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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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4주/어버이주일] 날로 새로워지는 삶

  • 관리자
  • 2022-05-0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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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넷째주일(20220508)/ 어버이주일
날로 새로워지는 삶
고린도후서 4:7~18 / 시편 23


■ 어버이날의 유래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날의 유래는 미국의 어머니날에서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주일을 어머니 날로 지켰는데, 대한민국에서는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Father's)의 날은 별도로 없었습니다. 이에 아버지들도 어머니 못지않게 가정을 위해 일을 하는데 어머니날만 있으니 차별당하고, 찬밥신세가 된다며,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를 포함하는 단어 ‘어버이’라는 옛말을 발굴하여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 같지만, 어머니날만 있을 때 아버지들은 차별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좀 더 성숙해지면서, 그런 주장도 받아들여져 ‘어버이날’이 제정된 것입니다. 
 

■ 어버이- 복을 주시는 문


십계명 제 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계명과  사람사이에 지켜야할 계명으로 나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관련된 첫 번째 계명이자, ‘네 생명이 길리라’는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 부모 공경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이신 여러분, 부모님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문입니다. 이 문은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만 열려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제가 부연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문자 그대로 지키시면 됩니다. 이곳에 계신 자녀분들은 이 계명을 잘 지키셔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어버이들께서는 자녀들에게 공경 받는 삶을 살아 자녀들에게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유산으로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 No Kids zone(노키즈존) 


아이들은 들어갈 수 없는 식당과 카페가 있다고 합니다. 
'맘충'이라는 신조어를 아시는지요? 맘충이란, 엄마를 뜻하는 ‘mom’과 ‘벌레 충蟲’자가 합쳐진 말인데, 식당 테이블에서 기저귀를 갈고 버리고 간다거나, 아이들이 식당이나 카페 인테리어를 부수고 다른 손님에게 폐를 끼쳐도 나 몰라라 한다거나, 아이들이 명백한 잘못을 해서 꾸짖어도 “왜 우리 애 기죽이고 그래요!”라며 적반하장을 보이는 엄마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식당이나 카페서 유아나 어린이가 명백하게 잘못해서 사고가 생겨도 법적으로 업주가 관리소홀로 70%의 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판례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맘충으로부터 업주와 손님을 보호하기 위해 생기게 된 것이 ‘노키즈존’입니다. 그러자 이에 대해 항의를 하고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음식점이나 카페를 단속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민원을 넣었답니다. 민원에 대한 대답은 이랬다고 합니다. ‘개인 영업자의 사업전략에 해당하므로 행정처분을 할 수 없고 강제할 수 없다.’
 

■ 섬세한 사회 


저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섬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업주의 입장도 헤아리고, 아이들의 소란으로 방해받고 싶지 않는 손님도 헤아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고 싶은 부모님들의 마음도 헤아리는 해법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키즈존을 법으로 금지할 수 없다면, 키즈존을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업체에 인센티브를 주어서 아이들이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노키즈존’을 만들게 된 이유의 일부는 이해되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업주나 손님이 그것이 혐오나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자신의 의사나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거나 조직적으로 항의할 수 없는 아이들을 금하는 것은 “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어긋납니다. 이런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노키즈존’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될 즈음에는 아무 문제의식 없이 ‘No seniors zone’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No seniors zone(노시니어즈존)


몇 살부터 시니어일까요? 
시니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불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전적 정의로 시니어는 50세가 넘은 사람 혹은 젊은 은퇴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50세 이상이면 ‘시니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니어는 젊은이들에 비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취업률도 취업의 문을 두드리는 20대보다 60대 이상이 월등하게 높다는 통계조사도 있습니다. 노인일자리를 비롯하여 연금제도나 건강보험제도 사회보장제도도 OECD국가 중에서 상위권입니다. 물론, 누구나 이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청년들에 비해 노년들의 삶이 윤택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정치권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대부분이 50대 이상, 시니어들이 국가의 정책을 이끌어가고 있고, 결정하고 집행합니다. 그러니 누구를 위한 정책을 펴겠습니까? 말로는 ‘청년, 청년’ 하지만, 장관자리 하나 주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연금이나 건강보험이나 사회보장이 유지되려면 세금을 낼 수 있는 노동인구가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구절벽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향후 10년 혹은 20년 후에는 청년들이 노인들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되면 청년들에게 노인은 어떤 존재일까요? 노키즈존을 경험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노시니어즈존이 생기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닐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식당이나 카페나 공원에서 배제된 노년의 삶, 분명히 차별과 혐오를 당하고 있는데 항의할 수도 없다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아가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미 노인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사회적인 약자, 남녀 간의 혐오와 차별과 편견이 팽배합니다. ‘우리와 다른 집단’으로 규정한 후에 그들이 약자라고 여겨지는 순간부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들을 혐오하고 소외시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에 가장 앞장서는 것은 종교집단입니다.
 

■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어버이 주일인데 밝고 명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어두운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린 이유는, 어르신들이 어버이로서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고자 합입니다. 모든 세대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어버이들이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지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즈존’같은 것이 없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일차적인 책임이 어버이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어르신들이야말로 오늘 읽은 말씀 고린도후서 4장 16절의 삶을 사는 분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24세부터 육체적으로 늙어가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건강한 삶의 초점을 생물학적인 혹은 안티에이징의 차원에 두지 않습니다.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은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이 걸어가야 할 길이지만, 어떤 삶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면, 편견이나 옹졸함에 갇히지 않습니다. 마음이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집니다. 겉사람은 낡아질지라도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어르신들이 되길 바랍니다.
 

■ 자녀들에게 배우십시오


저는 언제부턴가 자녀들에게 배우기 시작합니다. 
자녀들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빨리 배우고 어르신들은 늦게 배우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배우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일은 ‘부모를 공경하게 하는 일’이요, 자녀들로 하여금 약속 있는 첫 계명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녀분들은 부모님들이 현대문명의 이기들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가르쳐주십시오.
저는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참 많이 배웁니다. 특히, 유튜브에서 좋은 음악, 강연 같은 것들을 소개받아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익힙니다.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원로교수의 ‘최재천의 아마존’이라는 유튜브를 큰딸에게 소개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라는 강의에서 “제가 60대 후반인데 꼰대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나도 꼰대다!”하면서, 거기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젊은 세대에게 배운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다보면 대학시절 읽었던 책을 읽을 때가 있습니다. 다시 읽으면서 배우고,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또 배우게 됩니다. 배움을 쉬지 마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이유는, 그분의 능력을 우리 삶에 행하셔서 창세전에 우리를 향해 세우신 계획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까닭입니다. 어린이들이나 청소년, 청년들에게만 이 보배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이 보배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낙심할 필요도 없으며,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실 것을 믿고(고후 4:14) 힘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삶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맡길 수 있을 때, 더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할 때 우리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속사람이 새로워진 사람은 깊은 안목을 갖게 됩니다. 이런 안목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길 잃은 세대에 길이 되는 것입니다.


■ 시편 23편 다윗의 시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병행본문 시가서는 시편 23편 ‘다윗의 시’입니다. 
날로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시는 분들과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분들에게 축복의 말씀으로 전해 드립니다. 해석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말씀입니다만, 성서일과와 연결하여 제 언어로 조금 풀어서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 목자로 삼고 살아가니 속사람 날로 새로워집니다.
그로 인하여 부족함 없는 삶 살아가고,
목자이신 하나님 우리의 일용할 모든 양식 채워주시니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육체 늙어가지만 속사람 날로 새로워지니 
두려움 없이 주님께서 걸어가라고 하신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그 길을 걸어갈 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항상 지켜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요,
주님께서 그 길 끝에 잔칫상을 베풀어주시고, 내게 기름 부어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날마다 함께 할 것이니,
내가 하나님 집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살겠습니다. 아멘.



[거둠 기도]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어버이를 통해 저희를 이 세상에 창조하시고, 어버이의 사랑으로 성장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또한, 어버이를 사랑할 때에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는 은혜도 감사드립니다. 어버이들을 축복하여 주셔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육체는 연약해질 수밖에 없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축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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