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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3주/6.25민족 화해주일]성령을 따라 행하라

  • 관리자
  • 2022-06-2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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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3주/ 6.25민족화해주일(20220626)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라디아서 5:1, 13~25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오늘은 성령강림후 세 번째 주일과 6.25민족화해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교단에서 제정한 6.25민족화해주일은 지난주였지만,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과 가까운 주일에 민족화해주일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이번 주에 드리게 되었습니다. 
 

■ 전쟁의 참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4개월이 지났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전체 인구가 4,400만 명인데 전쟁 4개월 만에 인구 절반이 사망과 부상과 난민으로 흩어졌으며, 전쟁의 여파로 지구촌 전체가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3년 동안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이재민, 납치된 분들, 전쟁고아, 이산가족 등 엄청난 희생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로, 지난 72년간 한반도는 분단된 상태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남한의 경우 반공이데올로기가 북한은 주체사상이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남북의 권력자들은 분단 상활을 자기들의 배를 불리는 일에 이용했고, 외세는 우리의 분단을 빌미로 무기를 팔아 자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취했습니다. 분단으로 인한 아픔과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 요원한 ‘평화통일’


잠시였지만, 금강산 관광도 시작되고 개성공단 등 남북한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평화통일의 꿈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저도 이때 교단과 관련된 일로 금강산과 개성을 다녀왔고, 조선그리스도연맹 관련자들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북한을 다녀온 뒤로 ‘평화통일’은 참으로 요원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북이 생각하는 통일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도저히 합의될 수 없는 지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적화통일을 남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북한은 흡수통일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념을 빼고 나면 한민족인데, 이념이 개입되는 순간 원수가 되는 현실과 통일비용, 문화적인 이질감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통일보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해 주면서 평화로운 교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렇게 동서독처럼 자유로이 오가는 세월이 분단의 세월보다 10배 정도의 시간이 쌓이면 겨우 통일의 물꼬가 트일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소박한 꿈마저도 접어야만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꿈은 고사하고 전쟁이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제가 꿈꾸는 나라는 미가서 4장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세계 6위의 전투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선제타격론을 꺼내 들었고, 북한은 핵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무기와 군대로만 따지면 남과 북의 싸움은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북한이 종잇장에 그려진 호랑이나 사자이길 바라지만, 그건 바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아시아를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을 전략기지로 삼으려 하고, 한국을 자신들의 무기수입 국가 1위로 삼으려고 합니다. 물론, 중국은 이것을 막으려고 북한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것입니다.

만일, 다시 한 번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면 순식간에 승자도 패자도 없이 남과 북이 함께 공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남북한 모두 강대국들의 이권이 개입되면서 전쟁준비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군사력을 강화해야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힘이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며, 북한을 위협해 핵무기를 개발하게 하고, 그것을 빌미로 남한에는 무기수입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무력증강은 함께 파멸의 길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남북한, 한민족이 생존하려면 남과 북이 외세의 개입 없이 주체적으로 평화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지금 당장 평화통일이 요원하다고 할지라도 화해하고 함께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 분단의 시대에 교회가 할 일


교회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전쟁을 연습하는 나라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게 해 주옵소서. 북한의 핵을 녹여주시고, 북한이 핵개발의 빌미로 삼고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녹여주십시오.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꽃을 피우게 해주십시오. 증오가 아니라 서로서로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화해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전쟁을 연습하는 나라가 아니라 평화를 연습하는 나라가 되게 해주십시오. 막힌 담을 허무는 교회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성서일과(갈 5:1, 13~25)


오늘의 성서일과 갈라디아서에는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자유인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자유인으로 살아갈 구체적인 지침을 두 가지로 요약해서 전합니다. 자유를 위해 부름을 받았으니 ‘사랑으로 서로 섬기고(13) -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성령을 따라 행하라(16)’고 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6.25민족 화해주일을 지키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평화의 길로 나아갈까에 대한 지혜가 들어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일과 육체의 일을 구분하여 세세하게 알려주면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개인 삶의 변화만 주시지 않습니다. 변화된 사람이 발 딛고 살아가는 모든 곳을 변화시키십니다. 성령의 사람은 개인의 변화뿐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의 변화, 가족의 변화, 지역사회의 변화, 교회의 변화, 직장의 변화, 나라의 변화 등 모든 곳에 긍정적인 변화를 끼칩니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평화의 열매도 맺을 것이요, 분단되어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이 나라를 평화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데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13)


‘섬김의 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온 것입니다(1). 죄의 종으로 살아갈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는 이제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 이웃을 사랑하는 데로 나아갑니다(14). 이웃을 사랑할 때에는 자신을 사랑하듯이 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깊은 뜻은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나르시시즘’으로 빠져드는 것과는 다릅니다. 나르시시즘은 병적인 상태로 타인과의 관계성을 부정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 사랑은 늘 ‘관계성’ 속에 있습니다.

율법을 완성시키러 오신 주님께서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율법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지 않고, 비방하고 미워하면 어떻게 될까요? 갈라디아서 5장 15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여러분, 지난 72년 간 남북한은 서로 물고 먹기 위해서 비방하고 미워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니 ‘멸망할까 조심해야하는 시대’를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의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기도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 물어뜯고 할퀴면, 얼마 못가서 파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라가 무너지면, 우리 삶의 기초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우리 삶의 기초를 위해서라도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남북한이 될 수 있길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 섬기는 자유를 행사하십시오


‘육체의 일’은 물고 먹는 일이요, 멸망의 길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이런 것들이 육체의 일이라고 합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기, 분열,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이 육체의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뿐 아니라(21), 멸망할까 조심해야(15)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방탕한 삶’을 위한 구실로 삼았습니다. “나는 자유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육체의 일로 열거한 것들 중에서 우리 사회에서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안타깝게도 육체의 일이 차고도 넘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자유는 방탕한 삶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섬기는 자유’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은 권세 있는 자들을 섬기라고 하지만, 힘없는 자를 섬기는 자유, 그것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자유입니다. 섬기는 자유를 행사할 때, 자유는 점점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자유입니다. 그래서 금할 법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인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아직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산다는 증거는 성령으로 행하는 것(25)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다시 묵상해 보십시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이런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과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사람,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성령의 열매들을 맺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도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신앙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선택한 삶,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입니다. 이 삶은 그저 머릿속에서만 빙빙 도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구석구석에서 힘써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면, 저마다 받은 달란트가 한껏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의 열매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살아가지 않음으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 벽을 허무는 사람이 되십시오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벽을 허무는 사람입니다. 육체의 일을 무너뜨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막힌 담’을 허는 평화입니다. 사용자와 노동자, 권력자들과 국민, 부자와 가난한 자, 남과 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한 참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가정에도 부부간에 자녀와 부모 간에 벽이 생기면 평화가 없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대화를 통해서 벽을 허물어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벽을 허무는 사람이 있고, 벽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는 벽을 허무는 사명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막힌 담을 헐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더는 이념으로 당 짓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남북 간에 막힌 담이 무너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어디서나 벽을 허무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어디서나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의 말씀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성령을 따라 행하셔서 이런 복을 누리신은 여러분 되길, 이 나라가 평화의 나라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막힌 담을 허무시고 평화로 오신 주님, 분단 된 채 70년 이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주님의 교회를 통하여, 성령의 사람을 통하여 이 나라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저마다 육체의 일을 따라 살아가느라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합니다. 주님, 성령을 따라 살게 하셔서, 육체의 일을 버리고 우리의 삶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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