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셋째주일(2022년 3월 20일)
주님께로 돌아오라
이사야 55:1~9
고린도전서 10:1~13
누가복음 13:1~9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별명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죽음의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있었으니 ‘그리스도인’이라는 무게가 절대로 가볍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를 핍박하던 이들조차도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순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했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감동되어 어떤 때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는 이들이 삼천 명 이상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행 2:41).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인’은 지금 어떻습니까?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젊은 세대가 교회를 떠나고, 교회가 더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탄식하셨던 예수님이 한국교회를 바라보시면서 깊은 한숨을 쉬시며, 울고 계십니다. 지금은 “돌아오라!”고 하시지만, 포기하시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교회다운 교회도 있고, 목사다운 목사,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해 논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런 이야깁니다.
‘작고 따뜻한 교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 정신 똑바로 박힌 교회들이 있다.
아무 교회나 가지 말라는 운동을 펼쳐야 할 판이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한남교회가 ‘작고 따뜻한 교회’요 ‘정신 똑바로 박힌 교회’이길 기도했습니다. 한남교회 비전을 다들 아실 겁니다. 다시 한 번 새겨보겠습니다.

한남교회는,
외형적인 대형교회를 추구하지 않으며, 작아도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한남교회는,
교회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를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한남교회는,
누구나 와서 편안하게 예배하며, 기도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한남교회는,
이 땅의 작고, 느리고, 못생기고, 낮은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한남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내세우기보다는 깨달은 바를 실천하기 위해 몸을 낮추는 교회입니다.
한남교회는,
모든 연약한 지체를 향해 항상 부드럽지만, 모든 위선에 대하여는 대항할 줄 아는 강직함을 지닌 교회입니다.
한남교회는,
고통당하는 이웃과 창조세계의 아픔에 동참하며, 평화의 씨앗을 싹 틔우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어야 ‘그 길을 걷는 교회’일 것이요, 이런 교회를 만들어가는 교인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인’입니다.
한남교회의 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흔들리지 말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남교회가 작지만 따스한 교회, 건강한 교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교회를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헌신한 가정들을 하나님께서는 또한 범사에 잘되도록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작아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먼저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하는 감격을 맛보고, 예배를 통해서 새롭게 창조되고 변화됨으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소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주신 성경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 허황된 일에 골몰하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고,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 데’, 그것 때문에 수고합니다(사 55:2). 이사야 예언자는 이런 일들을 ‘허황된 일’이라고 하면서, 허황된 일에만 골몰하는 이들에게 “돌아오라!”고 권고합니다.
이 말씀을 곱씹어 보십시오. 우리가 수고하는 일이, 삶의 최우선 가치로 두고 얻고자 하는 일, 예배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일이 돈을 지불하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우리의 삶을 배부르게 해주는 것인지 돌아보십시오. 우리를 배부르게 할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번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는 시간조차도 허투루 여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이사야 예언자는 ‘하나님 없이 수고하는 모든 것은 허황된 수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허황된 수고’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 “내가 하는 말을 들으라!(사 55:2)”

첫째로, “내가 하는 말을 들으라!(사 55:2)”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오늘날 이사야 예언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들은 설교자요, 목사입니다. 그러니 ‘목사의 말을 잘 들어라’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목사의 설교를 잘 들어야지, 자기 뜻을 전하는 목사의 설교를 잘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사사로이 말씀을 풀지 않고 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물론,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만, 새겨서 말씀을 듣고 홈페이지에 있는 그간의 설교문을 묵상하시면 제가 전하고자 하는 일관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가늠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으라!(사 55:3)”

둘째로,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으라!(사 55:3)”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누구입니까? 여기서는 이사야가 아니라 말씀하시는 주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와 연원한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듯이 우리들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5절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삶을 영화롭게 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힘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허황된 수고에 골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습니까?
1차적인 텍스트는 성경입니다. 그와 관련된 신학서적도 일차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2차적인 텍스트는 설교입니다. 설교자는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이해를 통해 설교 한 편에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아내야 합니다. 설교를 통해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3차적인 텍스트는 자연입니다. 자연은 침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침묵의 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을 해야만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차적인 텍스트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 모든 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성경, 설교, 자연,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그 시간이 주일예배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통과제의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사 55:6)”

셋째로,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사 55:6).”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내일이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입니다. 물론,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갖고 살아가지만,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오늘이, 이번 주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일의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 깨달음이 ‘지금 여기에서, Carpe Diem!’인 것입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유는 ‘주님께로 돌아오라고 주신 기회의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이 기회의 시간을 잘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병행성서일과 시가서 시편 63편에는 다윗이 유대 광야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낼 때 지은 시가 나옵니다. “이 몸이 주님께 매달리니, 주님의 오른 손이 나를 꼭 붙잡아 주십니다(시 63:8)”고 노래합니다. 이런 심정으로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허황된 수고에 빠지지 마시고, 주님께 매달리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시 63:7)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로 돌아오라!”하시는데,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병행본문 고린도전서 10장 1~13절에는 광야에서 우상숭배하다가 멸망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경고합니다. 우상숭배는 영적 간음이요,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일이므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멸망당하는 자들의 행동을 비웃지만, 허황된 일에 매달려 주님을 떠난 이들의 행동도 그와 못지 않으며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행본문 복음서 누가복음 13장 1~9절의 말씀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면서, 한 해의 유예기간을 주지만, 내년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의 끝은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십시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무늬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올해까지는 열매를 맺지 못해도 참으셨지만, 유예기간이 지나면 찍혀버릴 운명에 처한 무화과나무 같은 우리는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s>에 ‘판단착오’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판단착오는 비극적 주인공이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되는 원인입니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판단착오에 의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비극에 비극이 이어집니다. 문제는 ‘판단착오’에 빠지면, 악의 없이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판단착오’에 의해 불행을 맞이하는 것을 표현한 단어가 ‘Hamartia’입니다. 그러니 죄가 무서운 것은 악의 없이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대형교회에 다니며 신앙 생활하는 것이 무슨 죄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신앙생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개인들이 모여서 대형교회를 이루고, 대형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일을 한다면, 그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죄인 줄도 모르니 회개할 기회조차도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그래서 교회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남교회는 지난 66년 동안 이 길을 잘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흔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신앙의 유산을 제대로 물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도 있지만, 주일성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공동체, 신앙공동체라고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적습니다. 문제가 있을수록 교회에 나와 기도해야 하는데, 오히려 교회를 떠납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너무 거창한 것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주일성수를 하십시오.
일주일에 한 번은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와 안식하는 날로 삼으십시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온 교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성껏 예배를 드리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로운 예배를 드림으로 예배하는 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 돌아오는 길입니다. 여기서부터 주님께서 맡겨주신 교회의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만들어가는 분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실 것입니다. 허황된 수고로 얻고자 하는 것보다 훨씬 귀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남교회는 좋은 교회요, 건강한 교회입니다. 교회다운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분들을 하나님께서는 복 주실 것입니다. 각자 흔들림 없이 주님의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더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님께로 돌아온 이들에게 주시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 복이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과 가정에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교회로 인해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짓밟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중에도 교회다운 교회,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서고자 하는 이들이 있사오니 주님, 도와주옵소서. “주님께로 돌아오라!” 말씀하시며, 한남교회가 예배를 회복하는 공동체가 되라고 하십니다. 주님, 주님께서 복 주신 날, 안식의 날에는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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