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8주(20220731)
새 사람
골로새서 3:1~11(누가복음 12:13~21,호세아 11:1~11,전도서 1:2, 12~14)
매미의 소리가 한껏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매미소리가 제법 듣기 좋았는데, 요즘 매미소리는 시끄럽다 못해 소음공해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소리를 내는 매미들은 수컷인데, 이런저런 도심의 소음 속에서 짝을 찾으려니 노래가 아니라 악을 써야하니 그들도 참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산책길에 하루 사이에 우화를 하려고 흙에서 막 올라온 매미유충을 두 마리나 만났습니다.
비밀의 정원에서 만난 한 마리는 개미들의 습격을 받은 지 오래된 듯하였고, 한강변 자전거도로를 가로질러 기어가는 다른 한 마리는 흙이 덜 마른 것으로 보아 방금 흙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의 일에 개입하는 것이 꺼려지긴 했지만, 둘 다 위태위태한지라 고민하다 자리를 옮겨주었습니다.
왜 제 마음이 약해졌냐하면, 내가 만난 우화를 앞둔 매미의 유층이 최소한 7년 흙속에 있다가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매미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 살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수컷은 짝짓기를 마치고 나면 죽고, 암컷은 나무줄기에 알을 낳고 죽습니다. 알이 유충이 되면, 흙으로 들어가 7년 동안 4차례의 변태를 거치고, 이제 마지막 단계로 흙에서 나와 나뭇가지나 이파리에 발톱을 단단히 박고 밤 새워 우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개미의 습격을 받아 죽거나, 자전거바퀴에 밟혀 죽는다면 너무 불쌍한 것 같아서 그들을 옮겨주었습니다. 그 다음은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었습니다.
마지막 우화를 앞둔 갈색 유충 속에서 꿈틀거리는 연록의 생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첫 번째 생각은 짧게는 일주일밖에 못 산다고 했는데, 나는 단 하루를 위하여 364일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는 지였습니다. 두 번째 생각은 알에서 매미가 되기까지 최소한 5번의 변태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태는 신앙의 용어로 치면 ‘거듭남’입니다. 나의 신앙은 어느 순간 화석화 되어 더는 거듭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는 매미는 흙 속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지만, 늘 하늘을 꿈꾸며 살았고, 짧은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하늘을 나는 삶을 택했습니다. 나는 늘 위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늘 땅의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최선을 다해 아우성치는 수컷 매미의 소리는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은데 암컷은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여 수컷을 선택합니다.는 암컷의 선별력을 통해서 나는 목사로서 시대의 징조를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고 있는지, 수컷을 통하여서는 깨달은 바를 최선을 다해 외치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았습니다.
자연 앞에 서서 그들을 묵상하다보면 수없이 많은 생각들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휴가철입니다. ‘소비하는 휴가’ 보다는 자연의 곁에서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며 쉼이 있는 휴가를 지내시길 바랍니다.
■ 성령강림 후 제8주 성서일과

오늘은 7월 마지막 날입니다.
먼저 구약 성서일과 호세아서 11장 1~11절에서는 ‘땅의 것만을 추구하며 망하는 길로 달려가는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고발합니다. 시가서 성서일과 전도서 1장 2절과 12~14절의 말씀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 말씀하시며, 지혜로운 자나 우둔한 자나 결국에는 다 죽는데 우리의 인생이 헛된 것만 구하는 삶’에 치중되어 있음을 경고합니다. 시편 49편의 말씀에서는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돈 많은 것을 자랑하는 이들이라도 생명을 얻을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서 누가복음 12장 13~21절의 말씀은 창고에 먹을 것을 넉넉히 쌓아두고 “이젠 마음껏 즐기자!” 했는데, 그날 밤에 죽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 재물을 쌓기만 하는 일의 허망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읽은 서신서의 말씀은 ‘땅의 것과 위의 것’을 구분하여 말씀하시면서, 위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지혜로운 이들이요, 새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 성서일과의 주제는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땅의 것’을 다 놓고 가야할 순간이 있다는 것이요, 그러므로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새 사람’이라고 하시며 “새 사람을 입으라!” 권면하는 것입니다.
서신서의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골로새서의 말씀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새 생활’이라는 주제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떠났어야 하는데, 여전히 세상에 얽매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땅의 것과 위의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알려줍니다.
사도 바울은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합니다.
음행, 더러움, 정욕, 악한 욕망, 탐욕을 예로 들면서 이런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상숭배를 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게 되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 등 부끄러운 말들을 하고, 서로 거짓말을 합니다. 이런 행위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옛 사람일 때 하던 일들입니다. 그런데,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상숭배’라고 하면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나 아니면, 무슨 불상이나 혹은 사이비 이단 등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탐욕, 즉 이 땅의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 언젠가는 모든 것을 다 놓고 가야할 때가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사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이 땅의 성공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둔감한 것,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이 먹고 마시고 입을 것만을 구하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땅의 것, 재물, 성공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끝나는 물리적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크로노스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카이로스, 영원의 시간이 옵니다. 그 시간을 인식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땅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새 사람’을 소개합니다. 새 사람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인데, 땅에 속한 것들을 버리고,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된다는 것(10)입니다.
새 사람이 되려면 먼저 땅의 것을 버려야 합니다.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부끄러운 말을 버리고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면 이렇게 됩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라는 말씀입니다. ‘끊임없이’는 일회적 깨달음이 아니라 지속적인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매미의 유충이 4번의 탈피와 1번의 우화를 거쳐 매미가 되듯, 우리도 일회의 거듭남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야’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참 지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참 지식에 이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11절 하반절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옛 사람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새 사람이 되었음을 자각하고 새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참 지식에 이른 사람의 삶입니다.

여러분,
‘땅의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 놓고 가야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유한성’을 자각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깊은 성찰을 가져올 것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이 ‘유한성’을 유일하게 인식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은 그만큼 소중해 집니다. 어리석은 사람도 참 지혜에 이른 사람도 다 죽습니다. 그러나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과정’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을 우리는 ‘영생’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서 17장 3절에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 지식’에 이른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것이고, 그리하여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코로노스라는 유한의 시간, 혼돈의 시간을 벗어버리고 카이로스라는 영원한 시간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매미유충의 변태가 1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4회를 거치고, 우화를 거쳐야 비로소 하늘을 나는 매미가 되듯, 우리의 거듭남, 새 사람됨은 단 1회의 사건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잘 지키는 일(딤후 4:7)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으로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온갖 욕망과 탐욕이라는 우상숭배를 멈추고, ‘하늘에 속한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그분과 우리가 한 몸임을 알게 될 것이고, 영원한 나라에서 그와 함께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으시고, 이런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우리를 꾸짖어 주시고, 위의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새 사람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지혜의 영이 임하셔서 깨달음의 지혜를 주시고, 깨달은 바대로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새 사람을 입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뤄 복된 삶을 살아가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