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후 제20주/창조절 8주(20221023)
유일무이한 표지
이사야 56:1~8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올해 종교개혁의 달 시월의 설교는 월터 브루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라는 책을 기초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것은 아니고, 제가 읽고 재해석을 하고 덧붙여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기본주제가 ‘안식일’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네 번째 계명에 집중하여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주제들도 많은데 ‘안식일’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는 표지 중에서 외적으로 드러나는 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주일성수를 하느냐 안 하느냐?’일 것입니다. 한남교회 교인인지 아닌지는, 한남교회 주일예배에 참여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이든 미숙한 신앙이든, 교인이냐 아니냐는 ‘주일성수’에 있으므로 ‘안식일’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유일무이한 표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그리스도정교회,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 어느 교파와 교단에 속해있든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모든 이들을 통칭하여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김민기의 노래 중에서 ‘여러 갈래 길’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1절 가사에 “여러 갈래 길 누가 말하나 / 이 길뿐이라고 / 여러 갈래 길 누가 말하나 / 저 길뿐이라고”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7-80년대 오로지 한 생각만 강요되던 현실을 비판 한 노래입니다.
저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 갈래 길이 있는 것은 맞지만, 큰 줄기가 있고, 여러 갈래 길 중에서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샛길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모든 길이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다양성도 인정해야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려면 그 중심에 흐르고 있는 사상이 올곧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관련해서 다양성을 인정하려면 ‘인권’이라는 중심 줄기가 바라야 하고, 환경과 관련해서 다양성을 인정하려면 ‘더불어 삶’이라는 중심 줄기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집단이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인권이 없고, 환경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더불어 삶이 없다면, 인권이나 환경을 내세워 자기들의 이익을 채우는 집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서해까지 도도히 흐르는 한강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강이듯, 한강과 연결된 수많은 천(川)들이 있지만, 강줄기가 되는 한강으로 흘러들 듯이 신앙생활을 관통하는 중심 줄기도 있습니다. 그 중심 줄기는 바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안식일 법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이웃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신앙생활을 관통하는 중심 줄기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속이 텅 빈 나무와 같아 작은 바람에도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은 ‘중심’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주일 성수를 통해서 신앙의 중심을 잘 세워가는 중입니다. 신앙의 중심이 바로 서면, 어떤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 자체가 복된 일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피루, 즉 떠돌이들이요, 변방 사람들로 따돌림을 받던 이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후 요셉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정착할 곳이 없어 식량과 물을 찾아 여기기 떠돌아다니던 유목민이었습니다. 요셉 덕분에 긴 가뭄을 견디느라 이집트 땅에 정착했지만, 요셉을 모르는 이가 이집트의 왕이 되자 고단한 노예로 살아갑니다. 자그마치 430년 동안, 노예근성이 온 몸에 새겨질 정도로 오랜 세월동안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더는 살 수 없다고 아우성을 쳤고, 하나님께서 그 아우성을 들으시고 광야로 그들을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 이르러서 계약을 맺으시고 떠돌이 백성, 노예로 살아가던 하피루를 ‘부름 받은 공동체’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민족도 아니었던 이들이 ‘하나님의 소유인 거룩한 백성이요 그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학대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지 아닌지를 통해서 자신들의 경계에 속하는 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했습니다. 율법의 실천 여부에 따라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분리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레위기 제사장의 전통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세한 정결법을 만들고, 정결법을 어기는 이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통일성과 안전을 위해 제거했습니다. 제거해야 할 이들은 우상숭배자, 거짓 선지자, 살인자, 제사장을 무시하는 자, 패역한 자식, 창녀, 간음한 자, 유아들을 유괴한 자, 심지어는 안식일을 어긴 자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이 강화되고 형식화되면서 배타주의적인 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법이 저주의 법이 되어버렸습니다.
율법의 본래 정신이 실종되자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도 형식적인 종교적인 행위로 전락하여 하나님께서 구토하실 만큼 타락했습니다. 결국, 남북이스라엘로 분단되고, 북왕국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완전히 멸망 당했고,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갑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면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법에서 떠난 삶을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유대인 회복 프로젝트 프로그램’입니다. 엇나간 모든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에 관한 말씀입니다. 파괴된 고향을 회복시킬 구심점은 예루살렘 성전이었고, 성전의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예배의 회복은 누구를 ‘예배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 모세의 율법에 근거하여 배척했던 사람들을 포용하라고 하십니다. 이방인이라고 해서, 고자라고 해서, 그밖에 정결법으로 배척했던 이들을 예배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모세의 율법에 따라 배척했던 이들을 예배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만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성전이 되어야만 온전한 예배가 회복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외국인노동자들과 성소수자들에 대한 태도가 어떠합니까? 사명감을 가지고 그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데 앞장서는 자칭 교회와 자칭 그리스도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들 앞에 ‘자칭’이라는 접두어를 넣은 이유는 이런 행동을 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교회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교회일수도, 그리스도인일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성경 말씀도 알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교회를 자기들만의 집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온전한 예배를 회복하려면, 모세가 거부했던 사람들조차도 받아들이라고 하심으로 ‘온갖 배타주의에’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모든 이들을 포용해야 합니다.
▪배타주의에 저항하는 날

우리 시대는 온갖 두려움과 불안이 여기저기 퍼져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두려움과 불안은 우상숭배를 가져오고, 이런 불안과 두려움은 혐오와 차별을 가져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장벽을 세우고,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배척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더 나아가 자기보다 약한 집단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적인 약자나 집단을 공격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여성, 외국인노동자, 이민자, 성소수자, 유색인종, 노인, 가난한 자, 장애인 등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들이 일상화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교회에 발을 붙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구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직 한 가지 잣대만 가지고 ‘예배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지 아닌지’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고자 하면 그가 누구이든지 예배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갖 배타주의에 저항하는 날이 안식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강줄기의 중심과도 같은 것이요, 신앙생활을 관통하는 중심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에게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 2장 22~23절을 보시면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선물은 아홉 가지인데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열매 맺게 하셔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안식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안식일이 유일무이한 표지’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신앙의 큰 중심 줄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갈래 길이 있지만, 때론 ‘오직 한 길’밖에는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 길에 해당하는 것이 안식일이요, 오늘날의 주일입니다. 우리들도 변방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셔서 그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떠돌이 백성이 아니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떠돌이 백성으로 살며 온갖 세상의 두려움과 불안의 노예로 살아갈 것인지, 거룩한 백성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선한 열매를 맺을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오늘 좋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 좋은 길을 끝까지 걸어가시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풍성하게 누리는 길을 걸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떠돌이 노예생활을 하던 이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세워주신 하나님, 우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걸어가던 이들이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이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다양하지만, 유일무이한 길이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복 주시는 날, 세상의 불안과 강요와 배타주의와 쉼 없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참된 쉼을 얻는 날, 선한 열매를 맺는 날인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게 하옵소서. 한남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공동체를 이루게 하시고, 그 일에 동참하는 우리 모두에게 한없는 하나님의 평화로 가득채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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