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성령강림후 제7주] 기도

  • 관리자
  • 2022-07-24 11:00:00
  • hit1951
  • 222.232.74.74

성령강림 후 7주(20220724)
기도
누가복음 11:1~13(호세아 1:2~10,골로새서 2:6~15, 시편 138)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이번 주에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관한 성서일과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기도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지난주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러므로 지난주와 이번 주는 말씀과 기도라는 신앙의 양대 산맥을 다루는 것입니다.
 

■ 말씀과 기도, 기독교의 중심


 

‘말씀과 기도’는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건물의 중심, 신전의 중심, 우주의 중심을 ‘타조의 깃털’로 표시한다고 합니다. 타조가 가장 큰 새라고 해도 깃털은 가볍습니다. 그런데, 이 깃털만큼의 작은 무게가 저울을 어느 한 쪽으로 기울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조의 깃털을 마아트(Maat)라고 하는데, 고대이집트어로는 ‘삼라만상이 마땅히 그래야할 원칙’ 즉, ‘만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저울질 하여 타조의 깃털만큼도 기울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신앙은 삶으로 살아질 것이요, 그래야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산 믿음이 될 것입니다.
 




마아트는 동양의 ‘중용(中庸)’에 이에 해당합니다.
중용을 잘못 이해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양다리 걸치기’정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중용의 참되 의미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신 5:32)’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가 중심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말씀과 기도의 적절한 균형을 통해서 ‘자신에게 맡겨진 고유한 달란트를 찾을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곳에서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이 말씀과 기도의 중심에 바로 서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누가복음서 17장 6절에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도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십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크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면, 겨자씨만한 믿음만으로도 기적의 삶을 살 수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면, 제 아무리 큰 믿음을 가졌다고 자부해도 소용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린 이유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주시는 메시지가 ‘기도’에도 적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 기도, 하나님을 향한 창(窓)


달을 보고 싶다면 그 달을 내다보는 창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창의 방향입니다. 벽에 나 있는 작은 틈이라고 하더라도 달이 그쪽 방향에 있다면, 그 작은 틈으로도 달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큰 창이라고 하더라도 달과 방향이 다르면 달을 볼 수 없습니다. <소로우의 일기>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갈라진 틈이나 옹이구멍을 통해 보더라도 세계의 아름다움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이런 것입니다. 참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라면, 제 아무리 겨자씨만한 기도라고 할지라도 큰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거창한 기도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있지 않으면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될 것이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할 때에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눅 11:2)”로 기도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창(窓)입니다. 그 창은 작아도, 창이 아니라 작은 틈이라도 달을 볼 수 있듯이, 겨자씨만한 작은 기도라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특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 기도, 경건한 삶의 토대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8절에서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삶은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식이요, 경건한 삶은 오늘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게 합니다. 경건한 척하는 위선자들로 인해 ‘경건의 빛’을 바랜 시대를 살아가지만, ‘경건 훈련’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훈련입니다.


경건 훈련의 토대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한적한 곳을 찾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말씀도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신 후’에 전해주신 말씀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힘들 때면 하나님께 기도했고, 자신의 뜻이 마음에서 솟구쳐 오를 때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조율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한 것은 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기석 목사는 ‘기도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무뎌진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숫돌에 벼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 기도, 날마다 하는 것


우리의 기도가 천박해진 이유는 ‘개인의 청원기도’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기도의 순서를 알려주셨습니다. 먼저, 아버지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의 나라가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어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첫 번째, 두 번째는 건너뛰고 세 번째 것만 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물론, ‘개인 청원기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기도가 중요하듯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기를, 그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문의 ‘날마다’입니다. 



어릴 적 토끼나 소에게 줄 꼴을 베러 갈 때면 아버님이 숫돌에 낫을 갈아주셨습니다. 그렇게 잘 벼려진 낫을 들고 풀을 베면 꼴망태를 금방 채웁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벼린 낫도 다음 날 꼴을 베러 갈 때에는 또다시 숫돌에 벼려야 합니다. 너무 잘 드는 낫 덕분에 제 손가락에는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습니다만, 이렇게 낫도 사용할 때마다 숫돌에 벼리듯, 기도도 매일매일 벼려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의 말씀,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하는 권면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무뎌진 우리의 영혼을 벼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꼴을 베기 전에 낫을 가는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드리시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 기도, 구체적인 삶


우리는 ‘입술’로 드리는 기도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입술로 드리는 기도는 기도의 서론입니다. 소설가가 매일매일 서론만 쓴다면,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론이 있으면, 본론이 있고, 결론이 있어야 한 권의 책이 완성됩니다. 서론이 입술로 드리는 기도라면, 본론은 삶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결론은 입술의 기도와 삶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며 주신 기도의 열매입니다.


4절의 말씀에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의 죄를 사해달라는 요청 앞에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행동이 전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서 ‘입술로 기도드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온전한 기도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가 건강하다면, 기도한 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기도의 연장선입니다.
 

■ 기도, 간청하는 것


기도의 내용은 절실한 것입니다. 절실하지 않은 것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절실한 것이기에 이뤄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간절히 청함’이라는 뜻을 가진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환대법이 있었습니다. 잘 아는 벗은 물론이고, 일면식 없는 나그네라고 할지라도 환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벗에게 떡 세 덩이를 구하는 친구’이야기는 기도할 때 무례하게, 막무가내로 해도 이뤄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떡을 간청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환대법’에 따라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떡을 구하는 친구가 간청하지 않았다면 떡이 있는 친구가 그것을 알지 못했으므로 떡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간청하면 이미 응답할 준비가 되어있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줄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도 ‘간청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간청하지 않는 사람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냥 주시지 않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을 소소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그보다 더 작은 일이라도 벗에게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주시오’하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아뢰십시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 기도의 결과 - 성령


하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것은 궁극적으로 ‘성령’이라고 하십니다(눅 11:13). 그러므로 성령의 힘을 얻고자 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성서일과 시가서의 말씀입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시 138:3).”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이들에게 성령이 임할 것이며,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있으면, 우리가 아뢰는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라면, 겨자씨처럼 작은 기도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기도로 매일매일 경건 훈련을 하시고, 삶 속에서 기도한 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서론에서만 맴도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시는 결과로 이어지는 기도를 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것이게 하옵소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 우리가 간청할 때에 크게 응답해 주시고, 우리의 삶이 말씀과 기도에 뿌리를 내려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pt설교를 들으시려면 이곳을 누르시고 확인을 누르십시오.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