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1주(20220306)
돌덩이로 만든 떡을 먹은 시대
누가복음 4:1~13
신명기 26:1~11
로마서 10:8b~13

예수님은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인류를 생명의 길로 돌이키시고자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지난 3월 2일,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은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셨으니, 십자가 고난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부활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함’ 속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동시에 ‘화육하신 예수님, 인간이신 예수님’을 교묘하게 부정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神性)만 강조한다거나 인성(人性)을 부정하거나 깎아내린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셨기에 ‘신비’요, 우리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것입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러시아는 사흘 안에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낼 줄로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이번 전쟁을 지켜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는, 강대국들의 경쟁 속에서 약소국가는 언제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끊임없이 러시아의 푸틴을 자극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바이든의 입장에서는 떨어지는 지지율의 만회와 미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전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둘째, 미국이나 러시아 본토가 아닌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을 치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 국민이 희생당하는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세 번째로, 자기들은 집무실 혹은 벙커에 앉아서 전쟁을 지시하고 정작 전쟁터로 내몰리는 것은 젊은이요, 희생자는 일반 국민이고, 그들 중에서도 사회적인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이 희생양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푸틴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볼모로 인질극을 벌이거나 대량학살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려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연민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연대하는 것입니다.
그 연대를 위해 우리 교회도 우크라이를 위해 기도하는 현수막을 달았습니다. 교회는 전쟁으로 인해 죄 없는 이들이 희생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모든 전쟁에 반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넓은 안목으로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교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넓은 안목으로 보지도 못하면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특히 우리는 이번 전쟁을 통해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도 전쟁의 위협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든지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이 땅에서 대리전이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남북 간의 평화협정을 이뤄내야 합니다. 우리는 동족 간의 전쟁을 경험했고, 그 후유증을 지금까지도 겪고 있습니다.
첨단무기로 무장한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남북한 모두 절멸입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 이 땅에서 일어날 것이고, 미국과 깐부인 일본은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북한의 동해안을 점령하고자 시도할 것이고, 중국은 사력을 다해 막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친미네 반미네, 친중이네 반중이네, 친일이네 반일이네, 종북이네 아니네 싸우는 것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드린 이야기는 정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 나라 정세에 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길게 드린 이유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가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진단해야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평화를 원하는 세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이번 주 성서 일과 누가복음 4장 1~13절의 말씀에서 그 답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돌덩이로 떡을 만들어 먹고자 하는 이들, 세상의 권력과 영광을 위해서 사탄에게 절하는 이들,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기적으로 세간의 이목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의 제목을 ‘돌덩이로 된 떡을 먹은 세대’라고 하였습니다. 돌로 만든 떡은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돌로 만든 떡을 먹은 사람들의 마음은 돌처럼 차갑습니다. 돌로 만든 떡을 먹을 사람은 배부름을 모릅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니 삶에 만족이 없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으려 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면, 힘이 있어야 하니 그 힘을 얻고자 사탄에게 절하는 것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섬기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죽을 것이 명확하니, 거짓 이적으로 현혹합니다.

많이 어두운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맘몬(자본)이 지배하는 우리 삶의 현주소가 아닌지요? 올해의 표어로 우리는 ‘어두움 속에 빛이 오며’라는 슬로건을 걸었습니다. 이 의미는 아무리 어두운 세상일지라도 작은 등불을 켜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요, 그 작은 등불이 어둠을 밝히는 희망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세상임을 직시하는 것이 불편할지라도,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이 빛으로 채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하라!”고 하시고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그 평안과 기쁨은 아무런 불편함과 슬픔이 없는 평안과 기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평안과 기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서른 살이 되셨을 때, 세례 요한에게로 나아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 이전의 삶과 구별되는 공생애에서 첫 번째로 하신 일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일이었습니다. ‘광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이곳과 저곳’의 경계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통과제의’의 장소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고, 통과해야만 하는 곳, 그것이 바로 ‘광야’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간의 ‘금식’을 하심으로 자신을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금식’이 의미하는 바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과정은 ‘목숨을 거는 일’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단지, 40일간의 금식에 초점을 맞추면 ‘나도 40일 금식기도 했어!’라는 과시하는 신앙에 지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예수님은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명확하게 생각이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성자 하나님이라는 자각, 자기 안에 성부 하나님이 계신다는 자각, 하나님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광야는 골방입니다. 함석헌 선생이 말했던 그 ‘나만의 골방’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그야말로 목숨 걸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광야의 시간이 없다면, 그냥 돌덩이로 만든 떡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권력이라도 잡게 되면, 푸틴처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도 불사하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시험할 때에 가장 취약한 부분을 파고듭니다.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예수님에게 가장 큰 유혹은 ‘먹을 것’이었다는 것을 마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예수님이 먹을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만의 특권입니다. 우크라이나를 보십시오. 푸틴은 미사일과 대포, 군사력으로 사흘이면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국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귀국길에 오르고, 여성들도 총을 들었습니다. 푸틴에게 ‘먹을 것’은 ‘생존본능’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생존본능’을 뒤로하고 ‘조국’을 선택한 것입니다.

‘떡’은 먹는 것일 뿐 아니라 마실 것, 입을 것을 상징합니다. 떡을 먹음으로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떡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당연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 알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하는 이방인의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떡’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떡을 얻을 때에 먹지 못할 것으로 만든 떡, 먹어서는 안 될 것으로 만든 떡을 얻으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돌로 만든 떡을 먹으면 우리의 영혼이 죽습니다.
애써 수고하고 땀 흘려 얻은 곡식으로 만든 떡, 내 몸에 들어와 피와 살이 되는 떡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떡보다 귀한 것이 있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마귀는 천하만국을 예수님께 보여 주면서 자신에게 절만 하면, 모든 권위와 영광을 주겠다고 합니다. 아주 솔깃한 제안이 아닙니까? 천하만국을 다스릴 권위와 영광을 예수님이 갖게 되면, 메시아 왕국을 만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천하만국을 다스릴 권위와 영광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 들어있는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는 위에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예수님의 다스림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주 ‘은혜’를 오해합니다. 은혜는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만, 받을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상호작용이 어우러져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문을 열어야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귀에게 절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데서 옵니다.
세상의 권위와 영광은 총과 칼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총과 칼로 군림하고자하는 푸틴의 시도는 평화를 바라는 이들에 의해 좌절될 것입니다. 설령, 우크라이나를 점령한다고 해도 그는 히틀러와 같은 실패자로 남을 것입니다.
이 시험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마귀는 두 번째 시험까지 넘어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추켜세우면서 자극합니다.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하나님의 아들이니 천사들이 지켜줄 것 아닌가? 그리고 그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름길을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정보다는 결과만 보고 가라는 시험입니다. 자기 자신을 과시함으로 다른 이들을 굴복시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의 길은 천천히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 걷고자 하는 이들을 독려하며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면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인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임을 아셨기에, 지름길로 가지 않으시고 돌고 돌아 그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을 과시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을 향한 마귀의 시험은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에는 아무런 고민이나 시험 없이 메시아의 길을 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얼마 동안 떠나니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위의 세 가지 시험은 공생애 내내 예수님께 시험 거리였음을 알게 됩니다. 어제까지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오늘 넘어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평생 신앙생활 잘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실패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은 예수님에게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지속해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돌덩이로 만든 떡을 먹은 이들’이 승승장구하는 세상에서, 이 마귀의 시험은 더더욱 물리치기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왜 나에게는 마귀의 저런 시험이 없는가? 시험만 걸면 당장 걸릴 텐데….’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돌로 떡을 만들고 싶어 하고, 세상 영광과 권위를 얻고자 마귀에게 절을 하고, 자기의 능력을 보일 수만 있다면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어 하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세상이지만,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믿음으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시고, 고난당하는 이들과 연대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멋진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기도]
평화의 주님, 우울한 전쟁의 소식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돌로 만든 떡을 먹은 이들이 판치는 어두운 세상이지만, 작은 등불을 켜 어둠을 밝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님 도와주시고,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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