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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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 후 3주]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

  • 관리자
  • 2023-01-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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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2일(주현 후 셋째 주일/해외선교주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
이사야 9:1~4


오늘은 민속명절 설날이니 먼저 새해 인사 나누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제 정말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해 계획이 작심삼일 되신 분들은 다시 새해를 설계하시고, 신년주일에 말씀드린 바대로, 여러분의 삶에 ‘경청과 두려움’을 잘 섞으셔서 풍성한 복을 지어가시길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 ‘먼저’


성경을 통으로 보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방식은 ‘먼저’입니다.
태초에, 창세전에 ‘먼저’ 창조하시고, 계획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도 ‘먼저’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의 선물을 깨닫고 발견하여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성서에서 죄라는 것은 도덕적이나 윤리적인 것에 있지 않고, 받은 바 이 선물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선물을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과 올바를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못하고 단절된 채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 ‘자유’


두 번째 방식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자유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입니다.
인간에게 선물 혹은 기회를 주시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를 보게 하십니다. 이 자유에는 심지어 ‘하나님을 외면할 자유’까지도 포함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회로 주신 자유를 선용하지만, 어리석은 이들은 기회로 주신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스스로의 삶을 옥죄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거부할 때에도 반드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좋은 선택을 한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풍성해지겠습니까?

부끄러운 은혜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기회의 자유를 잘 선택하셔서 칭찬받는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길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 ‘관철’


세 번째 방식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뜻을 ‘관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대로 기회로 주신 자유를 어리석게 사용한 이스라엘이 그 결과로 흑암에 거하게 되었든, 멸시를 받든, 그늘진 땅에 거주하든, 무거운 멍에를 매고 있든, 채찍질 당하고 매질을 당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든, 결과적으로 유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꺾지 않고 관철시키시는 이유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어제 실패했다고 오늘도 실패할 필요가 없고, 오늘 졌다고 내일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실패조차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근거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마땅히 경외하고 두려워해야합니다. 어리석은 이들은 이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두려워하되 세상에 대해서는 담대하십시오. 
 

■ 주현절 셋째 주일 성서일과의 주제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요, 시가서의 말씀은 ‘환난 날에 그의 초막에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서신서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될 수 없는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 사역의 시작으로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큰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다는 것과 사역을 위해 제자들을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일과의 주제는 ‘흑암, 절망, 실패의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빛처럼 비출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지금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고, 이 문제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이지만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죄의 종이 되어 사망의 길을 걸어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심판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독생자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마침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시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 유익을 위해 주신 선물 =영생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든 아니든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그를 향해 세우신 계획을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관철시키실 것입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선물, 그것이 무엇입니까? 영생입니다.

우리는 칭찬받으면서, 주님을 기쁘게 하면서 그 길을 갈 수도 있고, 온갖 근심과 걱정 때로는 주님의 분노를 유발시키면서 그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헛되게 하지 않으시려고, 지금도 하나님은 끝없이 인내하시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복음서의 성서일과대로 부르실 때에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는 분들 되길 바랍니다.
 

■ 십자가의 도 = 칭의


‘십자가의 도’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면 죄 없다고 인정을 받아 구원을 얻는다(칭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도는 ‘우리가 알기도 전에 미리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 지점이 바로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는다.’라고 믿었던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초대교회를 반대하던 이유였습니다. 누구든지, 바리새인이나 유대인들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죄인들과 이방인들까지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자신들의 신앙은 부정당하고 무너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부활이나 영을 부정하고 사후세계를 부정했던 사두개인들은 저주를 받아 비루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의 친구요, 정치범으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위해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구별된 삶을 살아가던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는 현실에서 실패한 이들, 낙오된 이들도 자신들과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요, 율법에 따라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규정한 이들조차도 하나님의 자비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죄인도, 실패한 사람도, 낙오자도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이는 이는 영생이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 이사야서 9:1~4


평강의 왕이 오시면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어지고,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들에게 빛이 비칠 것이며, 그들 모두가 주 앞에서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시는 한 아기가 오실 것인데, 그분이 무겁게 멘 멍에와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어 버리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앞장인 8장까지는 북왕국이스라엘이나 남왕국 유다에게 가혹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경고가 반복적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9장에서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이 선포됩니다.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왜 심판의 경고가 이어지다말고 갑자기 구원의 선포, 희망의 메시지가 선포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면서 평강의 왕으로 오실 ‘한 아기’를 징표로 주시는 것입니다.
 

■ 한 아이 = 희망의 메시지


이사야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미래의 약속에 관한 결정권자는 하나님이시오,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징표로 아하스에게는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미래형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9장에서는 ‘났고’라는 완료형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그 ‘한 아이’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을 듣는 이들은 ‘한 아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무서운 심판이 끝나고 구원을 얻는 시작이 ‘한 아이’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뿐입니다. ‘한 아기’는 그들에게 미래가 있다는 상징입니다. 출생이란, 시작이요 성장이요 미래가 내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기’란 시작이요, 미래를 여는 상징인 것입니다. 


심판의 예언이 이뤄진 후 흑암에 사는 이들, 그늘진 땅에 사는 이들에게 이 예언의 말씀을 들은 이들은 어떤 기대를 했을까요? 한 여인이 아이를 잉태할 때마다, 어느 집에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그 아기로 인해 심판이 끝나고 구원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세상의 죄와 사망과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들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하나님이 이기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아이’는 희망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아기란 시작이요, 미래를 열어가는 것과 관계가 있으므로, ‘한 아기’에 관한 예언은 희망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이 모든 선하심과 의로우심과 자비로우심을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시고, 관철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31절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데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서 임마누엘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 우리는 인생에 대해서 겁낼 것이 없습니다. 때론 우리가 엇나갈 때도 있습니다. 실패할 때도 있고,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잘못으로 패하고 넘어진 것일지라도 혼은 좀 날지언정 결국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유익한 길로 이끌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에게 펼쳐져있습니다. 이 길이 우리에게 주어진 길입니다. 그 길을 걸어갈 때에 기왕이면, 넘어지면서, 혼나면서 가는 것보다는 칭찬받으면서 가는 것이 더 지혜로운 줄 압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 계묘년 한 해도 담대하게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거둠 기도]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 인생길을 걷다보니 어둠의 길도 걸어가고, 그늘진 곳에 거하기도 하고, 실패하여 낙망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빛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시니 우리가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의 결과는 언제나 선한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믿습니다. 하여, 담대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긴 것처럼 우리도 흑암과도 같고 그늘진 곳과도 같은 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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