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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4주]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라

  • 관리자
  • 2022-12-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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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대림절 4주/대림절4주)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라
이사야 7:10~16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의 평화와 기쁨이 임하시기를 빕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서일과 중에서 구약성경 이사야서의 말씀은 남왕국 유다의 아하스 왕에게 주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역대상, 역대하에 나오는 아하스 왕에 관련된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예언의 말씀의 연대기를 정리하면서 복잡하긴 했지만, 참 많은 재미를 느꼈습니다. 제가 느꼈던 그 즐거움을 여러분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 중에는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흐름이 중요합니다. 저는 세세한 숲의 나무들을 설명하지만, 여러분은 나무들이 이루고 있는 숲을 보시면 됩니다. 


■ 오래 걸리는 예언의 성취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시길 바랍니다.
아하스 왕이 기원전 736년부터 720년까지 16년간 남왕국 유다를 다스렸으니, 이 예언의 말씀이 720년경에 선포된 것이라고 상정하면 임마누엘에 관한 예언은 720년 후에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가 미워하던 두 왕에 대한 예언은 10년 이내에 성취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렇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오신 것을 기점으로 기원전과 기원후가 나뉘게 되었으니 14절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하는 예언의 말씀 성취는 원년에 이루어졌습니다. 15절의 “그 아이가 잘못된 것을 거절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나이”는 당시의 나이 기준으로 예수님이 12살 되던 때입니다. 그러니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온전히 성취될 때까지 730년이 넘는 시간의 간격이 있는 것입니다. 


■ 속히 이뤄지는 예언의 성취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거쳐 이뤄지는 예언의 말씀도 있습니다만, 16절의 예언처럼 수년 내에 이루어지는 예언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16절에 “그 나이가 되기 전에 임금님께서 미워하시는 저 두 왕의 땅은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하는 예언이 성취되기까지는 짧으면 4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이루어졌습니다. 아하스 왕이 미워하던 두 왕은 아람 왕 르신(기원전 754년–기원전 732년/ 732년 앗시리아에 멸망)과 이스라엘의 왕 베가(재위 기원전 736년경-732년경/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에 멸망)입니다. 왜 미워했는가 하면, 두 왕이 연합작전으로 유다를 지속적으로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아람이 기원전 732년, 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에 멸망했으니 16절에 “그들의 땅은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하는 예언은 10년 이내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 이사야 선지자는 한 사람인가?


이후에 앗시리아 제국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고, 앗시리아의 편을 들며 바벨론 제국에 항거하던 남왕국 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벨론의 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그러면, 좀 의아하지요.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에게 예언하던 때는 기원전 736년부터 720년경인데,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한 때는 586년입니다. 그러면 이 기간이 대략 130년 정도가 됩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예언자로 부름을 받아 기원전 745-695년까지 50년간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러니 이사야 예언자가 죽은 후 100년 정도가 지난 후에 남왕국 유다가 망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사야서를 통해서 바벨론 포로지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이사야 선지자의 희망의 메시지도 읽습니다. 그러면 바벨론 포로지에서 70년을 살았으니 이사야의 수명은 엄청나게 늘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이사야는 또 누구일까요? 결국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베른하르트 둠이라는 신학자는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1~39장), 제2이사야(40~55장), 제3이사야(56~66장)로 구분했습니다. 각기 저자는 다른데, 후대에 편집하면서 ‘이사야’라는 한 인물로 정리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분류에 따르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제1 이사야서에 속하는 것으로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에 관한 내용입니다.
 

■ 아하스 왕의 죄는 무엇일까?


아하스 왕의 죄는 무엇일까요?

11절에 “너는 주 너의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여라. 저 깊은 곳 스올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보여 달라고 하여라.” 그런데 아하스 왕이 뭐라 대답합니까? “아닙니다. 저는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주님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합니다. 얼핏 들으면, ‘주님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 때문에 겸손한 왕인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요즘말로 바꿔서 말하면 이런 말입니다.

“아하스 왕이여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싫습니다. 됐거든요.”


기도해야할 때, 하나님을 의지해야할 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하고 우상을 의지했다는 것아 아하스 왕의 죄입니다.
 

■ 아하스 왕의 행적


왕의 평가를 담은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를 보면 아하스 왕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고, 왕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하스 왕에 대한 평가는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다.”입니다. ‘정직하게 행하지 않은 왕’이라는 것이지요. 어떤 면에서 그랬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 그릇된 길을 걸어갔던 왕들의 길을 걸었고, 바알 숭배를 하면서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워 인신공양 했고, 여기저기 산당을 만들고 이방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분향했습니다.

이사야가 아하스 왕 앞에 나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할 때의 상황은 아람 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연합하여 남왕국 유다를 괴롭히며 아하스를 둘러싸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이런 위기의 때는 기도해야 할 때요, 하나님께 의지해야할 때요, 도움을 요청해야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신흥강대국 앗시리아를 의지했습니다. 앗시리아의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아람 왕 르신을 제거합니다. 결국,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때에도 그들과 연합하여 일조합니다. 신흥 강대국을 의지한 덕분에 그토록 미워하던 아 람왕과 이스라엘을 제거했으니 앗시리아가 믿는 신이 하나님보다 위대해 보였던 것입니다. 아하스 왕은 앗시리아의 제단을 본 따서 여호와의 성전에 만들어 놓게 하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우상을 섬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하스 왕이 역대기 기자들에게 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은 왕이라는 혹평’을 당했는지 아시겠지요? 하나님 섬기는 일을 뒷전으로 하며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할 때 거부하고, 하나님의 전에 우상의 제단을 설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하는 말로 빠져나가려고 하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은 왕’이라 평가받은 것입니다.

 

■ 위기의 때는 기도해야 할 때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신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우상숭배 하지 말고,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할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위기의 때는 기도해야 할 때요, 하나님만 의지해야할 때요, 하나님 앞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에 느닷없이 다가오는 위기를 유익한 것으로 바꾸려면 기도에 힘쓰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위기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아하스 왕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라


그러자 이사야가 말합니다.

“당신은 백성의 인내를 시험한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이제 하나님의 인내까지 시험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하스 왕의 행위는 ‘하나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언제까지 참으실 것인가’ 테스트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삶입니다. 아하스는 당장 자기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 자기가 미워했던 아람 왕 르신의 죽음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 앗시리아를 의지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해도 이렇게 승승장구한다고 기고만장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한 결과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영원할 줄 알았던 앗시리아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유다도 586년 바벨론에게 멸망해서 포로로 끌려갑니다. 페르시아제국이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페르시아 제국도 망하고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독립을 쟁취하고자 로마제국에 저항했지만, 디아스포라로 세계에 흩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약속의 땅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팔레스틴의 폭군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하스 왕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은 왕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를 후손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스라엘이 지금 팔레스틴에서 자행하는 폭력을 보면, 그 나라는 영영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등에 업은 그들의 폭력행위가 너무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예언의 말씀은 폐기되지 않는다


15절의 말씀에는 아주 재미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아이가 잘못된 것을 거절하고 옳은 것을 선택한 나이가 될 때에, 그 아이는 버터와 꿀을 먹을 것입니다.”합니다.

‘버터와 꿀’은 아주 특별한 음식입니다.
전투식량과는 상반되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니 ‘전쟁이 없는 상태, 하나님의 온전한 평화가 이뤄진 상태’를 상징하는 음식인 것입니다. 단순히 ‘버터와 꿀’을 먹는 것이라면, 그런 평화는 오늘날 마켓에서 돈 주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나이를 12살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로 오시는 그분의 나이 12살이 되면 모든 전쟁이 끝나고 하나님의 평화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이 예언은 어찌 되었습니까? 예수님 12살 때 이런 평화가 임했습니까? 그때에도 여전히 로마의 식민지였고, 팍스로마가 지배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언의 말씀은 폐기된 것일까요?
 

■ 위기에 때에 기도하십시오


아닙니다.
대림절에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예언이요, 성취될 예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어리석은 아하스 왕처럼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실 때 기도하시고, 징조를 구하라 하실 때 징조를 구하시고, 어찌해야할지 보이지 않을 때 보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삶의 위기를 느낀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기억하십시오.
삶의 위기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의 위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단련시키기 위해서 주시는 위기가 있고, 회개시키기 위한 위기가 있습니다. 특히 회개시키기 위해 주신 위기의 시간에는 “너는 주 너의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여라, 저 깊은 곳 스올에 있는 것이든, 저 위에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보여 달라고 하여라(사 7:11)”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한 마디로, 위기의 때가 우리에게 온 것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위기의 때에도 기도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만으로 풀어가고자 하신다면,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않는 지혜로운 분들 되길 바랍니다.
 

[거둠 기도]




오래 참으시는 주님, 지금껏 우리의 삶을 붙잡아 주시고 인도해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입고 사는 삶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감으로 주어진 것인지, 하나님께서 인내하심으로 얻은 것인지 겸허하게 돌아보게 하옵소서. 주님, 위기의 때에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어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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