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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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모주일]너울을 벗은 사람(PPT영상설교포함)

  • 관리자
  • 2022-02-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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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8주(20220227) / 3.1절 기념주일
너울을 벗은 사람
출애굽기 34:29~35


빛이신 하나님께서 오늘 함께 예배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빛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주현절 마지막 주일이며, 변모주일, 3.1절 기념주일입니다. 이제 주현절이 지나고 나면 3월 2일, 성회수요일부터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의 사순절기가 시작됩니다.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던 대림절부터 생각해보면, 인간들은 ‘눈먼 도시’에 사는 것 같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고대하던 메시아가 현현하셔서 사람의 몸을 입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기어코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인간군상입니다.
 

■ 모든 것은 빛난다


알지 못하는 분인데도 얼굴에서 빛이 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분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도 저렇게 빛나는 얼굴로 살아가야 하는데 도전받습니다. 요즘 저를 위한 기도를 드릴 때 “노년의 삶을 살아갈 때, 곱게 늙었다는 소리를 듣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가 쓴 <모든 것을 빛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의 시대를 허무주의 시대라고 규정을 합니다. 신들로 가득했던 호메르스의 시대에는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했는데, 이 시대는 그 빛을 잃고 허무주의에 빠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우리 시대의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빛나는 것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빛나는 사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한때 경험했던 경이로운 빛의 시대를 다시 밝혀내고자 하는 사람, 슬픔과 불안의 시간을 끝내고자 하는 사람, 절망 대신 희망을 가지려는 사람, 여전히 다가올 것이 무엇이든지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 주현절 8주 성서일과


주현절 마지막 주일 성서일과(출 34:29~35, 시 99, 고후 3:12~4:2, 눅 9:28~43)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라는 인물입니다.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제사장 모세, 아론, 사무엘’에게 구름 기둥 속에서 말씀하시고, 공평과 정의의 기초를 놓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변모산’ 이야기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대화를 나누는 내용입니다. 고린도후서의 말씀은 고린도교회가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자 ‘모세의 너울’을 언급하면서, 율법에 매여 있는 이들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읽은 출애굽기의 말씀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번째 계명을 받고 내려올 때에 그의 얼굴이 빛남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모세가 자신의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 성서일과의 인물은 모세요,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빛’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광채 나는 모세의 얼굴(출 34:29~35).


모세가 시내산에서 첫 번째 십계명을 받아 산에서 내려왔을 때에는 백성이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겼습니다. 화가 난 모세가 첫 번째 받은 돌판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후에 다시 시내산에 올라가 다시 두 개의 증거판을 받아 내려오는 내용입니다. 백성이 우상숭배할 때에는 의분을 냈지만(출 32:19), 이번에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러나 모세 자신은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두려워하자, 너울로 얼굴을 가립니다. 왜냐하면, 백성들로 모세를 섬기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영광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회막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날 때에는 너울을 벗고, 다시 백성 앞에 설 때는 너울을 썼습니다.
 

 ■ 무지의 지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지만’ - 하나님의 영광에 접하므로, 하나님의 빛이 그 안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힌 사람, 빛나는 사람 모세는 정작 자신이 빛나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깊이 신뢰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믿는 것’인데, ‘의문’을 품는다는 것이 모순인 것 같지만, 믿음은 의심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믿음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어야 하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은 영혼을 지나치게 예리하게 연마합니다. 믿음이 지나치게 예리하면, 타인과 자신의 영혼에 예리한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바다의 배가 흔들리면서도 항구를 향해 가듯, 우리의 믿음도 지향점만 분명하면 흔들리면서 본향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 혹은 신앙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 절대로 교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 영광의 빛에 취하기보다 그것도 알지 못한 상태로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 빛 앞에서 빛을 머금다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 이유’- 이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에 접하게 되었을 때, 모세도 그 영광의 빛을 덧입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6장 15절에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는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다고 묘사합니다. 복음의 주제가 되시는 예수님이 빛을 발하므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얼굴도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어서 얼굴에서 광채를 발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의 ‘광채가 나다’는 ‘뿔이 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모세조각상에는 뿔이 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하신 하나님의 빛, 예수님의 복음의 빛이 여러분에게 덧입혀질 수 있도록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말로 “내가 하나님 믿는 사람이야, 예수님 믿는 사람이야!”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광채’가 ‘뿔’로도 해석이 된다고 했는데, ‘뿔’이 상징하는 바는 ‘권위’입니다. 이 권위는 군림하는 권위가 아니라 섬김으로 생기는 권위입니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모세의 얼굴을 너울로 가림’ - 광채가 나는 모세를 본 백성이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신성화하려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섬기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너울을 쓴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이 영광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높임을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광채 나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모세가 너울을 쓴 것을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은밀하게 일해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은밀한 중에 갚아주시는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드리는 봉사, 은밀한 중에 드리는 기도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 ‘너울’의 두 가지 의미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너울을 벗고’-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때에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을 분명하게 보기 위해 너울을 벗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면 죽는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울을 벗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울 너머로 흐릿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너울이라는 장애물 없이 분명하게, 마치 수건을 벗은 얼굴을 거울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지 못하게 하는 ‘너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서서도 여전히 너울로 가려서 나의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너울을 썻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고 봅니다. 긍정적인 경우는, 백성이 두려워했을 때 ‘너울’을 쓴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경우는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지자 ‘너울’을 쓴 것입니다.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기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모세가 없어질 광채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의로 가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광채가 사라진 현상’은 인간의 유한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복음의 시대가 되면 모세의 율법은 복음에게 자리를 양도해야 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후대에 바울 서신이 기록된 후의 해석이지 구약성경만 놓고 보면, 모세가 자신의 얼굴에서 사라진 광채를 일정 기간 알지 못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을 공고화하려는 생각이 있었다고 봅니다. 
 




너울은 써야 할 때가 있고, 벗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든 가식의 ‘너울’을 벗고,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쇠얀 키르케고르의 말대로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구원의 길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울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광채가 나서 가리는 것이 아니라면, 차마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워 너울을 쓴다면, 그런 너울은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 서신서에서의 ‘너울’(고후 3:12~4:2)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사도바울이 고린도 후서에서 말한 ‘모세의 너울’을 함께 살펴봐야만 ‘모세의 너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들로부터 ‘천거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박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들이 구약의 율법, 즉 모세의 율법에 근거하여 자신을 판단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향해 ‘모세의 너울’을 쓴 자들이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의 너울’은 옛 언약 즉, 모세의 율법에 사로잡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지와 불신앙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서기만 하면 ‘모세의 너울’은 벗겨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날 때 너울을 벗어버렸던 것처럼,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영적인 무지와 불신앙이라는 영적인 너울이 벗겨지고, 그 때문에 얼굴이 빛나게 된다고 본 것입니다. 너울이 벗겨짐으로, 마음의 눈이 열려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영의 세계를 밝히 보고, 주님이 변모산에서 빛나셨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의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 오해를 넘어서


사도 바울의 이런 말은 오해를 가져왔습니다. 마치 구약성경, 모세의 율법은 소용없는 것처럼 보는 이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모세의 너울을 벗어버리는 것’이 곧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오해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구약성경보다 신약성경이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을 증거하는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설교자들의 구약 본문 사용 빈도는 25%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약성서 중에서도 창세기, 출애굽기, 시편, 이사야가 주로 사용되고, 나머지 구약성서를 사용하는 경우는 겨우 3%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구약성경은 경중을 가릴 수 없이 중요하고,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뿌리인 것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모세의 너울’에 대해 오해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너울’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긍정적인 측면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화가 나니 조금은 무리하게 ‘모세의 너울’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봅니다.
 

■ 너울을 벗은 사람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빛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빛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빛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빛나길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빛, 복음의 빛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십시오. 세상의 온갖 허무적인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작은 등불을 켜듯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깨달은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빛으로 살아갈 때에 은밀하게 하시고, 자신의 신앙으로 인해 자신을 높이거나, 다른 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너울을 벗으십시오.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온갖 허무한 것들을 벗어버리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거울을 보듯, 분명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아직까지도 분명하게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믿음을 의심해 보십시오. 내가 믿음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오히려 너울이 되어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씨앗들이 저마다 자신을 감싸고 있던 껍데기, 너울을 벗어버리고 새순을 낼 것입니다. 이 봄날에 여러분도 ‘너울을 벗을 사람’이 되어 빛나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빛이신 주님, 복음의 빛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봄 햇살에 힘을 얻어 싹을 내는 새순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빛을 받아 힘 있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어두운 허무의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눈멀게 하는 모든 허무를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빛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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