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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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6주] Wake up, Pick up, and Walk!

  • 관리자
  • 2022-05-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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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여섯 번째 주일
Wake up, Pick up, and Walk!
요한복음 5:1~9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은 부활절 여섯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성서 일과는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 가셔서 병을 고쳐보려고 했지만 38년 동안 고치지 못하고 그곳에 있던 병자를 고쳐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


1888년 한 고고학 발굴단이 예루살렘 유적을 발굴하다가 예루살렘 성문 옆에서 다섯 개의 기둥이 있는 작은 인공연못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연구 결과, 이 작은 연못이 요한복음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으로 밝혀졌습니다. 지금은 그곳에 기념교회가 생겼고, 지하 야외에 있었던 베데스다 연못은 지형의 변화로 높아지면서 인위적으로 물을 채우지 않으면 연못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 연못은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그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못 주변에는 많은 병자가 모여서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병자 중에는 38년 된 병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 것은 보았겠지만, 단 한 번도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38년 동안, 단 한 번도.
 

▪은혜의 집? 절망의 집?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동병상련이라고 금방 친해집니다.
아마 베데스다 연못에 몰려든 병자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요하던 연못에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연못에 먼저 들어가려는 이들로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병자들은 필사적으로 먼저 들어가려고 아귀다툼 했을 것입니다. 군대용어로 ‘선착순’이라고 하지요. 먼저 도착한 사람, 1등이 독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라는 뜻이지만, 38년 된 병자에게는 ‘저주의 집’ 혹은 ‘절망의 집’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몇몇 병을 고친 사람들에게는 ‘은혜의 집’이었겠지만, 대다수 병자에게는 ‘절망의 집’이었던 것입니다.
 

▪선착순이 지배하는 사회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베데스다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착순이 지배하는 사회, 일등이 독식하는 사회, 그래서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서 스펙을 쌓고 경쟁하고, 다른 사람을 밟고 가야 합니다. 선착순의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은 다른 사람과 공감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보다 뒤처진 사람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나만 잘살면 그만이지!’, ‘나만 아니면 돼’ 하는 생각이 만연하게 되고, 각자도생, 무한경쟁, 승자독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맘몬이 지배하는 사회의 비극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등만 하면 되는 세상, 이런 세상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동떨어진 세상입니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이 기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도저히 가장 먼저 물에 뛰어들 가능성도 없고, 38년 동안 체념하며 살았기에 물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병자를 고쳐주셨다는 것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질서를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이 기적의 의미는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질서가 문제가 있다면 깨뜨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본인 스스로 습관화되고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병이 나았다”고 하지 않으시고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신 것입니다.

즉, 베데스다 연못의 질서가 없는 “다른 세상으로 걸어가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의 질문과 명령으로 이뤄집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반응하라


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질문은 “온전케 되기를 원하느냐?”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한 번역입니다. 병자는 이 질문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낫기를 원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이 낫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38년이라는 세월은 참으로 긴 세월입니다.
그 당시 평균 수명을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죽을 때가 될 때까지 병자로 살아온 것입니다. 만일, 38년이라는 긴 세월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예수님의 질문에 콧방귀를 뀌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38년 동안 그곳에서 나름 동정을 받아가며 그럭저럭 연명했는데, 만일, 병이 낫는다면 그동안 해오던 구걸을 하지 못해 생계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부정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자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질문에 응답하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십니다.
육체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관념,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38년 된 병자처럼 대답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상처 입은 우리에게 찾아오시어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때에 ‘정말 나을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의심하지 마십시오. 38년 된 병자처럼 “네가 온전해지기 원합니다. 낫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나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관습에 젖어서 자기 편한 방식으로,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의 성숙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한남교회도 1955년 이후 6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남교회 나름의 신앙적인 색깔을 만들어왔습니다. 좋은 점도 있고 고쳐야할 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남교회에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여기에 우리 교회는 38년 된 병자처럼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반응하십시오. 베데스다 연못에 얼마나 많은 병자가 있었습니까? 그러나 응답하고 고침을 받은 병자는 38년 된 병자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승자독식도 아니요, 선착순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응답하는 자들은 누구나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 세 가지 명령



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Wake up, Pick up, and Walk!

첫 번째 명령은 “일어나라 Wake up!”입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이 명령은 엄청난 도전과 모험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헬라어 동사 ‘엥겔리레’는 부정과거형입니다. 즉, 과거를 부정하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라는 말씀입니다. “옛것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미적거리지 말고, 머뭇거리지 말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실패하는 이유는 머뭇거리고 미적거리기 때문입니다. 왜 그럽니까?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명령은 “네 자리를 들어라 Pick up!”입니다. 병자의 자리는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침구로 사용하던 것으로 짚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38년 동안이나 병을 앓던 병자가 자리를 말아서 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 자리를 들어라!”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병자의 자리는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것과 그것을 드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예수님의 역사를 이뤄가는 데 도구로 사용될 것이며, 불가능한 일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가능한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명령은 “걸어가라 Walk!”입니다. 걸어가라는 현재형으로 “계속해서 걸어가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병자의 걷는 행위는 잠시 잠깐 이뤄진 기적이 아니라, 지속해서 걷는 생활을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지속해서 걸음으로 그는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어느 한순간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평생 지속해서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일어나라,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Wake up, Pick up, and Walk!”
이 세가지 명령이 병자를 온전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말씀을 의지해 살아가면 온전해질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당코(Dankor) 쓰레기 매립지의 행불행


세 가지 예수님의 명령 중에서 마지막 명령 “걸어가라Walk!”에 대해서 살펴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7월, 캄보디아를 다녀왔습니다.
21년 전이었던 2001년 3개월 정도 캄보디아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인상적으로 남았던 장소가 ‘킬링필드’였습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4년 동안 '폴포트 (Pol Pot)' 정권이 공산주의 체제를 건설하려고 인구 1/4에 해당하는 200만 명을 대량 학살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대량 학살이 일어났던 들판에 기념관을 세우고 ‘킬링필드’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곳을 다시 한 번 가고 싶었는데, 킬링필드 근처에 당코(Dankor)쓰레기매립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에 들렀다 킬링필드를 다녀오는 코스로 오전 일과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쓰레기 매립장은 캄보디아 입장에서는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시설일 것입니다.
구글 지도를 쳐도 나오질 않고,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도 알지 못했습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겨우 ‘당코쓰레기매립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몰카를 찍다시피 사진을 찍고 나왔습니다.

그곳의 상황은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쓰레기 썩는 냄새와 파리 떼가 득실거리는데도 그곳에서 생활합니다. 그곳에서 선교하시는 분이 하신 이야기 중에 마음 아픈 내용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밤에 그곳에서 쓰레기를 줍다가 그냥 쓰레기더미에서 혼숙하고, 미혼모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중 몇몇은 쓰레기매립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고 시도하지만, 얼마 안 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쓰레기 매립지에는 부자 동네에서 온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 있고, 가난한 동네에서 온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 있답니다. 부자 동네에서 오는 쓰레기는 이미 매립장에 오기 전에 대부분 걸러진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쓰레기 중에서 돈 되는 것도 많고, 음식물 쓰레기도 많아서 부자 동네 쓰레기를 버리는 구역에서 쓰레기 분류를 하는 사람들은 행복해한답니다.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뇌물도 먹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쓰레기매립장에서도 행복하고 불행한 것입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러나 여러분, 이들이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그 쓰레기 더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부자 동네에서 온 쓰레기 더미에 사는 것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베데스다를 떠나라는 이야깁니다. 우리는 어디서 떠나야겠습니까? 당연하게 생각하는 선착순 사회, 승자독식의 사회,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는 자기 스스로 ‘이만큼만 하겠다!’고 선을 그어 놓고, 교회공동체에 대해 나 몰라라하는 습관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남교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누구입니까? 교회의 주인은 여러분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주인답게 행동하며 교회를 가꿔야 교회가 바로 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어나십시오. 여러분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도우셔서 온전한 삶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가치관만 따라 살아가다 우리의 영혼이 병들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긴다하면서도 주인 의식 없이 맴돌며 지내왔습니다. 주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물으실 때에, 대답할 말을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일어나라, 들고 나가라고 하실 때에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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