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일(성탄후 첫째주일/ 신년주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전도서 3:1~13

새해 첫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시며 한 해를 열어 가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는 계묘년 새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음력 설날이 되어야 12간지에 따른 ‘검은 토끼의 해’이지만, 신정이 보편화되었으니 ‘계묘년’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저에겐 토끼와 관련된 추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옆집 형이 토끼를 키우는데 무척이나 갖고 싶었습니다. 한 달 동안 꼴을 베어 토끼를 먹이면 한 마리 주겠다는 말에 학교를 마치고 나면 열심히 토끼들이 좋아할만한 풀들을 베어 날랐습니다. 마침내 암컷 한 마리를 얻었고, 마당 한켠에 아버님이 만들어주신 토기장에서 정성껏 키웠습니다. 짝짓기 할 무렵이 되어 짝짓기도 했는데, 어린 저는 그것이 번식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마도 요즘처럼 추운 한 겨울이었을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 토끼장에 가보니 토끼가 새끼를 낳았는데 털도 없는 작은 새끼들이 철망 사이로 떨어져서 죄다 얼어 죽었습니다. 급하게 아버지를 불렀더니 오셔서 혀를 차시며 “생명을 제대로 살필 줄도 모르면서 키우는 것만 좋아했느냐!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말이다!”며 꾸중하셨습니다. 눈물 나도록 혼쭐이 난 후, 토끼는 옆집 형한테 돌려주었고, 이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제가 책임져야할 동물을 키우질 않았습니다.
토끼를 키우다 혼 난 일에 대한 교훈은 ‘책임감과 생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에 방점이 찍혔고, 불혹의 나이 이후에는 ‘생명’으로 좌표를 옮겼습니다.
성경본문과 관계없이 저는 토끼를 통해서 두 가지를 배웠으면 합니다.
하나는 경청이고,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토끼는 시속 80km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하는데 이때가 언제일까요?
목숨을 담보로 하는 달음박질을 할 때입니다. 남을 공격할 수 없는 초식동물에게 하나님은 빠른 발을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달리면 곧바로 80km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지쳐버리겠지요. 그래서 토끼는 잘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귀를 세우고,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리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반응합니다. 토끼의 삶은 ‘듣는 능력과 두려움’에 의해 지탱되는 것입니다.
계묘년에는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많이 경청하십시오.
혀에 재갈을 물리면 경건함 삶(약 1:26)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십시오.
‘두려움’은 부정적인 것으로 많이 생각하지만, 사실 ‘겁’이 좀 있어야 합니다. 너무 ‘겁 없이’ 자라면, 자기가 책임지지 못할 일들을 합니다. 저는 최근 대기업 총수의 자녀들이 음주운전을 하거나 마약을 하다 검거되는 일들을 보면 너무 겁 없이 자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두려움’은 자기의 한계를 인식할 때 생깁니다. 그러므로 이 두려움이 건강하게 발현되면,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의지하는 신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좋지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하는 사도 바울의 말씀도 좋아합니다. 담대함과 두려움 사이의 존재, 그것이 인간의 존재성입니다. 고통과 실패는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다른 삶으로 들어가게 하고, 새롭게 시작하도록 이끕니다. 그런 점에서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하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은 전도서가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는 책으로 이해합니다. 맞는 분석이기는 한 데 한국어에서의 ‘무상’이라는 단어는 오해가 많습니다. 무상의 본래 뜻은 ‘한결같은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인생은 한결같지 않다’는 점에서 전도서가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는 책으로 이해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허무- 아무 것도 없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전도서에서는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으며, 인생의 기쁨을 누리고 살려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관한 지혜의 말씀입니다. 인생의 무상함이란,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모퉁이를 돌아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처럼, 시간의 흐름 즉, 그 나이에 들어서야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은 것이 인생이라는 말로 저는 이해합니다.
세상은 인생에 대하여 지나간 것을 후회하고 오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모든 인생은 순간순간이라는 ‘때’가 연결되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직소퍼즐처럼 어느 순간 단 하나의 퍼즐로 인해 완성될 수도 있고 미완일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며, 그 마지막 하나의 퍼즐이 맞춰지는 때가 ‘지금’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의 핵심은, 마지막 남은 퍼즐 하나를 맞춰 삶을 완성하고자 한다면 ‘오늘, 지금이라는 때’를 제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삶을 완성하고자 하지만, 삶이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완성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삶과 신비한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삶 사이를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잠언의 주제입니다. ‘사이의 존재’라는 것은 어느 하나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의 조화로 완성되어가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신년주일에 주신 전도서의 말씀을 통하여 세 가지 삶의 지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는 몇 번의 기회의 ‘때’와 실패의 ‘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 때를 인생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면, ‘그 순간을 적극적으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몰입하고 집중해서 그 순간을 보라’는 이야깁니다. 지금 여기를 보려면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회의 때에는 기회를 잡고, 실패의 때에는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곳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는 예배에 집중하고,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에는 거기에 몰입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현재에 충실하기 보다는 과거나 미래에 붙잡혀 살아갑니다. 결국, 지금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이런 삶은 과거, 현재, 미래 어디도 살지 못합니다.
‘지금 여기에 몰입’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오늘을 오늘답게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쌓여 우리의 삶이 되고,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성경에서는 ‘기쁘게 선행하며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고 합니다.
‘선행’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하는 밑거름입니다. ‘선한 일’은 삶을 정화시킵니다. 우리는 ‘선행’이라고 하면 ‘나눔’을 생각하고, 나눔이라고 하면 ‘타자와의 나눔’을 생각하는데 익숙합니다. 물론, 그것도 선행입니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선행이 있는데 ‘자신에게 선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여러분 자신에게 선행을 베푸십시오.
선행은 차고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메말랐고, 내 곳간이 비었다면 무엇으로 선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껍데기뿐인 빈 영혼, 빈 곳간으로 하는 선행은 기쁜 척 할 수 있을지언정 기쁜 마음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쁘게 선행’하며 살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사랑, 저만 아는 나르시시즘적인 사랑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사랑에는 기쁨이 없고, 우울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르시시즘의 상징이요,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의 신화로 알려진 나르키소스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지만 결코 기쁘지 않았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제가 새해에 여러분 자신에게 선행을 베풀라고 드리는 권면의 말씀은 우울한 나르키소스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때를 감사하며 기쁨의 삶을 살아가라는 권면입니다. ‘오늘은 나에게 기쁘게 선행하기에 가장 좋은 날이다. 올해는 나에게 기쁘게 선행하기에 가장 좋은 해다!’ 그렇게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지금 여기에 ‘몰입’하고 ‘기쁜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라면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13절에 먹고, 마시고, 하는 일이 있으면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잠언 곳곳에서 강조되는 말씀입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해서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일할 수 있으면 자족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일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지난 일주일 어간에 이전에 함께 사진작업을 하기도 했던 50대 후반의 사진작가와 총회교육원 시절 함께 일했던 60대 초반의 목사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두 분 모두 사망 전날까지 근황을 알리며 활발하게 활동을 했었는데 당연히 함께 맞이할 줄 알았던 새해를 맞이하지 못하고 어제 한 줌의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살아있어서 자족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몸이 아프면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조차도 고통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오늘 먹고, 마시고, 일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새해에는 자족하는 삶으로 들어가십시오.
빌립보서 4장 11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하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는 말씀도 기억하십시오.
계묘년 새해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계묘년 한 해, 지금 여기에 몰입하고, 기쁜 선행을 하시고, 자족하는 삶을 사셔서 여러분의 삶은 완성해가는 귀한 해가 되길 축복합니다.
‘새해’라는 때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우리에게 주신 ‘때’를 기억하게 하시고, 지금 여기를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구불구불한 인생길이기에 실패를 맞볼 수도 있고, 울어야할 때를 만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때를 기회의 때로 바꿔가는 지혜로운 이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새해에도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더욱 더 순종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