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20220417)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습니까?”
이사야 65:17~25 / 시편 118 /요한복음 20:1~18
고린도전서 15:19~26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어둠과 죽음을 살라버리시고 생명 충만한 부활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몇 년 전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올해도 봄꽃들이 순서를 잃어버리고 뒤죽박죽 피어났습니다. 생강나무 꽃이 피어난 후에 산수유와 매화가 피어나고, 매화의 꽃눈이 내릴 즈음이면 개나리 피어나고, 개나리 질 즈음에 벚꽃, 복숭아꽃 살구꽃 피어나고, 벚꽃엔딩 무렵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지면 철쭉 피고, 철쭉 필 즈음에 라일락 피고, 라일락 피어난 후에 보라색 박태기나무 꽃이 피어나고, 이어 아카시아 꽃과 찔레꽃이 피어나면서 짧은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오는가 보다 가늠하는 법인데 그냥 한꺼번에 다 피어버렸습니다. 순서도 잊고 부지런히 피어나는 꽃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죽어 말라버린 것 같았던 나뭇가지에서, 흙에서 생명의 역동하는 것을 보면 부활의 계절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을 봅니다. 모쪼록, 부활의 아침에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부활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 즉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 삶과 죽음

지난주에는 80년대 암울한 시기에 부르곤 했던 김민기 씨의 ‘친구’라는 노래의 가사 중에서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라는 구절이 자꾸만 입가에 맴돌았습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살아도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 죽었어도 산 것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봄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귀로 보고 눈으로 듣고 마음으로 느낀다고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놀랍고 신비한 봄날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 찬란한 봄날의 신비를 보는 사람이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봄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라는 노래를 부르다 부활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잠자던 영혼이 깨어나고, 막힌 귀가 열리고, 굳어진 혀가 풀리고, 닫힌 눈을 뜨는 것이 부활이외다.”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께서 부활주일 아침에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분명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죽음이란, 이 세상의 삶만 따라 살아가다 영혼이 무뎌지고, 들어야 할 말을 듣지 못하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보아야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살아있으되 죽은 삶을 가리켜 성서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에베소서 2장 12절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없던 우리의 상태를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된 것이며, 오로지 이 세상의 삶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쾌락주의들보다도 불쌍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먹고, 마시고, 즐길까 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살아생전 마음껏 즐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산다고 하면서도 부활신앙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예수님은 부적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의 부를 구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마실 것과 입을 것과 먹을 것과 즐길 것만을 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의 삶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셨습니다.
이방인의 염려에 빠져 사는 이들에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하셨으며,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부활의 삶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세상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11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성경은 죽음에 대해 죽었다, 혹은 끝났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잠들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잠든 사람은 반드시 ‘깨어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는 악한 사람들도 깨어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의 삶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불쌍한 자가 아니라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 되시기를 부활의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께 맏아들, 첫 열매를 바칠 의무가 있었습니다.
민수기 8장 17절에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태어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치던 날에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고 하심으로, 사람이나 짐승이나 열매 모두 맏배는 거룩한 것이요, 하나님의 선물이니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맏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받으신 것으로 여기셨고, 맏배를 드린 이들에게 한없는 복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서신서 본문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으시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이들을 받으신 것으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요, 의롭게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되었습니까?

22절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것이 부활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삶,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산다면, 얼마나 불쌍한 일입니까?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아가는 멋진 삶, 부활의 삶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로 ‘그리스도인’을 맺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첫 열매, 맏배를 바치듯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입니다. 수요성경 공부에 참석하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나실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봉헌된 사람이요,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나실인입니다. 한 평생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이요, 그리스도인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봉헌된 사람들,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자기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을 이끌고 살아가려고 하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하나님의 통치와 능력을 거부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을 서신서 본문에서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고전 15:22)’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얻은 분들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새 삶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신앙을 품고 살아가는 살아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누가복음 20장 38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심오한 말씀인데, 살아계신 하나님은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바람을 인지하듯, 보이지 않지만 살갗을 스치는 바람으로 통해서 바람이 분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듯이 살아있는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는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절 아침에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습니까?”

하나님은 다양한 통로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 특히 자연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시는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어 가장 귀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그 말씀은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산 자로 서 있다면, 많은 이들이 우리를 통해서 우리 곁에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죽은 자로 서 있다면,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2022년 부활절을 축하하는 이 날, 저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마냥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마치 아담 안에서 죽은 자처럼 행동하고, 이 세상의 삶뿐 인 것처럼 행동하는 목사들과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이 우울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피어나는 봄의 새싹들을 통해서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싸울 때에도 봄꽃처럼 맑고 명랑하게 싸워라, 절망과 어둠이 네 마음을 덮지 않도록, 밝고 명랑하게!”
힘들고 우울한 일들이 있을지라도, 밝고 명랑하게 이겨내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부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기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 부활주일에 이제는 우리가 온갖 어둠을 이겨내는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을 밝고 명랑하게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어둠의 세력과 죽음의 세력에 짓눌려 살아가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에게도 부활의 기쁜 소식이 임하게 하옵소서.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