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강림절 1주)
그 날을 기다리는 삶의 자세
로마서 13:11~14

지난주에 설교해 주신 한빛교회 유원규 원로목사님은 제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목사님 중의 한 분이십니다.
시편 23편으로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거면 충분하지 뭐가 더 필요한가?’ 이 말씀 깊이 새기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 금요일 감기기운이 약간 있어 감기약 처방받으러 병원에 들렀다가 코로나 확진을 받았습니다. 바로 보건소에 코로나확진자로 등록되고, 자가 격리 관련 문자가 옵니다. ‘위반시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문자를 보니 갑자기 앞이 캄캄합니다. 토요일 결혼식 주례가 있고,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인데다가 창립67주년 기념주일이고, 성만찬식도 있는데 생각하니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니 그냥 위반할까 생각도 했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확진이라 하니 정말 몸이 아픈 것 같았고, 실재로 토요일부터 주일 오후까지는 좀 불편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날은 마치 강도처럼,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던 때에, 내가 원하지 않아도 ‘느닷없이’온다는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이번 주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기독교 절기에서 대림절은 한 해를 시작하는 때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절기입니다. 그리하여 대림절은 기다림의 시간이요, 소망의 시간입니다. 무엇을 기다리고 소망합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뤄주길 소망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성경에서는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그 날,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날, 나와 네가 평화롭게 지내는 날, 구원의 때, 재림의 때, 종말의 때’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합니다. 그 날은 생각하지도 못하던 때에 온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 그날이 오더라도 실족하지 않으려면 깨어있으라고 하십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때에 그 날이 올 것이며, 깨어있지 않으면 멸함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대림절 첫째 주일 성서일과에서는 공통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곳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사야서 2장 1~5절의 말씀입니다. 핵심구절 4절에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분쟁과 갈등이 없는 나라입니다.
■ 우리의 현실

최근 남한과 북한은 군사훈련과 무기실험 등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가능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남한이나 북한이나 무기수출로 돈을 벌면서도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경제적인 안정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늘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갈등합니다. ‘힘없는 평화가 가능한가?’하는 문제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현실의 논리가 우리를 압도하고, 그리하여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상상의 나라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사야 예언자는 5절 말씀에서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고 합니다.
여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할 근거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빛’은 ‘세상의 어둠’과 상반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현실에 바탕한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빛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빛에 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는 이들에 의해 손가락질을 당하고, 비난을 당합니다.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늘 그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조차도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부질없는 심지어는 죽여야 하는 이단아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빛에 행하는 일, 그 일은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빛에 행하는 이들이 알고, 하나님이 아시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거면 되었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두 번째로 서신서의 말씀 로마서 13장 11~14절입니다.
핵심 구절은 12절의 말씀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구원의 때, 즉 새 하늘과 새 땅, 그날이 가까이 왔으니 ‘어둠이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행동은 이렇습니다.
‘낮과 같이 단정하게 행하고(어둠 속에서 행하지 말고), 방탕하지 말고, 술 취하지 말고,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고,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좀 쉽게 말씀드리면,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사람은 육신의 일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깨어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 6:33).”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의’를 구하는 것이 우리가 이뤄야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의란, 세상의 옳고 그름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이웃과 자연, 타자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갑옷을 입는다는 의미는 어둠의 행실들을 하나 둘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중심성’이라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힌 육신의 생각을 하나 둘 내려놓다보면,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을 보았다고 하면서도 그 비전을 따라 살지 못합니다. 이유는, 그 날과 때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대로만!’을 외치며,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질 것이라 철썩 같이 믿고 그날이 임하기 직전까지 일상의 삶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6~44절의 성서일과는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일 당장 홍수가 와서 멸망당할 터인데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들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하다가 멸망당했는데도 그 사실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멸망당한 사람의 비참함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 자신의 삶의 자리가 멸망당한 자리요, 버림받은 자리’라는 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밭에 있다가,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다가 한 사람을 부름을 받고, 한 사람은 버림을 당했는데, 버림받아 남겨진 사람은 여전히 자기가 버려진 줄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버림받은 사람의 비극이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비극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너희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24:42).”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날을 기다리는 삶의 자세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깨어있는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의 말씀은 깨어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말씀이 상징하는 바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따라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따라 산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벗어나 이웃과의 관계성을 맺고 살아간다는 것이요, 그런 삶이 바로 ‘깨어 있는 삶’이요, ‘준비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추상적일지 몰라, 좀 더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요원해 보일지라도 깨어있으라. 그 나라를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깨어있으라. 깨어있다는 것은 자기중심성을 벗어버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이웃과 자연, 타자에게로 나아가는 것이다. 절망하지 말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라.’
대림절 첫째 주일에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깨어 있으라!”

[거둠 기도]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 어두운 세상에서 여전히 주님을 소망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빛의 갑옷을 입고 깨어있게 하시며, 절망하지 않도록 힘주시고, 그 날에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