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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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달 특집 05] 안식일과 열째 계명

  • 관리자
  • 2022-10-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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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제21주/창조절 9주(20221030)
안식일과 열째 계명
출애굽기 20:17, 아모스 8:4~11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부패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면죄부를 대량으로 판매하는 오류를 지적하고 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 반박문을 게시한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초대교회 이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나뉘어져 있긴 했지만, 1500여 년 동안 나름 하나의 교회를 자부하고 있던 교회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개신교)로 분리되었습니다. 그 이후 개신교회는 또 수없이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심지어는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된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 한국교회 위기의 원인


한국교회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대대적인 종교개혁과 관련된 행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구호만 요란한 잔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곧이어 2019년 말에 시작된 코로나 19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고, 극우정치성향의 교회와 단체들로 인해 기독교는 혐오의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권력과 유착하여 관제데모를 하고, 떼쓰기로 수백억 원의 보상금을 받아 가로채고. 대형교회들마다 세습을 강행하고, 교회의 간판을 단 이단의 창궐뿐 아니라 이민자들과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각자도생의 삶으로 내모는 경쟁적인 사회체계와 젊은 세대들의 이탈 은 코로나 19 이후의 한국교회의 존립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교회의 탐욕 혹은 탐심’입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제 멋대로 해석하니까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성경을 통독하고, 암송을 해도 신앙적인 확신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생명의 길이 아닌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 탐욕, 탐심, 욕심의 결과는?


탐욕이란, 말 그대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세 가지 독이 있다고 하는데 ‘어리석음, 분노, 탐욕’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삼독’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눅 16:13). 그리고 십계명에서도 탐욕을 채우고자 살인이나 절도, 거짓 증거를 하면 안 된다 하고 특히 열 번째 계명에서는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성경에서는 더 나아가 자기의 것을 나누지 않는 ‘인색함’도 탐욕이라고 합니다(고후 9:7). 그리고 더 나아가 ‘탐욕은 우상숭배니라(골 3:5, 엡 5:5)’고 하시며, 그 끝은 ‘죽음’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교회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다르지 않습니다.

 

■ 징검다리로서의 안식일 계명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우상숭배를 금하는 첫 번째 계명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은 ‘탐욕 혹은 욕심’과 관련된 계명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이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첫째 계명과 연결되고,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월 첫 주에 ‘안식일과 첫째 계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눈 것이고 마지막 주일인 오늘 ‘안식일과 열째 계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계명이고, 열 번째 계명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계명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 법’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우상숭배에 대한 저항이요, 모든 탐욕에 대한 저항인 것입니다.

 

■ 성빈과 청빈의 삶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날 우리는 우상에 해당되는 맘몬과 그것을 얻기 위한 탐욕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고, 안식일을 거부하고, 부모도 공경하지 않고,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증언과 이웃의 소유를 탐내어 빼앗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이기 때문에 ‘안식일은 저항’인 것입니다. 그런데 탐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맞아요. 저도 있습니다. 탐심이 있는데, 그러나 탐심을 자꾸 줄여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줄이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생활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걸 단번에 고치기는 어렵겠지만, 잘못되었다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세워나가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가난에 찌들려 부자가 되기를 욕망하는 삶이 아니라, 자발적인 가난을 추구하는 날, 그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오산에 있는 한신대학교 기숙사 이름이 ‘성빈학사’입니다. 성빈이란, ‘거룩한 가난’이라는 말입니다. 목회자가 되고자하는 이들에게 거룩한 삶, 청빈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이름입니다. 성빈, 청빈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셔서, 탐욕의 삶으로는 얻을 수 없는 큰 기쁨을 누리는 삶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풍성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이시길 바랍니다.

 

■ 구약 선지자들의 일갈


구약선지자들의 이스라엘을 향한 비판의 내용의 큰 줄기를 찾아 들어가면 ‘안식일’과 연결됩니다. 안식일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고, 예배는 형식화되었고, 일상의 삶에서는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 하나님을 잊고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군사력을 의지했고, 군사력으로 더 많이 갖는 것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상품지상주의’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가장 충실했던 왕이 솔로몬입니다. 성전을 황금으로 치장하고, 각종 예물과 심지어는 아내까지도 수없이 늘려갔습니다. 솔로몬은 끊임없이 더 갖기 위해 계획하고, 궁리하고, 협상하고, 착취하며 축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안식이 없는 삶’이었고, 인생 말년에 그가 깨달은 것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하는 경구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하시는 것이요, 안식일에 드리는 예배를 제대로 드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의 쉼만이 하님의 언약을 따르는 유일무이한 표지요, 안식일의 쉼만이 온갖 탐욕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방편이었기 때문입니다.
 

■ 아모스 8:4~11


아모스 선지자는 사회비판으로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솔로몬 사후에 분단된 북왕국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로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빈궁한 사람들을 짓밟고, 가난한 사람들을 망하게’하면서도 ‘초하루 축제가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 수 있을까?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며 쉬는 날인데, 그 날에도 끊임없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궁리만 합니다. ‘되는 줄이고, 추는 늘이고, 가짜 저울로 속이면 밀을 더 축적할 수 있겠구나’하고 ‘헐값에 가난한 사람들을 사고 신 한 켤레 값으로 빈궁한 사람들을 사자. 찌꺼기 밀도 팔아먹자.’합니다. 그들은 요즘 말로 해석하면, 끊임없이 탐욕을 채우고, 축적하여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덕으로 삼는 ‘상품소비시스템’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탐욕의 노예가 되어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탐욕을 채울 궁리만 하니,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요,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했는데 이웃의 것을 속임수로 빼앗으니 열 번째 계명을 어긴 것이요, 하나님 아닌 우상을 섬기고, 그 이름을 망령되게 했으니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을 어긴 것이요,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아간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앗시리아라는 강대국에 의해 파괴되어 혼혈아가 되어 동족이었던 유대족속에게 조차도 개취급을 당하는 삶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 무엇을 갈망하는가?


그들은 안식일에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궁리를 해서 부자가 되면, 그것들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서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목말라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다.”말씀하십니다.

어떻습니까? 모든 필요가 풍족한데도 끊임없이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는 탐욕을 추앙하는 시대, 축구감독 히딩크의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가 경구가 되는 시대, “끊임없이 욕망하라”는 말로 인간의 탐욕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시대, 과연 이런 것들이 이 시대의 기근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 이 시대가 돌이키지 않고 계속 이렇게 간다면 북왕국 이스라엘처럼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인생의 행복이나 성공이라는 것이 탐욕을 채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는 지혜로운 분들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 하고 배고파하시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일만큼은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며 쉼을 얻고, 재충전하며, 말씀으로 우리 안에 있는 탐욕을 버리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참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예배에 집중하라


아모스 시대에 그들은 끊임없이 착취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궁리하고 탐닉하면서도 예배에 참여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종교적인 관습을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본심은 ‘안식일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 같지만 지키는 것이 아니요, 쉬는 것 같지만 쉬지 않는 것입니다. 쉬는 날에도 탐욕적인 생각에 가득 차 있으니 몸은 성전에 나와 있지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요,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예배에 참여하신 것은 좋은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정말 좋은 선택이 되게 하시려면 예배에 집중하십시오. 서로가 예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시고, 예배를 집례하고 말씀을 전하는 저도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풍성한 삶으로 이끌어주십니다. 그 풍성한 삶은 이 세상의 것과 달라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 ‘안식일은 저항이다’ 총정리


월터 브루그만과 함께 하는 종교개혁의 달 마지막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간단한 문장으로 결론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안식일은 거룩해 지려고, 사람이 되려고, 사람답게 살려고 시간을 들이는 날이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온갖 거짓 욕구가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앗아간다.

시편의 말씀을 한 구절 전해 드리고 말씀을 마칩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편 73:23).”

 

[거둠 기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우리는 때때로 안식일을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때론,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 예배공동체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시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에게 주시는 풍성한 삶을 누리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종교개혁주일에 우리의 신앙도 새롭게 갱신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pt영상설교 안식일과 열째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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