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성령강림후 15주/ 창조절3주] 기도가 주는 유익함

  • 관리자
  • 2022-09-18 11:00:00
  • hit1587
  • 222.232.13.47

성령강림후 제15주/ 창조절 3주(20220918)
기도가 주는 유익함
예레미야 18:18~23, 디모데전서 2:1~7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오늘은 성령강림 후 15주이며, 창조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창조절에 여러분의 삶도 새롭게 재창조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성서일과 중에서 기도와 관련된 두 가지 말씀을 읽었습니다. 두 가지 말씀을 읽은 이유는, 서로 보완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 예레미야의 탄원기도


예레미야는 예언자의 숙명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했습니다. 예언자의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지은 죄가 너무 크고 돌이키지 않으므로 망할 것이다!” 그래서 동족들에게 배신자 소리를 듣고, 조국이 망하기를 바라는 반역자 취급을 당합니다. 백성들은 예언자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잡아 죽일 계획을 세우자!”고 하면서 “그가 하는 말을 무시하여 버리자”고 합니다. 예언자에게 이처럼 치욕적이고, 모욕적인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배은망덕 한 것들 다 굶어 죽거나 전쟁에서 죽게 해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거꾸러져 죽게 하여 주십시오.”하는 기도입니다.


시편의 1/3이 탄원시인데 탄원기도는 자신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기를 요청할뿐 아니라, 자신을 비방하고 적대시하는 자들에게 강력한 힘을 행사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자신이 직접 폭력을 행함으로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갚아주실 것을 간구함으로 폭력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가 갚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기도는 언제 하는가?


우리의 ‘결핍’이 기도하게 합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직 얻지 못한 그 결핍, 내게 꼭 필요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결핍 때문에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중대한 결단을 내리시기 전에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떠올릴 때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기도를 하지 않고서는 안될 만큼 버거우실 때가 있으셨다는 사실, 둘째,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 도우심을 요청하셨다는 것 때문입니다. 우리도 결핍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기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약한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기도는 ‘이기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내가 없으면 내가 하는 이웃사랑도 있을 수 없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유익을 위하는 기도가 선행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연약할 때, 위기의 때에, 결핍의 때에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또한 우리를 기도로 이끌기에 ‘약할 때 강함 되시네.’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사도 바울은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즉,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려면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네 가지로 나누어서 제시합니다.

먼저,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간구하는 기도가 의미하는 바는 ‘긴박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둘째로,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경건하게 드리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셋째로, 중보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남을 위해 드리는 기도입니다. 넷째는, 감사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는 기도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까지 베풀어주심에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이 네 가지 기도는 어느 하나만 강조될 수 없고,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권력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이유


그리고 바울은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무조건 지지해 주라’는 말씀으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조찬기도회’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독재자들의 안녕을 위해서 기도해 주기도 했고, 선거철만 되면, 소위 교계의 지도자라는 목사들이 우상과 주술에 빠진 이들까지도 안수하고 축복기도 해주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덧붙인 말씀을 잘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경건하고 품위 있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경건하고 품위 있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함량미달의 지도자를 만나면 그런 삶은 물 건너갑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에는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네로 황제가 초대교회를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 시기(A.D. 64년 로마대화재)입니다.

네로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로마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의 소행으로 몰아붙여 기독교인을 박해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니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네로와 맞섰다가는 그간 전했던 복음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맞설 때가 아니라, 타협을 해야지만 초대교회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기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당연히 왕이나 권력자가 그릇된 길을 간다면 지지하는 기도가 아니라, 예레미야나 시편의 시인들처럼 탄원하는 기도를 드려야할 것이고,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처럼 꾸짖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더는 불의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 신앙의 두 날개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기도할 대상이 있거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감사할 대상이 있으면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저 홀로 이겨내겠다고 하거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에도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니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감사할 줄 모른다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신심이 강한 이유는 어떤 형태가 되었든 ‘기도와 감사’가 일상적인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가 많았겠습니까? 반도국가로서 대양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 속에서 늘 시달리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늘 강자들에게 빼앗기는 것을 일상으로 살아가던 이들은 자기들이 수고한 만큼만 거두어도 감사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기도와 감사를 두 축으로 하는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기도와 감사가 기복적인 형태로 작용하여, 성경의 기도와 감사의 본질을 왜곡시킨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와 감사는 신앙의 두 날개입니다. 기도 없는 감사, 감사 없는 기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삶의 내용이고, 감사는 기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 기도가 주는 유익함


바울은 기도가 주는 유익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경건하고 품위 있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딤전 2:2).”

경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5절에서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권면하고 있습니다.
품위는 다른 사람에 대해 정직하고 당당한 태도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4절에서 ‘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며, 언제나 위엄을 가지고 자녀들을 순종하게 하는 사람’을 품위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조용은 외적인 방해와 소동 없이 얻어지는 평안함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절에 “그리고 우리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대로,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십시오.”권면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마음의 내적인 평온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5절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은 기도하시는 중에 ‘경건하고 품위 있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기도는 영혼의 숨쉬기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숨쉬기입니다. 숨을 쉬지 않는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숨은 ‘날숨’과 ‘들숨’이 있습니다. 들숨과 날숨이 오가야 생명을 살리는 호흡이 가능합니다. 들숨만 있거나 날숨만 있는 것을 호흡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들숨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날숨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아뢰는 것입니다. 아뢰고 듣는 과정을 통해서 기도는 생명을 갖게 되고, 생명력이 있는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살립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그 사람의 중보기도는 이웃을 살리고,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렇게 하십시오.


첫째, 영혼의 숨쉬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우리는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골방을 만들고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일상은 멈추되 기도는 멈추지 마십시오.
둘째, 간절한 기도를 드려야 할 때에는 주님의 숲인 교회에 나와 기도하십시오. 숲에 서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공기가 얼마나 맑은지 숨을 깊게 들이쉬게 됩니다. 그러면 폐가 맑아지는 것 같고, 실제로도 폐가 맑아진다고 합니다. 교회는 기도하기에 특별한 장소입니다.
셋째, 기도하면서 일하십시오. 자기 스스로 이루기 위한 노력이 없는 기도는 요행이요, 기도 없이 자기 스스로 이루려는 것은 자만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뜻에 조율하십시오. 기도는 나의 생각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의 생각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말하지만 말고, 듣기도 해야 합니다. 
다섯째,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모든 사람’은 어떻게든 나와 관계가 맺어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기도가 주는 유익함을 누리십시오. 기도와 짝을 이루는 감사는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기도와 감사의 두 날개로 힘차게 비상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조율되는 성숙한 기도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힘차게 살아가게 하시고, 또한 우리를 위해 늘 기도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과 삶을 뒤흔드는 불안과 결핍을 신앙과 삶의 성숙을 위한 디딤돌로 삼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배실황 ppt설교 영상입니다. 여기를 누르시고 확인을 누르세요.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