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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7주/승천주일]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

  • 관리자
  • 2022-05-2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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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7주(20220529)/승천주일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12~14,16~17, 20-21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오늘은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이며 승천주일입니다.
승천주일(라틴어: In Ascensione Domini)은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후 이 땅에서 40일을 머무신 후,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음을 기리는 주일입니다. 전통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승천일을 부활 후 40일째 되는 목요일에 지내지만, 그리스도교회에서는 목요일이 아닌 주일에 예수님의 승천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승천(昇天)은 ‘하늘로 올라감’이라는 뜻입니다.

승천주일에 함께 읽은 성서일과는 승천하시면서 “속히 오시겠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 응답하는 고백이 담긴 요한계시록의 말씀입니다.

먼저 승천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본래 동양의 사고방식은 일원론입니다.
장자의 <제물론편>에 ‘호접지몽’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옵니다. 장자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깨어나서는 자기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호랑나비가 꿈에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한 이야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하늘과 땅, 삶과 죽음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고, 성과 속의 일치를 이루기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속세에 살지만, 하늘에서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 힘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서양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늘과 땅, 흑과 백, 남성과 여성, 성과 속,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고 둘 중 하나는 지고의 선으로, 다른 하나는 악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신앙생활에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생활과 일상적인 삶, 즉 성의 삶과 속의 삶이 다르다면 우리의 신앙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과 속의 일치를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요,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이 ‘내가 나비인지 꽃인지 모를 호접지몽의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 성(聖)과 속(俗)은 하나다


속의 세상에서 성의 세상으로 승천하시는 예수님은 예수님의 승천을 지켜보는 제자들을 성의 세계로 데리고 가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축복해 주시며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시며 속의 세계로 보내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과 속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뤄지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과 속은 서로 다른 세계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속의 세상인 이곳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속의 세계에 산다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오히려 지금 여기, 즉 속의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다시 오실 주님이 주시는 상의 기준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5).”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12)


승천하시는 주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각 사람에게 주실 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속히 오시겠다.’는 말씀은 7절과 20절에도 반복됩니다. 이렇게 반복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을 증거하며 고난과 핍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제국이 황제숭배를 강요하면서 초대교회를 박해하던 시기요, 정신분열 증세가 있었던 난폭한 도미티아누스 통치 후반인 95년 경에 밧모 섬에서 요한에 의해 쓰인 서신입니다.

로마제국의 황제숭배와 박해를 비판하면서 핍박당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끝까지 견디라고 독려하기 위해 쓰인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런데 직설적으로 표현했다가는 서신을 쓴 사람이나 읽은 독자나 로마제국의 검열에 낭패를 당하겠지요. 그래서 상징적인 언어들을 사용했고, 그 상징적인 언어들은 물고기문양처럼 그 당시 초대교회 교인들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상징적인 언어가 가득한 요한계시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면 요한의 편지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단사설에 빠진 이들은 계시록을 문자 그대로 읽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단에 빠지면 정신세계가 건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엄청난 박해 속에서 고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주님은 “곧 오겠다, 속히 오겠다, 내가 곧 가겠다.”고 거듭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상을 가지고 가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다.” 이에 대해 초대교회 교인들은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 응답했던 것입니다.
 

■ 상이 내게 있어...갚아 주리라(12)


이 부분은 다양하게 해석이 됩니다.
‘내가 줄 상급을 내가 가지고 있어, 상벌이 내게 있으니, 내가 임금대장을 가지고 있어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예수님이입니다. 행위에 근거하여 심판하는 것은 신구약의 일관된 사상이며 성서에도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여 심판하러 오실 것이요, 예수님도 재림하셔서 악한 자와 선한 자를 구분할 것입니다.

구원, 즉 상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믿음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행위의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의하면,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는 말씀은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즉 예수님을 흉내 내는 사람들입니다. 흉내를 내다가 닮아가는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예수님’앞에 섰을 때, 우리는 어떤 행위로 상급을 받겠습니까?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고난의 길이요, 핍박 가운데로 걸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행위를 예수님은 의로운 행위라고 보신 것이요, 상급을 받을 만한 행위하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어떤 행위가 예수님의 임금대장에 기록이 될까요?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가 예수님의 임금대장에 상급이 되어 갚아주시는 것이 되길 바랍니다.
 

■ 알파와 오메가(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다(13).”

각 사람에게 행위에 따라 상급을 주실 분이 누구인지에 대해 밝히는 구절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라는 칭호는 원래 하나님께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이 칭호가 사용된다는 것은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자이신 예수님이 성부이신 하나님과 하나이며, 성령이신 하나님이 성부, 성자이신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라고 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좀 더 쉽게 풀어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속성은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하나의 통일성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을 ‘성령 하나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은 성부 하나님,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은 성자 하나님,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은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라고 구분하지만,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을 떠올립니다.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움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자연의 현상을 보면서 처음도 중요하지만, 마지막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특히, 인생의 3막을 살아가시는 분들은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받을 날이 멀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힘써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자기의 겉옷을 빠는 사람들(14)


‘겉옷을 빠는 사람들’은 ‘그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들’로 의로운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자기 죄를 씻어 속죄함을 받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에서 ‘빠는’은 헬라어로 ‘πλύνοντες(프리논테스)’라는 현재형을 사용하여 지속적인 행위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자가 되었다는 것, 예수님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았다는 것은 일회적 혹은 단절된 경험이 아니라 ‘계속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겉옷을 빠는 사람들은 계시록이 쓰여 지던 당시에 복음을 믿고 전하다가 핍박과 고난 중에서도 지속해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 대해 성경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상급을 받기 때문’이요,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생명나무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그분만을 바라보며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가는 분들 되십시오. 그런 분들을 주님은 ‘자기의 겉옷을 빠는 사람들’이라고 하시고 ‘복 있는 자들’이라고 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상급 받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20)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내가 곧 가겠다.”고 말씀하시자 모든 성도들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십시오!”하고 화답합니다. 이것은 아람어 ‘마라나타(μαράνα θα)’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고 기대하는 사상으로 가득한 성경입니다. 성도들은 온갖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면서 재림이 속히 임하기를 기다렸고, 곧 임박한 재림을 꿈꾸며 핍박과 박해를 극복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내가 곧 가겠다!”고 하시니 “어서 오시옵소서!”대답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핍박과 박해를 받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직은 아닙니다. 잠시만 있다가 오십시오!”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마라나타!”가 아니라 “잠깐만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속(俗)에 속하는 이 땅에 너무 물들어서 새 하늘과 새 땅인 성(聖)의 세상에는 관심조차도 없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내가 곧 가겠다!”고 하실 때에 “마라나타, 주여 오소서!”응답하시는 분들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성(聖)과 속(俗)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설교 서두에 ‘성과 속은 하나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도성을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속(俗) 즉, 이 땅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거룩한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이 땅의 삶은 결코 속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은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이기에 소중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날들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삶을 살아가길 원하실까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덷전 5:16-18).”

이것의 속의 세상에서 성의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이 아닐까요? 
‘호접지몽’,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것인지 모를 신앙의 경지, 성이 속인지, 속이 성인지 합일을 이룬 신앙의 경지에 도달한 이들은 언제든지 “내가 곧 가겠다.”고 하실 때에 “마라나타, 주여 오소서!”응답할 것입니다. 그런 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 우리는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하오나, 종말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이 세상의 것에만 온통 마음을 쏟고 살아갑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신 삶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게 하시고, 언제든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응답할 수 있는 신앙을 갖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된 것임을 잊지 말게 하시고, 이 땅에서 주님의 충성된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pt설교영상은 아래를 누르시고 확인을 누르십시오.
https://youtu.be/_IB_zLz0g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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