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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4주]귀향(歸鄕)- 잃어버린 탕자의 비유

  • 관리자
  • 2022-03-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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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4주(20220327)
귀향(歸鄕)


누가복음 15: 1~3, 11b~32
여호수아 5:9~12
고린도후서 5:16~21
시편 32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주 월요일 ‘춘분(春分)’이 지남으로, 어둠의 시간보다 낮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춘분은 기독교의 부활절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절기입니다. 춘분 후에 첫 번째 보름을 지나고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이 부활주일이 되겠습니다. 올해는 4월 15일, 성금요일이 보름이고, 부활주일은 이틀 뒤인 4월 17일입니다. 올해 부활주일엔, 3년 이상 이어오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끝나는 잔치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 고향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저마다 고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명절이면, 도로마다 긴 차량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저마다 기쁜 마음으로 고향을 향합니다. 서울이 고향인 저는 제가 어릴 적 뛰어놀던 곳들이 모두 개발되어 기억 속에만 어렴풋이 고향이 남아있습니다. 명절 때면 가끔 고향을 향하는 긴 차량의 행렬을 보면서 밀리는 차를 타고라도 갈 수 있는 고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너무 간절할 때에는 명절날 부모님 묘지가 있는 강원도를 향하기도 합니다. 저의 고향은 서울이지만, 마음의 고향은 부모님의 묘지가 있는 강원도 횡성의 갑천, 작은 시골 동네입니다. 고향, 마음의 고향이 있다면, 참된 고향이 있습니다. 
 

■ 참된 고향은?


참된 고향은 누구나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참된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요? 80년대에 불리던 찬양 중에 ‘순례자의 노래’가 있습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 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세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주 복음 전하리...’ 순례자에게 고향은 아버지의 집이요, 그리스도인의 참된 고향은 하나님의 품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그것이 고향을 향하는 길이요, 귀향인 것입니다. 

‘귀향’이라는 단어에는 고향을 떠났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현대인들은 참된 고향을 떠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참된 고향이 어디에 있는지, 참된 고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막연하게 우리의 고향은 ‘하나님의 품’이라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지 못합니다. 
 

■ 왜, 고향을 상실하고 사는가?


이런 현상은 사탄이 교묘하게 ‘참된 고향’을 호도하기 때문에 나타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순례자의 노래를 보십시오. 참으로 아름다운 찬양이지만,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이라고 함으로서 아버지의 집이 ‘저 멀리’에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합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이라고 하면서, 고향에 도달하는 것은 먼 미래 혹은 인생의 끝에나 있는 것처럼 여기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생각들은 또 어떻습니까? ‘죽어서 가는 곳, 저 하늘 위에 있는 곳’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소망이 없다’고 찬양하기도 하고, ‘죄악 된 이 세상’을 속히 벗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칩니다.

참으로 하느님 나라가 죽어서만 가는 곳이라면, 오히려 죽음을 기쁘게 맞이해야 할 터이요,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앞에서 춤이라도 춰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이런 문제를 ‘탕자의 비유’이야기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계시는 곳


먼저, 우리의 참된 고향이신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성경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너무 많지만, 구약, 복음서, 시편, 서신서에서 한 구절씩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구약은 창세기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하시는 말씀은 외형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겨 넣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서 요한복음 15장 4절을 보십시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시가서 시편 51편 1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하는 기도에서 ‘내 안에 정직한 영’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서신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참된 고향이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품은 존재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대단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사탄은 우리를 별 볼일 없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눈을 가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는 ‘안목’을 갖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요, 이런 깨달음이 우리로 하여금 순례자의 길을 기쁘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 선각자들이 말하는 고향


많은 선각자들이이 ‘지금 여기가 당신의 고향’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소리냐면, 지금 여기에서 깊은 묵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면, 바로 현존하는 그 자리가 고향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상(具常) 시인이 노래한 바대로 ‘지금 여기가 꽃자리’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깊은 묵상을 통해서 각자가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공허한 이유는, 하나님은 여기에 계시는데, 저기에서 찾았고, 저기에서 찾은 것은 사실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이라고 믿었으니 공허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그렇다면,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는 많은 시사점을 우리에게 줍니다.

참된 고향으로 돌아가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 순간은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하게 실패하고 낙담한 순간입니다.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무것도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 하나님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림 받았다고 생각이 드는 그 순간은 귀향의 출발점이 됩니다.

비유에서 탕자는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고통과 불행에 빠져 있음을 자각합니다. 부잣집 아들에서 돼지를 치는 일을 하게 된 탕자는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탕자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 죄로부터 기인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비참한 순간에 탕자는 고향을 떠올리고,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비참함의 가장 밑바닥에 처했을 때에서야 제 정신이 든 탕자는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가서 이렇게 말씀 드려야지...”그리고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갑니다.
 

■ 고향으로 돌아가는 계기


“내가 죄인이다.”라는 깨달음, 그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요,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을 통하여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의 말씀을 읽을 때, 탕자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자비로운 아버지가 두 팔을 벌려 환대하는 모습 때문에, 이 본문의 주제는 ‘용서’와 관련된 것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용서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비유의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이들에게는 ‘탕자’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아들’일 뿐입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요, 단 하나뿐인 고향임을 이 비유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아버지를 떠난 삶


아버지를 떠났다는 것,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다는 것은 참된 고향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곧 자기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참된 자기’로 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 일상의 삶에서 기쁨 충만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고향을 떠난 탕자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비참한 삶을 살아갔던 것처럼,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살아가면 우리의 삶도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참된 자기를 찾고자 하는 여정을 시작할 때 비참함(끔찍함)을 극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참된 고향은?


탕자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아버지는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떠났던 고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탕자와 아버지의 포옹과 입맞춤은 기쁨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비록 거지꼴이지만, 지금 이 순간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탕자에게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어주십니다. 이 비유의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온전해서가 아닙니다. 거지꼴이요, 끔찍한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참된 고향, 하나님이 계시는 고향을 행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 하나님은 달려오셔서 우리를 포옹하시고 입맞춤해주시고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고향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고향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성취되고, 성취된 그곳에 그리스도가 있고, 우리의 고향이 있는 것입니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7)


14세기 독일 도미니크 수도회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 있다. 내 존재는 내 곁에 있는, 그리고 내게 현존하시는 하느님에 의존한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는 그로부터 멀리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데, 우리는 밖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고향에 있는데 , 우리는 타국 땅에서 헤맨다.” 
 

■ 참된 고향을 발견한 이들의 삶


그리스도인은 참된 고향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참된 고향은 저기, 먼 곳,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온전히 깨어있는 사람들, 깨달은 사람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참된 고향에서 쉬며, 생기가 넘치는 삶을 살아갑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매 순간, 여기에서’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현존에 눈을 뜨고 살아가는 것이 깨어있는 것이요, 참된 고향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면 아주 작은 것, 아기의 웃음소리, 떠오르는 아침 햇살, 솟아오르는 새싹, 아침에 들려오는 새소리, 따스한 차 한 잔과 좋은 음악에서도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공감능력을 회복하라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고향에서 아버지와 살면서도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에게 결여된 것은 ‘공감능력’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기쁨, 귀향하던 동생의 그 힘겨운 발걸음을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공감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능력을 상실하면, 참된 고향에서 형제와 함께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질그릇과도 같은 보잘 것 없는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질그릇과도 같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들려드릴 바다이야기를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내 안에 계시는 참된 고향


바닷물에 물 한 방울 떨어집니다.
그 순간 물 한 방울은 바다가 됩니다.
우리는 물 한 방울이요, 하나님은 바다입니다.



물 한 방울이지만 바다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다는 물 한 방울을 품어 바다를 만들지만, 물 한 방울이 바다를 단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스스로 ‘교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한 방울의 물이지만, 바다가 될 수 있습니다.
물 한 방울이 바다에 떨어질 때, 바다가 되듯, 하나님 품에 안길 때 우리는 하나님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방황하지 마시고 내 안에 계시는 참된 고향이신 하나님을 발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빛과 맛과 향기가 드러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빛과 소금,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입술로는 그렇게 고백하면서도 우리는 늘 밖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참된 고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며, 제 길을 걷지 못했습니다.
주님,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으로 인해 빛나게 하옵소서.
한 주간 동안 우리의 삶이 주님께로 향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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