그러니 ‘신에게 정성껏 제물을 드리는 것 자체’를 복이라고 여겼고, 그런 이들을 보시고 신은 복을 주실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복 자체이며 전제조건인 예배


이것을 기독교식으로 해석하면 이런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자체가 ‘복’이요,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복’받을 전제조건인 예배 뒤로하고 받을 복만 세고 있으니 기독교가 기복 종교만도 못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기복 신앙에서조차도 복은 그냥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 중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복만 구하는 이들이 넘쳐나니 기독교가 저급한 복을 구하는 사이비종교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팔복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으로서 ‘팔복’으로 알려진 말씀입니다.

여덟 가지 복이 무엇입니까?
제1복은 천국이요, 제2복은 위로요, 제3복은 ‘땅을 기업으로 받음’이요, 제4복은 ‘배부를 것’이요, 제5복은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제6복은 ‘하나님을 볼 것’이요, 제7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림을 받을 것’이요, 제8복은 ‘천국’입니다.

얼마나 좋은 복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팔복 받기는 원하면서, 전제조건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이 아닙니까?
이미 주신바 은혜가 충만하고, 주신 바 복이 차고도 넘치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복’만 달라고 떼쓰는 것은 아닙니까? 
 

▪ 正見


이런 유아기적인 신앙에 머물러있지 않으려면 ‘正見’이 필요한 겁니다.
정견을 위해서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깨끗한 거울이 필요한 것이고, 거울을 닦는 일이 바로 주일성수이니 우리가 예배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거울에 나를 비춰보아야 비로소 내가 보입니다.
거울이 깨끗해야 죄인인 나도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나도 보입니다. 그리고 아무 공로 없어도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도 보입니다. 이것을 알면, 복을 달라고 떼쓰는 것을 넘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자체가 ‘복’임을 알게 됩니다. 갑골문자 ‘복’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바대로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복이고, 그 복을 누리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 삶으로 드리는 예배


그런데 여러분, 예배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주일예배만 예배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회당에 나와 예배를 거룩하게 드려도 삶으로 살지 않으면, 즉 삶으로 예배하지 않으면 헛되다고 합니다.
오늘 팔복에 나오는 말씀, 복 받는 전제조건이 되는 말씀들은 모두가 ‘삶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니 예배 자체가 복이듯이, 팔복의 전제조건들은 어떤 고통 혹은 고난 혹은 저주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복입니다. 

그런 복 받은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제1은 ‘심령의 가난한 자’, 제2는 ‘애통하는 자’, 제3은 ‘온유한 자’, 제4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제5는 ‘긍휼히 여기는 자’, 제6은 ‘마음이 청결한 자’, 제7은 ‘화평케 하는 자’, 제8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복에 복을 더하시어 ‘천국과 위로와 땅의 기업과 배부름과 긍휼하심과 하나님을 보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림을 받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겹으로 받는 복입니다. 그러니 사실 팔복이 아니고 열다섯가지 복입니다. 15가지인 이유는 ’천국‘이라는 복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 예배를 회복하라!


그러나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분들에게는 이러한 복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눙력이라(고전 1:18).”입니다. 이미 선물은 누구에게나 주어졌지만, 그 선물을 하찮게 여기고 있으니 거룩한 것을 받았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는(마태7:6) 동물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예배는 이런 것입니다.
예배하는 것 자체가 복이요,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는(신 28:3)” 비결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신 28:2)”을 달았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시며 청종하라고 하십니까? 

“예배공동체를 회복하라!, 예배를 회복하라!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와 삶으로 드리는 예배 모두를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와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모두 소중합니다. 어느 것 하나가 없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새해에 예배하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배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우리를 예배자로 불러주신 하나님, 죄로 인해 멸망의 길을 달려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하오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뒤로하고,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복에만 눈이 어두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주님, 코로나 이후, 예배의 회복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느새 타성에 젖어 예배의 소중함을 상실했습니다. 주님, 회복하게 하셔서 예배드리는 복을 누리게 하시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 안에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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