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후 6주(20220717)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사람
시편 15:1~5(암 8:1~12, 골1:15~28, 눅 10:38~4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6주이며,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제헌 헌법 이 제정, 공포된 것을 71번째로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령의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축복해 주셔서, 법 위에 군림하거나 악용하는 자가 없는 정의로운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타락한 이후 에덴의 동쪽에 살아가는 이들은 제 스스로 바른 길을 찾아가는 법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의 멍에를 매고 살아가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최소한의 ‘법’을 주시며, 법도를 잘 지키는 이들에게는 복을, 법도를 우습게 여기는 자들에게는 징벌을 내리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법이 옥죄는 법이요, 권력자들을 위한 법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법은 해방하는 법이요, 약한 자들을 위한 법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법, 해방의 법은 ‘성경’에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께서 주신 법입니다. 이 법을 잘 지키셔서 하나님의 은총 안에 거하시는 여러분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마다 익숙하게 사용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단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마다 남들도 다 알고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저도 설교시간에 여러분이 당연히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그 중 하나가 ‘성서일과’라는 단어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성서일과’로 설교를 준비하고 묵상을 했으니 아주 익숙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일반 신자들이나 초신자에게는 아주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헌법에 나와 있는 조문들이 일반 사람들이 볼 때에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씀을 나누기 전에 ‘성서일과’가 무엇인지 설명을 하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서일과란 기독교에서 교회력에 따라 배치한 예전 성경말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교회력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대림절, 예수님이 오신 것을 축하하는 성탄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신 것을 기리는 주현절,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다시 사신 것을 기념하는 부활절, 부활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을 기리는 성령강림절,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묵상하는 창조절 등의 절기입니다.
성서일과는 이 절기에 따라 배치된 성경말씀입니다. 1년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가해, 나해, 다해, 3년 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 전부터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에는 각자의 성경 일독을 지침으로 하는 독서집이 있었고, 그것을 묵상하는 것을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라고 합니다. 근래로 오면서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는 각각의 교회절기에 맞춘 성서일과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교회일치운동’의 일환으로 모든 교회가 사용하는 성서일과를 마련하자는 의견에 따라 현재의 성서일과를 사용하고 있고, 현재 한국교회는 ‘개정판공동성서정과’를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서일과의 가장 큰 유익은 나를 찾아오시는 말씀을 만나는데 있습니다.
한희철 목사는 <여기에 물이 있다>는 책에서 '아무 말씀이나 읽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선택하여 읽는 것이 아니고, 나를 찾아오시는 말씀을 만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서일과에 따라 말씀을 준비합니다. 제가본문을 선택하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번 주일에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너무 적합한 말씀이라 신비스럽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대한민국 대다수의 개신교 교회들은 성서일과를 사용하지 않고 목사 임의로 성서본문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원고도 없이 즉흥적으로 설교를 한다는 것이지요. 개신교회에서 성서일과에 따라 말씀을 준비하는 비율을 공식적으로 조사한 바는 없지만, 제 주변의 경우를 통해 유추해 보면 20% 정도가 ‘성서일과’로 말씀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비율이 40% 정도만 되어도 한국교회 강단의 설교가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일과는 구약, 시가서, 서신서, 복음서 4가지 본문이 제시됩니다. 4가지 본문의 공통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구약성경 아모스 8장 4~13절의 말씀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예언자 아모스가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빈궁한 사람들을 짓밟고, 가짜 저울로 속여팔고, 신 한 켤레 값으로 가난한 사람을 사고팔고, 먹지도 못할 밀 찌꺼기까지 팔아먹습니다. 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반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고 멸하시겠다고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시고, 이 말씀은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가 북왕국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면서 현실이 됩니다. 그날에 그들은 통곡하고 회개하겠지만, 하나님은 그 땅에 기근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11절의 말씀을 축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내리겠다. 그것은 밥이 없어서, 물이 없어서 겪는 기근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배고파 할 것이다.”
그러니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세상, 말씀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갈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시편 15편의 다윗의 시로 ‘누가 예배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이 달린 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은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로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존경하는 사람, 맹세한 것은 손해가 되더라도 지키는 사람, 높은 이자를 받지 않는 사람,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이들의 삶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하여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골 1:11)로 세워지는 것은, 들은 바 복음, 즉 말씀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을 때(골 1:12)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 말씀을 성도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골 1:24) 일 조차도 마다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골 1:25) 최선을 다했다고 고백합니다. 성서일과 서신서 골로새서의 말씀의 주제 역시도 ‘말씀’의 중요성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마르다와 마리아’이야기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영접한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 주면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있던 마리아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해석이 많이 필요한 본문이지만, 다른 성서 일과의 주제와 연결을 하면 ‘말씀을 잘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본문으로 복음서의 본문이 선택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어진 성서일과를 봉독하는 것을 ‘거룩한 독서’라고 하는데 교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한국 루터교회에서는 목사가 구약, 시편, 서신서, 복음서를 모두 읽습니다. 천주교회와 성공회에서는 구약, 시편, 서신서는 평신도 전례봉사자가 읽습니다. 그리고 복음서는 사제와 부제가 읽을 수 있습니다. 개신교회에서는 통일된 전례가 없어 주어진 성서일과를 모두 읽는 경우도 있고, 성서일과 중에서 한 본문을 택하여 읽기도 합니다. 복음서를 제외한 성서일과는 예배봉사자가 읽기도 하고, 복음서는 목사가 읽되 복음서를 읽을 때에는 예배참석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말씀을 받습니다. 저희 교회는 시가서의 말씀은 모임예전 ‘예배의 부름’에 인용하고, 본문으로 선택되지 않은 성서일과는 ‘고백기도’와 ‘보냄의 말씀’에 인용합니다. 그리고 성서일과 중 한 본문만 선택해서 예배봉사자가 봉독합니다.
한남교회 예배는 일반적인 개신교회보다 예식적인 측면을 강조한 편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예배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것들을 배제하지 않고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일예배는 엄숙하게 거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예배이므로 시간을 지켜 드리는 것도 중요하고, 설교도 정제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성서일과의 융합

이번 주 성서일과의 공통 주제는 ‘말씀’이라고 정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의 율례를 따라 살아가면 시편의 노래처럼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아가면 북왕국 이스라엘처럼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때에는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것을 비로소 자각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리고 목말라하겠지만, 그 말씀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첫째,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가다가 멸망의 날이 와서 다 망한 뒤에 후회하는 어리석은 이스라엘이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삶의 우선순위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몇 순위입니까? 주일이 아닌 평일,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묵상하고 귀를 기울이십니까?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면 병에 걸린 것이라고 합니다. 혹시,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관심 없이 살아가는 데도 아무런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영혼이 병든 것입니다. 병든 영혼을 고치셔야 합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골방에서서 하루에 한 장씩이라도 성경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저는 요즘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면 다음날 새벽예배 설교준비를 한 후에 ‘성서일과와 묵상노트’를 가지고 묵상합니다.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질문하고, 기도로 하루를 여는 일을 한다고 해서 우리 하루가 짧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거룩한 시간을 통해서 헛되이 낭비되거나 소비될 시간이 사라지고, 순간순간을 기쁘게 살아갈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런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둘째, 축복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5편의 말씀을 돌이켜 보십시오.
주님의 장막, 그의 거룩한 산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간다고 합니까?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흔들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 흔들림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면 안됩니다. 너무 쉽게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인생이다’이야기 하면 안 됩니다. 흔들리는 사람은 이러다 삶의 지향점을 놓치는 것이 아닌지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의 말씀이 축복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주시겠다는 말씀, 이것이 광풍 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의 말씀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살 길’이 열립니다. 시인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려면 이렇게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로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존경하는 사람, 맹세한 것은 손해가 되더라도 지키는 사람, 높은 이자를 받지 않는 사람,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을 붙잡으십시오. 그 삶으로 인도하는 말씀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 선물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거둠 기도]
주님,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어,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