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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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달 특집 03] 너는 기억하라!

  • 관리자
  • 2022-10-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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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제19주/창조절 7주(20221016)
너는 기억하라!
신명기 5:12~15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푸네스」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이레네오 푸네스라는 소년은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뒤부터 보고 들은 것들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정밀시계’라는 별명도 얻습니다. 사고 후유증으로 전신마비가 왔지만, 가장 오래되고 사소한 기억들까지도 명확하게 살아났고, 심지어는 그의 친구에게서 빌린 라틴어 사전과 책을 두어 달 만에 암송하기도 하고, 창문너머로 보이는 무화과나무나 거미줄, 포도 덩굴에 달린 포도 알의 숫자와 줄기, 덩굴손의 세세한 모든 변화들을 빼놓지 않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이 생긴 이래 모든 인간이 가진 기억보다도 더 많은 기억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모든 기억을 분류해서 숫자로 규정해 보려고 했지만, 그 기억의 양이 너무 많아서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포기합니다. 그는 기억을 분류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는 “내 기억은 쓰레기 더미와도 같지요.”라고 합니다. 그가 기억하는 것들 중에서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의미겠지요.


■ 선물과 축복 사이에서


‘기억은 신의 선물이고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신의 선물과 축복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선물과 축복 사이만 오가면 좋겠지만, 종종 우리는 기억의 선물을 쓰레기로, 망각의 축복을 저주로 바꿔버립니다. 기억해야할 것은 버리고, 쓰레기 같은 기억은 간직하며 사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아우슈비츠 감옥의 벽면에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역사’를 안다는 건 참 중요합니다. 역사는 공동체의 기억이니까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나 역사를 되돌아보지 않는 공동체나 자신을 잃어버리긴 마찬가지입니다.”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곳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은 기억이라는 선물과 망각이라는 축복을 잘 선용하시길 바랍니다. 버려야할 쓰레기와 저주를 움켜쥐고 살아가지 마시고 버리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삶이 건강해 집니다.

과거에 붙잡혀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과거를 디딤돌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붙잡혀 “너 때문이야!”라고 남을 탓하고, 자신의 잘못은 잊고 합리화시킨다면 쓰레기를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 때문에 내 삶이 흔들리지 않아!”하며 살아간다면 선물과 축복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억이라는 선물, 망각이라는 축복을 지혜롭게 선용하시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 시내산에서의 선택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한 뒤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습니다.
이 계약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이 선택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긴다거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생겨나는 모든 불안을 거부하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다시는 파라오의 불안이 강요하던 이집트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자신들 역시도 이웃에게 파라오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이었습니다.

 

■ 또다시 불안에 빠지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선택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후 그들은 심각한 불안에 빠져들었습니다. 불안은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만나로 먹여주신 하나님을 잊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불안해소를 위해 그들은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금’을 모아 형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만 가지면,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할 때 신을 만드는 것은 보통의 인간의 겪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시켜주신 하나님을 잊고, 광야에서 베풀어주신 기적들을 잊고 마침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불안에 빠진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했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과 모세는 ‘소망’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그들을 종살이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망각한 까닭입니다. 그들은 불안에 빠져 기억해야할 선물을 쓰레기통에 버림으로 자신들의 소망도 쓰레기통에 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들에게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불안에 빠져 살아가게 되면, 우상숭배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고, 그것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야 불안에 빠지지 않습니다.

 

■ 황금송아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우상은 황금송아지였습니다. 황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은 그 앞에서 춤을 추며 온갖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진노라는 큰 장벽에 부닥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지 않으시면 이스라엘도 모세도 모든 소망을 상실할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대안으로 만든 황금송아지가 그들의 모든 소망을 제거하는 흉기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황금송아지가 없습니까?

이 세상이 주는 온갖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뒷전이고, 오로지 맘몬의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을 쌓고, 축적하는 데에만 골몰한다면, 혹은 ‘돈이나 권력, 명예’같은 것만 추구한다면 황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스펙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바탕에 ‘하나님’이 없다면 결국에는 황금송아지를 섬기던 이스라엘처럼 소망 없는 삶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삶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스펙도 필요하고, 부도 필요하고, 성공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성취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로 표현합니다. 그 모든 것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바탕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두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삶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혼자서 이루는 삶은 피곤하고 지칠 수밖에 없는 무거운 짐이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삶은 쉽고 가벼운 멍에로 삶에 생기가 넘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삶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삶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면 죽음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 다시 기회를 주시다


황금송아지를 섬긴 사건으로 이스라엘도 모세도 모든 소망이 상실된 듯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었습니다. 희망의 불씨가 된 것은 모세의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모세의 끈질긴 기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한 후 그곳에서 누리는 풍요로움은 그들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였고, 그 교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했고, 결국에는 우상숭배를 하여 멸망의 길로 치닫습니다. 그리하여 북왕국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남왕국 유다는 바빌론에게 멸망당했고,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기회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이들은 다시 하나님과 올바를 관계를 맺고 소망의 빛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단절된 채로 우상을 섬기며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고 있는데도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면, 모세와 같이 누군가 끈질기게 기도하는 손길이 있음을 기억하시고, 가던 길에서 돌이키십시오.
 

■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우리가 오늘 읽은 신명기 말씀에는 ‘기회를 받아들인 표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20장에도 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신명기에는 추가된 말씀이 있습니다. 14절 하반절에 있는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하여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평등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연결하면 ‘이웃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집트의 강제노동시스템과 판박입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리고 가진 자와 못가진자, 중요한 자와 하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눕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더 일하지 않아도 되며, 더 팔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더 생산하거나 소비하지 않아도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안식일 법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강요와 경쟁에서 벗어나는 날이요,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연대의 날입니다.
 

■ 너는 기억하라!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7일 전부를 보람차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보람찬 삶은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 이웃과의 회복된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땅과 자신과의 관계도 회복됨으로 단절되었던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세상의 온갖 강요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신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복된 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기억이라는 선물을, 망각이라는 축복을 잘 선용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너는 종 되었던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여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말씀하신 하나님, 주님께서 복 주신 날을 기억하며 주님의 교회에 모여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기억해야할 선물과 망각해야할 축복을 지혜롭게 선용하게 하셔서 우리의 삶과 이웃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너는 기억하라! ppt 영상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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