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후 제9주(20220807)
준비하고 깨어있어라
누가복음 12:32~40
[창 15:1~6, 사 1:1, 10~20, 히 11:1~3, 8~16, 시 50:1~8, 22~23]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잘 분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시대적인 징조에 관한 것뿐 아니라, 사소한 일들에서도 ‘때’를 알아야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주식의 ‘주’자도 모릅니다만, 주식투자로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압니다. ‘살 때와 팔 때’를 잘 알면 됩니다. 그러나 그 때를 아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한다면 모를까, 저 같은 목사가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벌려고 생각한다면 목사의 머리에 ‘성경말씀’이 아니라 ‘주식시세표’만 가득해서 제대로 목회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식을 안 합니다.
그런데 가끔 주식을 권유하는 문자메시지가 옵니다.
대부분 투자금액의 100%이상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면서, 자료를 보냅니다. 자기한테 맡겨주면, 최저가에 사서 최고가에 팔아준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자기는 ‘살 때와 팔 때’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0만 원이 3천 만 원이 되었네, 100만 원이 1억이 되었네, 투자 안하면 바보네 하면서 꼬드깁니다. 제가 넘어갔을까요? 절대로 안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첫째, 저는 땀 흘려서 얻은 수익이 아니라면 하나님 나라의 경제정의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 예측이 정말이라면, 나에게 권유하지 말고 본인이 투자해서 부자가 되어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문자메시지 보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카카오페이카드’라는 것을 사용하면서부터 ‘카카오페이증권’이라는 곳과 연동이 되어 카드를 사용하면 몇 백 원씩 ‘자동투자 되었습니다.’하는 문자 메시지가 옵니다. 설교 초안을 잡던 8월 2일, 제 이름으로 자동 투자된 투자금은 13,600원, 수익은 마이너스 2,063원으로 수익률 –15.17%, 그래서 잔액이 11,537원입니다. ‘똑똑한 펀드’라는 해시태그가 붙어있지만, 하나도 똑똑하지 않습니다.
■ ‘때’를 아는 것의 중요성
여러분, 주일예배 드리러 오셨는데 주식도 모르는 목사가 주식이야기를 하니까 실망하셨나요?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린 이유는 ‘주식 투자’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잘 살펴보면,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때를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살 때와 팔 때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취해야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종목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들이 우리의 삶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그런 거짓 문자메시지에 혹해서 재산을 탕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신앙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알지 못하면,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처녀처럼, 예복을 입지 않아 혼인잔치에서 쫓겨나 이를 갈도록 낙담했던 사람처럼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인데, 시대의 징조를 읽지 못해 마지막으로 주어진 ‘그 때’를 놓쳐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느 때이고,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성서일과 창세기와 히브리서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제가 주목한 말씀은 히브리서 11:8절의 말씀입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 ‘아브람’일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시어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창 15:6).” 그렇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실 때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할 ‘때’인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시가서 시편의 말씀은 50편 ‘아삽의 노래’와 시편 33편의 노래입니다.
아삽의 시에서는 하나님께서 오시는 때에 어떤 모습으로 오시는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우리 하나님은 오실 때에, 조용조용 오시지 않고, 삼키는 불을 앞세우시고, 사방에서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시면서 오신다(시 50:3).”고 노래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도록, 나는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도록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오셨을 때, ‘나는 몰랐어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33편에서는 오시는 하나님을 영접하므로 하나님이 높여주실 사람들에 대해 노래합니다. 22절의 말씀에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시33:18)을 살아가는 이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때를 알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구원을 보여주시는 것(시50:23)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적은 무리와 재물(눅 12:32, 34)
왜 적은 무리일까요?
어느 시대나 정의, 올바른 삶을 살아감으로 시대의 빛이 된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적어도 어두운 세상이기에 ‘빛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빛나는 삶을 살아가려면, 그가 추구하는 바가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이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새 사람’이라는 메시지에서 ‘새 사람이란,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땅의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재물(보물)입니다. 34절의 말씀입니다.
“너희의 재물(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자기의 재산을 전부 없애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하늘의 곳간’도 죽은 후에야 비로소 소유하게 될 재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이미 하나님께 속한 창조의 영역이요, 주의 기도에서 시사하듯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뤄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세상의 재물을 구하기 위한 염려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가치를 따라 삶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일 것이므로, ‘다수결’의 세상에서 이들의 행동은 유별나게 보일 것이고, 어리석어 보일 것입니다. 다들, 재물을 모우기에 여념이 없는 세상에서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들, 재충전을 위해 산야로 향하거나, 스트레스를 푼다고 유흥을 즐기는 시간에 주일예배를 드리고, 거룩한 독서를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적은 무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늘의 상이 큽니다. 그리고 그 하늘은 사후의 세계,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 기쁨을 발견하시고, 지금이 그 때임을 아시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 깨어 기다려야 한다(35~40)
정말 중요한 일은 ‘생각하지도 않은 때(눅 12:40)’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일은 ‘준비되어 있은 이들에게만 기회’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의 시간이 그리 멀지 않음을 아셨고, 그 일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다가올 일이 어떤 일인지 잘 알지 못했고, 그래서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은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극단적인 비유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준비를 채 갖추기도 전에 일이 닥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이 말씀을 깨닫습니다. 뒤늦은 깨달음, 뒤늦은 후회가 어쩌면 그들을 기꺼이 순교자로 살아가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준비하고 깨어있어라
하지만, 이 일회적인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다시 재연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도 다시 재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받아들임으로 얻은 구원의 선물은 ‘단 일회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어도, 자기의 집과 형제와 친척들을 다 버리고 예수님만 따랐던 12제자조차도 지금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 앞에 깨어있지 못했고,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은 중요하지만, 머물러 있으면 잠자는 신앙과 다르지 않습니다. 거듭남이라는 것, 그것은 우리가 이 땅의 육신을 벗어버리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신앙이 깨어 있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압니다. 그것이 ‘준비하는 삶’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준비하고 깨어있으려면, 우리의 관심이, 우선순위가 세상의 재물이나 성공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붙잡으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있습니다. 겉사람은 늙어갈 수밖에 없지만, 속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 때인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우선순위로 정해놓고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여섯 가지를 제안하며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할 때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재물과 명예에 순종할 때가 아닙니다. 성경은 둘 다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지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사랑하다가 그들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상숭배하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시기 발합니다. 셋째, 지금은 위의 것을 추구해야할 때입니다. 땅에 속해 있지만, 땅에 것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성경은 위의 것으로 상징되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이들에게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넷째, 지금은 거듭나야할 때입니다.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신앙에는 ‘이 정도면 되었다.’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는 일은 이 땅의 삶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속사람을 새롭게 해야 할 때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연연하면 위선자가 됩니다. 속사람을 새롭게 할 때, 은밀한 것을 보고 갚아주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의 삶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여섯째, 이 모든 일을 할 때에 ‘적은 무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길은 좁은 길이요, 들어가는 문은 좁은 문입니다. 세상과 다르다, 구분된다는 것은 ‘거룩한 삶’과 연결됩니다. 오늘날,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고리타분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바른 길이므로, 진리의 길이므로 그 삶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지, 무엇을 준비해야할 때인지를 깊이 묵상하시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오직 ‘깨어서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주님,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서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땅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이 있음을 잊지 말게 하시고, 한남교회에 속한 가정들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