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후 제17주/세계성찬주일/ 창조절 5주(20221002)
안식일과 첫째계명
출애굽기 20:1~17
2017년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국교회의 현실을 반성하며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천명했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나 종교개혁 50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한국교회는 더 성숙해 졌는지 돌아보았습니다. 그 사이 코로나19로 인해 초대교회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주일예배가 비대면 예배로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비대면 예배 이후, 교회들마다 다시 이전의 예배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은 저도 실감하고 있습니다.
■ 초연결 시대
지금 우리는 초연결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고 휴대폰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지금이라도 지구 반대편에 실시간으로 한남교회 예배를 송출할 수도 있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검색창에 궁금한 것을 입력만 하면 AI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다 보여줍니다. 그리고 검색어가 곧 나의 관심사임을 알고 SNS 창을 열면 내게 꼭 필요할 것 같은 상품과 소식이 뜹니다. 우리는 SNS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좋아요’나 ‘친구숫자’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최배근 교수는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라는 책에서 초연결 시대를 이끌어갈 리더는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공감능력은 어떻게 해야 생기는 것일까요? ‘관계’를 통해서입니다. 이 관계는 가상공간이나 온라인 공간을 통한 관계를 넘어서는 직접적인 만남을 통한 관계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그 본질을 회복시키고자 한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모이는 모임을 회복해야만 할 것입니다. 코로나 이전처럼 모든 것이 회복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주일만큼은 교회에 나와 함께 얼굴을 마주하면서 예배하고, 친교의 공동식사를 나누고, 하나님께 한마음으로 찬양하고, 공동기도를 드리는 일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것이 교회와 교회에 속한 교인들의 신앙과 삶도 회복시키는 시작일 것입니다. 교회가 회복되면, 교인이 회복되고, 교인이 회복되면 교회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교회에 속한 모든 교우들의 삶과 신앙의 회복이 일어나는 한남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 월터 브루그만(1933~)
종교개혁의 달을 맞이하면서, 저는 지난 해 ‘본 회퍼와 함께하는 종교개혁의 달’에 이어 ‘월터 브루그만과 함께 하는 종교개혁의 달’을 준비했습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1933년 생으로 종교학자이며 구약신학자로 탁월한 시편 해석과 대중 설교에 능한 분입니다. 어느 출판사의 작가 소개를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세계적인 성경신학자이자 구약성경 해석의 권위자로, 일평생 성경 본문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그 무엇보다 성경 텍스트를 우선시해 온 신학자이자 설교자다. 풍부한 지성과 문학적 창의력을 동원하여 설교자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메신저 역할을 감당해 왔으며, 성경 연구란 모름지기 학자뿐 아니라 목회자와 평신도까지 두루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보기 드문 학자로, 세계적인 구약학자이면서 탁월한 대중 설교자로 평가받고 있다.’
■ 이집트의 노동 시스템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들에게는 ‘쉼’ 이 없었습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하는 강제노역을 ‘이집트의 노동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노동 시스템의 특징은 첫째로, 쉼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집트인들이 섬기는 신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빼앗아가는 신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집트의 노동 시스템’에는 안식이나 쉼이 있을 수 없고, 값싼 노동력이 필수였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예를 확보하는 전쟁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얻고, 일하고, 소유하는 삶으로 내몹니다. 그리하여 더 많이 원하고, 더 많이 소유 하고, 더 많이 사용하고, 더 많이 먹고 마시고, 더 많이 즐기는 것을 ‘잘 사는 것’이라 호도합니다. 현대인들은 상품을 생산하고, 생산한 상품을 소비해야만 돌아갈 수 있는 ‘상품소비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집트의 노동 시스템’과 오늘날의 ‘상품소비 시스템’은 다르지 않습니다. 둘 다, 인간을 비인간화 시킵니다. 이집트에는 풍요의 신 바알로 상징되는 잡신이고, 현재는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것으로 상징되는 맘몬, 돈입니다.
■ 안식일, 쉼의 시스템
이런 시대였고,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안식일은 저항이고, 대안입니다. 왜냐하면, 쉼을 통해서 우리는 ‘이집트의 강제 노동 시스템’이나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산소비 시스템’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 4계명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이집트의 강제노동 시스템에 저항하라!” 혹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품소비 시스템에 저항하라!”는 말씀입니다. ‘쉼’은 하나님의 선물이여, 이 선물을 흔쾌히 받아들일 때 우리를 녹초로 만들어버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쉼의 출발은 출애굽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노동에 근거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하늘의 만나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안식일까지 보관을 해도 썩지 않는 예외적인 만나를 주심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대로 살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만나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집트의 잡신처럼 빼앗는 하나님이 아니라 채워주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만나를 통해서 파라오의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안식일, 쉼의 시스템을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 십계명에서 넷째 계명의 위치
십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할 계명과 인간관계 사이에서 지켜야할 계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3계명은 ‘우상숭배를 혐오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말씀이며, 그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면 안 된다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5~10계명은 구체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지켜야할 계명들입니다. 그 사이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사이에 ‘안식일 법’이 있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까지 연결시켜 보면, ‘안식일 법’은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도 이웃사랑도 가능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쉼의 시스템은 이집트의 강제노동 시스템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쉼의 시스템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이집트의 강제노동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행위’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에게로 나아가 바른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 안식일과 첫째 계명
첫 번째 계명, “너는 나 외의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은 그동안 노예생활을 하면서 알던 모든 신들과 하나님은 다르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만족함 없이 제국의 생산 행위를 끝없이 강요하던 신들이 아니며, 그런 제국의 신들과 하나님을 같은 반열에 놓거나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계명은 파라오의 모든 욕망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 행동은 ‘쉼’을 통해서 끊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식일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품에 굶주린 분도 아니시오, 강제노동이나 상품중심 시스템을 옹호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강제노역으로 인해 아우성치는 노예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고, 쉼 없는 시스템에서 구원하셔서 쉼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쉼을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인 차원으로 확산시키고자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계명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번째 계명은 이웃과 하나님을 이어지는 징검다리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으로부터 첫 번째 계명, 오직 하나님만 섬길 수 있고, 두 번 째 계명, 우상을 섬기지 않을 수 있으며, 세 번째 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이들은 부모공경을 하고,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거짓 증거나 이웃의 집을 탐내는 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감으로 이웃사랑을 하고, 그 이웃사랑은 곧 하나님 사람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번째 안식일과 첫째 계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 일주일에 하루, 하루에 3시간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생산소비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하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전히 이런 시대에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자 하신다면 일주일에 하루는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며 쉼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하루 24시간 중에서 3시간은 ‘쉼’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24시간을 7로 나누면 3시간 40분 정도 됩니다,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5시간은 타자와 관계를 맺거나 일 혹은 취미 생활과 관련된 일을 하면 3시간이 남습니다. 일하는 시간에 유동성이 있겠지만, 하루에 3시간은 온전한 안식의 시간, 쉼의 시간으로 삼기 위한 계획을 세우시고 실천해 보시길 권합니다. ‘골방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서, 기도, 산책, 운동, 묵상 이런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이런 안식의 시간을 통해서 재충전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뒤쳐질까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빨리 앞서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창조의 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셨고, 우리에게도 ‘안식의 시간’을 통해서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출애굽기 20장 8~11절의 말씀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시고, 그날을 축복해 주신 하나님, 오늘 우리는 마치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들이 쉼을 빼앗긴 것과도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쉼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성실한 것이라는 거짓 신화에 빠져, 우리의 삶을 혹사하며 살아갑니다. 주님, 주님 앞에서 쉬며, 영혼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게 하셔서 우리를 옭아매는 온갖 무거운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