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성탄절/송년주일)
쓴 물이 단물로 바뀌는 새해
출애굽기 15:22~27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뻐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성탄주일이며, 올해의 마지막 주일인 송년주일입니다. 한 해가 시작되고 한 달도 안 된 것 같은데 마지막 주일이라니 믿겨지지 않습니다.
어느 시인은 ‘시란 단어가 모여 행을 이루고, 행이 모여 연을 이룬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아무 단어나 나열된다고 시가 아니라 ‘어떤 단어’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배치되는가에 따라 시도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삶에 적용을 시켜보면, 하루하루가 쌓여서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 누구나의 삶이라도 인생이지만 ‘어떤 오늘’을 살아가는지에 따라 인생의 가치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성심껏 살아가시어 멋진 인생을 만들어가시길 축복합니다.
인간의 몸은 70%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수분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건강을 잃을 수밖에 없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서 ‘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치료용 수액(링거)’를 꼽습니다. 그 이유는 몸에 이상이 있는 경우 갈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수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어서 회복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광야체험을 마치고 돌아온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광야를 걷는 체험이었는데, 건조한데다가 뙤약볕이 내리쬐는 광야를 걷고 또 걷는데도 땀이 나지 않더랍니다. 그 이유는 광야가 너무 건조해서 땀이 나자마자 증발하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땀이 나지 않는다고 물을 먹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땀이 나지 않아도 광야를 걸을 때는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는 광야를 걷다가 물을 얻지 못하여 위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는 성탄절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의아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수님이 오심은 쓴 물을 내던 마라가 단물을 내는 샘으로 변화된 것과도 같고, 마라를 지나 열두 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을 만난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번 해의 송구영신예배는 친교시간에 알려드린 대로 토요일과 주일이 이어져 있어 신년예배로 가늠하고자 하기에 오늘이 ‘송구’예배, 다음 주는 ‘영신’예배가 되겠습니다. 거기에 그동안 한남교회 교사로부터 전도사를 거쳐 지난 11월 24일 목사안사를 받으신 엄재현 목사님이 전북노회 발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가시게 되어 오늘 송별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거기에 허준혁 목사님이 이번 주부터 한남교회 부목사님으로 청빙되어 환영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준비하는 연말연시에 이런 일들이 있어서 저는 사실 상당히 힘들었습니다만, ‘친교와 소식’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착착 이뤄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설교는 성서일과에 따르지 않고 성탄예배와 송구영신예배, 송별예배, 환영예배, 이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는 말씀이 무엇일까 하면서 출애굽기 15장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모두에게 덕담을 드립니다.
“쓴 물이 단물로 바뀌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도 덕담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수르 광야로 들어와 사흘 길을 걸었지만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겨우겨우 마라에서 물을 얻었지만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마라!’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어 붙여준 이름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 노심초사 끝에 뭔가 해결책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더 꼬이는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문제가 생존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해보십시오. 참으로 난감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합니다. 모세는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대로 목숨 걸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고, 나흘 전에만 해도 홍해바다를 건넜는데, 하나님은 물을 공급해 주시지도 않고, 백성들은 원망을 하니 참으로 황당했겠지요. 하지만, 모세는 이때 어떻게 했습니까? 25절 말씀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이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만, 위기의 때는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문제가 있을 때, 삶의 위기가 있을 때, 원망하고 탄식 속에 머누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백성들처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모세가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여러분, 새해가 온다고 해서 우리 삶의 문제나 위기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새해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셔서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마라에서 백성을 시험하십니다. 이 시험에 통과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순종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주신 규례를 지켜야’합니다. 이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은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질병 중 하나도 걸리지 않을 것이며,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치료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삶의 문제뿐 아니라 건강의 문제까지도 치료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분,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새해에는 여호와 라파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셔서, 여러분의 삶이 치료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라에서 기적을 체험한 백성들, 시험에 통과한 이스라엘은 엘림에 도착합니다.
엘림은 샘이 12개나 있고, 종려나무도 70그루나 있는 오아시스 중의 오아시스입니다. 더군다나 이곳의 물은 마라처럼 쓴 물이 아니라 단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라에서 엘림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대략 10km정도입니다.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해도 길게 잡아야 하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단물,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단물이 마라와 그리 멀지 않은 지척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마라에서 원망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엘림으로 인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마라와 같습니까? 그러면 기도로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엘림으로 인도하시는 중이라고 믿으시고 힘을 내십시오. 엘림은 먼 곳에 있지 않듯이, 여러분이 원하시는 삶도 지척이 있음을 믿으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파송 받으시는 엄재현 목사님, 발산교회가 엘림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청빙 받으신 허준혁 목사님, 한남교회가 엘림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교우 여러분, 이 교회와 여러분의 가정이 엘림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엘림이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누구나 한 해를 보람차게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삶은 우리의 의지대로만 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더욱 깊게 알아가며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늘 열심히 살려고 노력도 하지만, 더욱 더 기도하게 됩니다.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면서 누구나 다 일 년이라는 삶의 세월을 보람차게 살아가기기를 결단하실 것입니다. 이 결단에 기도를 더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도 깊어지시고, 그만큼 여러분의 삶이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런 복을 풍성하게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 우리의 삶에도 빛으로 오시어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새해에는 쓴물이 단물로 바뀌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며 성실하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엘림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때론 우리 삶에서 마라를 만날지라도 불평과 원망 속으로 빠져들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극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