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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감사주일]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 관리자
  • 2022-07-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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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4주/ 맥추감사주일(20220703)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열왕기하 5:1~14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한 해의 절반을 감사하고, 남은 절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결단하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절의 기원은 출애굽기 23장 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집트에서 430년의 노예생활 끝에 출애굽 한 후에 광야에서 40년을 떠돌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가장 소출을 빨리 얻을 수 있는 보리를 심었고, 그들은 마침내 땀 흘려 씨를 뿌리고 수고한 만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470년 만에 경사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정착을 하면 농사를 짓게 될 것이고, 소출을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보리농사를 짓게 될 것을 예견했기에 이런 명령을 한 것입니다.
 

■ 생각해 보니 감사합니다


‘감사’라는 단어는 ‘느끼다, 감동하다, 흔들리다’라는 뜻입니다. 뭔가 마음을 치면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가 되고, 그 상태의 느낌이 아주 좋을 때 ‘thank’라고 화답을 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리고 이 ‘thank’라는 단어의 어원은 ‘think’입니다. ‘생각하다’라는 뜻이지요. 그러니 감사는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은데, 어떤 일이라도 생각해 보면 감사하지 않을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심지어는 고난의 때조차도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감사’한 것이지요.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고난과의 싸움에서 진 사람은 그 고난에 대해 감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에 감사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의 삶을 깊이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해 보면, 감사하지 않은 일이 없으므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감사의 씨앗입니다. 매일매일, 모든 일에 감사의 씨앗을 심으시고 열매맺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아만이 고침을 받다(왕하 5:1~14)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이며, 한남교회는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성서일과의 말씀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보겠습니다.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할 때의 일입니다. 오늘 있었던 일은 기원전 850년경에 있었던 일인데 당시 이스라엘 왕은 여호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들의 침입을 많이 받아서 국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시리아(암몬)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시리아가 이스라엘보다 힘이 셌습니다.

시리아에는 나아만이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시리아 왕이 아끼는 아주 용감한 장군이었는데 그만 악성피부질환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고생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이스라엘에 쳐들어갔다가 노예로 잡아온 어린 소녀가 나아만의 집에서 장군의 아내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엘리사라는 예언자가 있는데, 그분을 만나면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하는 겁니다. 귀가 솔깃해진 나아만은 왕에게 이 소녀가 한 말을 전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을 총애했던 왕은 많은 돈과 선물과 편지를 나아만 장군에게 주면서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하게 요약하면  “나의 신하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시오!”였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 왕은 낙담해서 자기 옷을 찢으며 한탄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고칠 수도 없는 병인데, 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만들기 위해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시리아보다 힘이라도 세면 무시할 텐데, 힘이 약하니 전쟁이라도 나면 나라를 지키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 소식을 엘리사가 듣고 사람을 보내서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그 사람을 내게 보내주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군사들과 함께 엘리사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오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서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세요, 그러면 병이 나을 것입니다.”하는 말만 전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왜냐하면, 시리아 왕의 총애를 받는 장군이 왔는데 버선발로 뛰어나오기는커녕 사환에게 말을 전하고, 자기 상처를 보지도 않을뿐더러 기도해 주지도 않고, 자기 나라에 있는 강물보다 맑지도 않은 요단 강물에서 씻으라니 화가 단단히 난 것입니다. 아마, 이대로 돌아간다면, 괘씸죄로 전쟁이 날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떠나는 중에 부하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직접 나와서 안수해 주고, 병을 고쳐주겠다면서 무슨 일을 하라고 했으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 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씻으면 몸이 낫는다는데 그거면 다 된 것 아닙니까?”

그러자 나아만 장군은 예언자 엘리사가 시킨 대로 요단 강으로 가서 그의 몸을 일곱 번 씻었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답니다.
 

■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어린이 여러분, 재미있었나요?
나아만 장군은 이방인이었지만, 이 일이 있을 후로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잘 믿었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성서에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아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도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옛날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다’고 선언하신 사건입니다.

둘째로, 나아만 장군의 태도를 눈여겨보십시오. 왕의 총애를 받는 장군인데도 교만하지 않고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압니다. 3절에 보면 ‘어린 소녀의 말’을 경청하고, 그의 말을 왕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면 ‘부하들의 말’을 경청하여, 엘리사가 전한 말대로 요단 강에서 몸을 씻습니다. 어린 소녀의 말에 경청하여 치료의 길이 열렸다면, 부하들의 말을 경청하여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말만 하지 마시고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성숙한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내 말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자기 말만 앵무새처럼 떠드는 세상이지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성숙한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 되길 바랍니다.
 

■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은 여기서 따왔습니다. 이 말은 나아만 장군이 화가 나서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에 부하들이 나아만 장군에게 한 말입니다. ‘그것쯤’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까이거’입니다. 해도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이고, 설령 해서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별로 손해될 일도 없는 일이기도 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쯤’이 가지고 있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것쯤’이 기적의 시작이었습니다. 부하들이 나아만에게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단강에 다만 몸은 씻는 일이 ‘그것 쯤’에 해당하는 말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죄의 세계에서 벗어나 덕을 실천하려는 사람은 단번에 그리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새벽도 어둠을 조금씩 흩어 버리며 밝아 오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 어둠이 흩어지다가 아침이 밝아오는 것처럼, 우리가 ‘그것쯤’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인해 아침이 밝아오기도 하고, 어둠이 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적인 삶에서 ‘그것쯤’, 누구나 할 수 있고, 해도 그만이고 한 애도 그만인 것 같은 ‘그까이거’하고 넘겨버릴 수도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된 삶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임마누엘로 우리의 모든 삶을 인도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삶을 인도해주시는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하셨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다만 몸이나 씻으라시는 데와 같은 그것 쯤’입니다.





다만 예배만 드리시라는데, 다만, 기도만 하시라는데, 다만, 봉사만 하시라는데, 다만, 사랑만 하시라는데, 다만, 감사만 하시라는데....그것쯤을 안 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복된 삶을 발로 차버리는 것은 아닙니까?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배 드리라는 그것쯤, 기도하시라는 그것쯤, 봉사하라는 그것쯤, 사랑하라는 그것쯤, 감사하라는 그것쯤....이렇게 그것쯤에 해당하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일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어둠을 조금씩 흩어버리고 새벽을 맞이하는 이들이라면,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은 밝음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어둠을 맞이하는 이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시라고 명하시는 일이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만, 대체로 누구나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주십니다. ‘그것쯤은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주신단 말입니다. 그 일들을 피하지 마십시오. 그 일을 피한다고 해서 당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일을 피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적적인 삶’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많은 분들이 죽은 다음에나 심판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하나님의 심판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쯤이야’하면서 무관심하게 넘기는 일들로 인해 ‘기적과 담을 쌓고 사는 것’이 이미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느새 2022년의 절반의 시간이 갔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절반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남은 절반의 시간동안에 그동안 여러분들이 ‘그것쯤’이라고 소홀히 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의 삶이 기적과도 같은 삶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아멘.
 

[거둠 기도]


한 해의 절반을 지켜주신 하나님,
우리에게 절반의 시간을 또한 허락하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맥추감사주일에 감사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작은 일에도 충성하게 하시고, 정작 중요한 일임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가던 ‘그것쯤이야’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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